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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주는 행복

고온다습한 우리나라의 여름은 계절의 깔딱 고개다. 무사히 넘어가는 고개 위에도 신선한 즐거움이 있다.먼지 많은 우리나라에서 비 온 후 말끔한 날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그런 오늘 아침 숲으로 들어왔다. 숲길 입새에선 공기가 습해서 천천히 걸으며 혼자 잔소리처럼 바람을 깨운다. "바람아 그만 일어나서 일 좀 해라" 바람이 내 목소리에 늦잠이 깼는지 30분 정도 오르니까. 정말로 바람이 살랑인다. 많이도 필요 없어. 몸에서 나오던 땀이 다시 땀구멍으로 들어갈 만큼만 필요해. 땀에 젖은 몸에 바람이 스미면 마치 레모네이드에 얼음을 넣어 꿀꺽꿀꺽 마시는 느낌처럼 내 몸 땀구멍이 청량음료보다 신선한 바람탄 공기를 시원하게 마셔댄다. 너무 좋다. 내가 살아갈 동내는 꼭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어. 적당..

living note 2025.06.14

나의 마음

유시화작가의"당신이 없을때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중에서...."봄날처럼 다정했다가 뼈를 부수는 서리처럼 냉정하고무한허공처럼 넓었다가 토끼굴처럼 속 좁고,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다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부자유하고,꽃 피는 소리 들릴 만큼 고요했다가 벌집처럼 소란하고목화솜처럼 부드러웠다가 호랑가시나무처럼 날카롭고무슨 일에도 무심했다가 사소한 일에 감정 과잉이고오체투지 수행자처럼 인내심 많았다 극의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초조하고속수무책으로 매혹되었다가 속절없이 환멸에 젖고 민들레 풀씨처럼 놓아주었다가 도깨비바늘처럼 달라붙고살아 있는 모든 것에 가슴 뭉클했다가 반나절 만에 안색을 바꾸고거리의 상점처럼 열려 있다가 봉쇄수도원의 덧문처럼 닫히고새로 핀 분꽃처럼 희망찼다가 구겨진 포장지처럼 근심..

living note 2025.06.12

오월이여 안녕

온산천에 순수의 향기를 뿌리던 나의 계절 오월이 떠나는 마지막날, 매정하게도 하얀 그의 정체성을 다 쏟아낸 꽃가루 위로 잡히지 않으려고 형체도 없이 바람을 불러 타고 떠나가고 있네. 어린아이처럼 봄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매달리며 애원하는 마음을 뿌리치며 떠나가지만 잡지도 못하고 찐득한 속울음만 운다.아카시아도, 떼죽도 떠나고, 찔레꽃마저 향기를 거두어 떠니 버린 후 오월의 자치는 어디에도 머문 적 없는 듯이 하얀꽃을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말라가는 누런 꽃잎에서도 향기가 배어있어 작별의 인사 같은 여운을 준다.푸르름은 더욱 짙어져 있지만 온몸에 스며들던 오월의 향기만은 못하다. 숲 속을 걸으면 흰꽃들이 내뿜는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그 향을 맡아보지 못한 채 여름을 맛는이는 사람들은 왜 그토록 오월을 ..

등산 2025.06.01

홍룡사, 홍룡폭포(양산 천성산)

어느 날 산행을 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소에 설치된 버스 안내판 옆에 엄청난 홍보영상이 붙어 있었다.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사진을 살펴보니 양산 8경 중의 한 곳인 양산 홍룡사의 관음전과 홍룡폭포 영상으로 지역홍보를 하는 사진이었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 수도권에서 일부러 폭포를 보기 위해 올라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마침 부산에 체류하는 시간이 충분해서 꼭 가보리라 마음먹고 정보를 살펴보니 대중교통으로 혼자 가기엔 만만치 않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마침 전날에 이틀간 많은 비가 내려서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맵에서 알려주는 교통편이 다 옳은 건 아니다는 걸 오늘 실감했다. 양산까지 지하철로 가서 버스를 두 번 환승하는 걸로 알려주는 대로 ..

등산 2025.05.19

해운대 장산

며칠간 바다하고만 놀다가 어제는 해운대에 위치한 장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12일 예정으로 머물고 있는데 구일동안 저녁때가 되면 해변을 걷고 화려한 광안리 밤바다를 바라보다가 짙어져 있는 숲에 찾아들어 푸르름을 깊이 호흡하고 싶어 숲으로 갔는데 공원을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달랐다. 바다는 바라보는 맛이 좋고 산은 온몸으로 그 속에 깊이 들어가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딸네 집에선 거실에서 바라보는 시야를 광안대교가 길게 막고 있어서 대교가 마치 수평선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잘린 바다가 밤이 되면 부산의 젊음을 다 불러내고 관광객과 어우러진 해변 이벤트가 열리는데 그 또한 볼거리다.반복되는 바다의 날들을 뒤로하고 자연의 맛을 너무 잘 알고 그 맛에 길들여진 ..

등산 2025.05.18

집안에서 사진찍는재미

딸이 한 달간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 후 빈 집에 부산으로 놀러 온 엄마는 바로 바닷가에 있는 집 거실에서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서 밤에는 커튼을 활짝 열고 실내등을 끈 채 창밖을 본다.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하는 광안대교를 보는데 마침 보름달이 점점 광안대교 현의 꼭짓점으로 가고 있어 그 모습을 찍기 위해 기다렸더니 드디어 찍고 싶었던 한 컷을 남길 수 있었다. 저녁 때는 슬리퍼 신고 해변의 젖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으며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과 파도소리 들으며 천천히 걷는 시간이 참 좋다.이건 보름 전날 달이 대교와 너무 멀다. 내일은 시간을 잘 맞춰봐야겠다.달이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중인데 저 기둥 꼭짓점에 갈 때까지 기다린다.드디어 짤칵, 보름달과 다리 너무 아름다운 조합이다.수영강, 오늘은..

living note 2025.05.13

밀양 위양지

위양지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저수지다. 위양이란, 양민 즉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저수지 물로는 농사를 지으면서 제방에는 왕버들과 이팝나무를 심어 물속의 완재정과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이 되도록 아름답게 가꾸어놓은 것이 미래세대를 위한 선경지명이었던 것 같다.저수지 둘레는 약 1킬로미터 정도가 되는데 둘레에는 왕버들이 물 쪽으로 처지면서 온몸에 시멘트 옷을 기워입은 것이 가난한 선비 같은 모습으로 오랜 세월 동안 완재정 한 곳을 지키고 있는 듯해 보인다. 시골로 어떤 풍경을 찾아갈 때 가장 힘든 것이 대중교통편이다. 나올 때는 시간을 맞춰서 놀다가 나오면 되지만 들어갈 때는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친구와 둘이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 약 20분 걸린 것 같고 요금은 15,000천 원 정도였다. ..

living note 2025.05.13

축제의 계절(광안리 어방축제와 해운대 모레축제)

축제소개, 부산의 대표 봄축제이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통어촌의 민속을 소재로 한 광안리 어방축제는 조선시대 수영지역에 경상좌수영이 설치되면서 수군과 어민이 협력해서 어업을 권장하고 지도하는 공동작업체인 '어방이라는 소재를 축제로 승화시켜 역사와 전통을 매개로 지역주민과 관광객에게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경상좌수영의 전통 어촌마을과 좌수영어방놀이 등 무형문화재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재현하고, 전통을 계승한 현재의 도시형 어촌마을로 해석된 축제를 기획하여 지역주민에게는 우리 지역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주고, 관광객에게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어촌마을 볼거리와 체험으로 광안리어방축제만의 콘텐츠를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 함께 즐기는 기회를 제공하며 매년 5월 초에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living note 2025.05.11

빛나는 오월

빛나는 오월의 아침이 찬란하다.아침해가 내방 창을 노크를 해야 느지막이 일어나던 내가 어젯밤부터 생각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은 맑음이다 지금 비 내리고 뿌옇던 꽃가루 다 씻겨나간 말간 아침이 어떨지 이미 알기에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숲으로 들어가 잠기면 마치 내가 숲의 푸르름에 흡수되어 맑은 공기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오래도록 숲의 일부로 앉아 있다.나의 오월은 참 특별하다.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오월 속에 있고 가장 머무르고 싶은 순간도 오월 속에 간직되어 있어 오월이 되면 일분일초가 흘러가는 것이 슬픔이 된다. 어느 휴양지에서의 그날, 숙면에서 깨어나 창을 열었을 때의 눈부신 아침과 윤기 흐르는 잎새들의 반짝임이 일던 오월의 아침을 난 얼마나 좋아했던가!! 해마다 오월이 되..

living note 2025.05.02

속없는 아가씨 얼레지

정년을 퇴직한 주부가 집안행사를 체크하는 것보다 자연의 행사를 더 체크하며 날자를 기다린다. 언제 어디를 가야 되는지 그날을 체크하고 찾아다니는 게 일과라니, 집안에서 내 역할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남는 시간은 오직 내 행복을 찾아다니는 날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으냐.봄의 연중행사에서 빠진 적이 없는 것이 노루귀와 얼레지를 보는 것이다 올봄도 두 가지를 다 봤다. 노루귀는 다소곳이 얼굴을 숙이고 있는 얌전한 아가씨라면 얼레지는 속없는 아가씨다. 저렇게 속을 다 보여주면 어쩌자는 건지, 발랄하고 깜찍한 얼레지의 속을 살펴보면 참 이쁘고도 귀엽다. 긴 꽃술 끝에 까만 씨방을 달고 있으며 분홍얼굴에 하얀 분을 바른 듯이 흰 부분이 있고 거기에 또 이쁜 무늬를 만든다. 여섯 장의 꽃잎 흰 부분에는 W자로 보라색..

등산 202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