2024/11 21

우리집 강아지 루비

우리 집에 이쁜 아가가 생기면 육아일기를 잘 쓰고 싶었다. 그러나 헛된 바람을 뒤로하고 어느 날 아기 대신에 강아지를 안겨준 딸이, 엄마를 위해서라나. 엄마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면서 공부도 하고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 해주고 있는 시간이 어느새 십 년이 되었다. 까만색의 강아지를 안고 보니 윤기 나는 어린것이 보석처럼 이쁘다고 이름을 루비로 지어놓고 불러주니 금방 자기 이름인 줄 아는 것도 신기했고, 조그마한 응가를 내놓을 때도 신기했고, 대소변을 잘 가리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아침마다 휴지 한 뭉터기를 다 풀어놓아도 이쁜 짓이라고 좋아했던 루비, 처음으로 산책을 하던 날 무섭다고 주저앉아 있는 강아지를 따라 어른 셋이..

living note 2024.11.17

다시 쓰는 가을 한 상

가을풍경은 담아도 담아도 끝이 없는데 그릇이 작아 넘치게 가을한상은 담았는데 그 속에 빠져 있는 내 마음 담을 길 없네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선률, 행복한 내 마음 담을 그릇이 없네 마음을 빛나게 가꾸려면, "언제 어디서든 뭔가를 느껴라" 해마다 가을이 되면 풍경으로 상을 차리고 마음은 글로 써 붙인다. 주체할 수 없는 탐미적인 마음이 담긴 그릇엔 음악과 낙엽과 그 위를 걷는 나, 나를 감싼 마른 잎 향기는 호흡으로 마시고 날숨으로 뱉어내도 내 안의 향기 마르지 않네. 비탈리 샤콘느의 흐느끼는 고음 선률에서, 오펜바흐 자클린의 눈물 저음에 빠져들어 울적해지며 가을이 주는 이 느낌, 마음껏 쓸쓸해져 본다. 가을 정물화. (내방 창가 빛을 담다.) 아침에 주운 것들로죽어서도 사는 건, 잊히지 않는 것. 너..

카테고리 없음 2024.11.16

지금 이순간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다. 이 고운 순간을 잡고 싶어 절규의 소리가 속에서 울리다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그냥 당연한 거라고, 가을은 원래 이래,라고 지나치지 못하고 이 순간에 매달리는 건 다가올 시커먼 겨울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다.가을 풍경이 예쁘게만 보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저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잘 견디어냈기에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조용히 사라져 간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들도 말짱하지 않다. 벌레들의 입자국도 있고 멍도 들었지만 그조차 곱게 물들이며 받아들이는 착한 나무들이다. 어쩌면 나무들은 한 해 살이를 최선을 다해 살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은 그들의 삶에 후회가 없는 것이겠지. 나도 인생의 절기가 가을인데 저만큼 곱게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인다.자연은 마지막 순..

living note 2024.11.15

탄천 수변공원

지난여름 너무 뜨거워 그늘이 없는 강변길은 잘 가지 않다가 가을이 되니 햇빛 받으며 걷는 것도 참 좋았다. 우리 집에서 탄천은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다. 탄천 분당구간은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어서 늘 운동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저마다 운동하기에 여념이 없다. 탄천은 용인 구성에 있는 법화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한강 청담대교 밑으로 흘러드는 약 35.6킬로미터의 하천이다. 지난해는 내가 늘 산책하는 이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해서 물길 따라 한강까지 이틀에 걸쳐서 완주를 했다. 여러 동내를 지나면서 이쪽저쪽을 이어주는 교량이 70개나 되고 지류도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에는 이름이 잘 알려진 세곡천, 양재천도 탄천의 지류라는 걸 알았다. 이름 모를..

living note 2024.11.14

수원화성의 가을나들이

어떤 계절이 시작되거나 떠나갈 때도 도심 속에 있는 수원화성을 찾는다. 가까워서 느긋하게 성길을 따라 산책하기에 참 좋다. 올해 초 첫눈을 맞으며 걸었던 그 길에 가을을 배웅하러 다시 찾았는데 어쩐 일인지 봄이 시작되는 듯했다. 성곽 아래는 제비꽃, 민들레 등 작은 풀꽃이 피어나고 철쭉도 꽃송이를 달고 있어서 가을 억새와 봄꽃이 상충하는 모호한 시간 속을 걸었다, 나의 인식세계는 나로부터 열린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있기 이 전의 시공간은 나의 인식 밖이기 때문에 지식으로만 알 수 있다. 방대한 역사적 시공간은 존재의 유무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행기를 탔을 때 너무 넓은 하늘을 날고 있는 너무 빠른 속도를 느낄 수가 없다. 탈 것 중에 가장 빠른 탈것이 마치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듯..

living note 2024.11.13

블로그 17년

블로그를 시작한 지 십칠 년, 작은 세월이 아니네. 십 년이란 시간을 내다보면 아득할 때도 있지만 뒤돌아보니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다. 처음엔 별 뜻 없이 일기 쓰듯 했던 것이 날이 갈수록 사이버세상의 내 집에 대문이 열리고 누군가 불쑥 들어와서 살펴본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한 줄이라도 성의껏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블로그란 것을 알아갈수록 얼굴은 모르지만 교류가 생기고 친해지고, 친해지다 보니 비슷한 성향끼리 더러 만남도 있었다. 지금도 그녀의 근황이 궁금하다.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 문을 닫은 사람도 있고 찾을 수도 없어지고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물론 그건 나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부턴가 들어오는 사람들이 흔적만 남기고 실제로 내용은 보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니 점점 교류에 ..

카테고리 없음 2024.11.12

가을의 장난

가을의 손길이 바쁘다. 키 작은 풀꽃까지 물들이고 매만지면서 밑으로 밑으로 찬바람 배 타고 내려가고 있다. 가을의 손길 미치는 모든 것 들은 먼 여행떠날 채비에 또 바쁘다. 물을 떠난 호기심 많은 잉어 한 마리, 산중으로 놀러 왔다 바람에 잡혔네. 심술궂은 가을바람이 덥석 잡아 꿰어 말리고 있어, 가여운 빨간 잉어 소나무의 보양식이 되겠네. 가을의 이쁜 장난에 웃음보 터졌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11

걸으면서 쓰는글

걷는 게 일상인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가을날씨다. 드센 여름과 혹한의 겨울 사이에 있는 가을이 맥을 못 출 것 같았다.여름이 물러나기 싫어 버티는 것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쫓아오는 겨울 속에서 가을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며칠 째 맑고 푸른 날씨가 가을옷에는 여름같이 덥다. 이 좋은 날씨를 잃어버리기 전에 많이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산책을 나섰다. 할까 말까 했을 때 하는 쪽이 늘 옳았다. 집 뒤에 있는 야산에나 가야지 생각하고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맞은편에 보이는 법화산 단풍이 곱게 물들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저기를 갈까 말까 머뭇거렸다. 저기까지 가려면 물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섰더니 망설여졌다. 결국 아는 길이어서 법화산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올라가는데, "어..

등산 2024.11.10

왕들의 정원(동구릉)

조선의 축소판 같은 사후세계 왕들의 정원인 만추의 그림 속으로 낙엽을 밟으며 가을길을 걸어본다. 지난 오월에 처음으로 동구릉을 찾았을 때는 능을 위주로 살펴보면서 걸었다. 동구릉의 상징이라면 역시 태조의 건원릉 능침에 피어 있을 억새를 보는 것이다. 그건 가을에 와야 제격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건원릉의 억새꽃과 정원의 가을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월에는 떼죽과 쪽동백의 하얀 꽃무리가 능원에 향기를 뿌리더니 다시 찾은 가을의 능원은 고운 단풍과 낙엽이 깔린 곳에 발자국이 하얗게 남겨진 길을 걷는데 아름다우면서도 멜랑콜리한 운치가 있어 조용한 정념이 이는 가을길이 너무 좋았다. 신에 대한 불가지론은 철학의 궁극으로 남겨진 논리의 난점이지만 논리를 떠나 누구나 신에 대한 상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

living note 2024.11.09

한라산 영실

왠지 덤으로 얻은 산행 같다. 예정에도 없던 일정을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 영실 갈까" 하는 이 한마디에 우리는 산으로 갔다. 2014년 10월 중순에 찾았던 영실풍경이 스치면서 갑자기 변경한 일정이 자칫 놓칠 뻔했던 한라산 영실코스를 가게 되어서 너무 잘 한 선택이었다. 적기보다 약 열흘정도 늦었지만 아직 산 아래는 단풍이 들지도 않았다. 그만큼 높고 낮음이 가을을 맞는 시기가 다르다. 가을은 시간을 먹는 괴물인가, 하루에 며칠을 먹어치우는 것 같다. 가을인가 싶으면 바로 겨울이다.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바쁜지 따라가기가 힘겨울 정도다. 제주에는 갈 곳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제쳐놓고 제주를 논하지 않는다. 어느 카페가 뷰가 좋은지, 어느 식당이 맛이 좋은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한..

등산 202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