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6

눈내리는 날의 탄천 단상

눈 오는 날의 산책은 더욱 여유롭다.하얀 바탕에 검은 동체 같은 내가 눈길을 걷는다. 동네 한 바뀌 돌아 눈길 걷기에 제격인 수변공원이 있는 탄천으로 나아갔다. 두 손은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스칠 사람도 없는 조용한 길을 걷는데 새로 조성된 탄천 산책길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탄천 물이 흐르고 , 다른 쪽에는 속도를 경쟁하듯 고속도로 위로 차가 흐른다.고속도로와 물줄기는 닮은 점이 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성질은 다르지만 둘은 잠들지 않는 것도 닮았고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도 닮았는데 경쟁하듯 밤낮없이 흘러서 도달하는 종착지만 다르다. 물길은 바다에 이르는 것이 종착지고 찻길은 인간의 목적지가 종착지다.두 개의 긴 흐름을 따라 걷다 보니 길이 물과 같고, 물이 길과 같다. 두 흐름을 따라 ..

living note 2025.01.05

한해의 마무리

함께 시작하고 함께 보내는 한 해의 배웅,단단한 우리들의 우정에는 시작과 끝도 함께한다. 그동안 사계절을 보내면서 매 순간 행복했던 조각들을 같이 들춰보는 재미도 함께여서 더욱 실감 나고 재미는 배가 된다. 새싹이 움트는 걸 보면서 시작한 봄날의 자람과 꽃피고 녹음 짙어지는 여름도, 고운 단풍을 보면서 우리도 단풍이야 하며 지나온 시간은 하얀 눈 속에 묻어두고 새로운 추억 쌓기로 곧 첫발을 내디디게 된다. 그런 의미부여를 하면서 우리는 건배를 했다. 우리들의 새로운 시작은 더욱 건강하게.......이른 아침 해가 느린 걸음으로 중천에 이르면 그 시간이 너무 좋은데 머물러주는 법 없이 지나가버리는 하루의 걸음은 너무 빠르다. 그렇듯 한 해도 봄이 오기까지는 차가운 겨울이 지루하지만 봄이 되고부터는 너무 빠..

living note 2024.12.28

오블완을 마치며.....

첫눈의 축하를 받으며 숙제를 끝내다니, 너무 좋다. 오블완을 끝내는 걸 축하하여도 하듯이 첫눈이 내리는데 그것도 폭설이다. 첫눈 하면 눈이 왔다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온 듯 만 듯하던 예년에 비하면 첫눈이 폭설이 되는 건 처음인 듯하다. 그리고 설경이 이토록 컬러풀한 것도 처음이다. 좋긴 한데 오가는 길이 문제다. 눈의 양면성은 어쩔 수가 없다.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즘에는 뭔가 돌아보는 시기인데 딱히 진행하고 있는 것도 없고 이루어야 할 목표도 없는 노년이란 무심한 시간만 흘러가고 나도 시간의 물결에 편승해 흘러가기만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해가 바뀐다는 것도 딱히 지난해와 새해라는 구분 짓는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닌,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

living note 2024.11.27

고궁의 만추

고궁과 늦가을은 정서적으로 잘 어울리는 로맨틱함이 있다.가을에 꼭 봐야 하는 하나라도 놓칠까 봐 여러 곳을 다니다가 가장 늦게 고궁을 찾아 아름다운 가을과의 이별을 하는 어떤 순서라도 작용한 것처럼 조금 늦게 찾았더니 가득 찬 것보다 약간 비어 있는 공간 같은 만추의 풍경으로 대미를 장식했다.빽빽하게 나무를 채웠던 잎사귀를 어느 정도 떨구어내고 드문드문 붉은 잎을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면, 떠날 때를 알고 준비하는 아름다운 순리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 한 곳이 뭉클하고 쓸쓸한 느낌이다.궁궐 안은 계절마다 아름답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도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별도로 다른 세상을 구현해 둔 것 같다. 왕과 왕비, 궁녀 등 궁궐의 대가족을 위하여 사계절을 다 불러들여 바깥세상에서 볼 수..

living note 2024.11.26

노숙과 불행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는 의식주로 규정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바뀌고 넘쳐나는 물질주의 시대에 살면서 의와 식은 하루 벌어 하루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의식주 가운데 주, 즉 살 곳을 마련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의식세"가 먼저 기본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아침이다.아침 출근시간에 발 디딜 틈 하나 없는데 "웬일이야, 자리가 비었네" 하면서 행운처럼 자리에 앉고 보니 어디선가 꼬랑꼬랑한 냄새가 난다. 왼쪽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쪽을 보니 아, 옆사람이 원인이었다. 그 복잡한 아침에 무슨 볼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는지 모습이 말이 아닌 여성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남루한 의복, 얼룩진 얼굴이 노숙을 하는 사람 같았다. 얼마나 씻고 싶었을..

living note 2024.11.25

시골까치

시골까치는 부자다.내 어린 시절에는 감을 겨우 한두 개 남겨주던 게 까치밥인데 이제는 나무를 통째로 준다. 농부는 꽃처럼 바라만 볼 뿐 감을 딸 수가 없다. 후드득 나무를 때려서 따는 대추와는 달리 한 개 한 개를 긴 장대 끝에 매달린 기구를 이용해 돌려가며 따야하는 감따기는 노부부만 사는 시골에는 오히려 근심거리가 되고만다. 농장물로 키운 감이야 일시에 수확을 하지만 밭둑이나 산비탈에 있는 감은 전부 까치들 것이다.까치라도 배불리 먹으면 감은 충분히 제 살을 보시하고 그것으로 만족할지도 모른다. 까치가 먹고 씨나 흙 속에 박아주면 그것으로 감나무는 할 일을 다하는 거다. 그래서 먹히기를 기다린다. 냉장고보다 저장성이 좋은 자연의 공기는 까치의 밥을 매일 달콤하게 한 알씩 내어준다. 싸울 필요도 없이..

living note 2024.11.24

나의 노후대책

노후 대책의 사전적 의미로는, 편안한 노후생활을 위하여 사전에 세우는 계획이나 수단이라고 되어 있다. 노후대책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경제적인 게 1순위로 꼽을 텐데 물론 맞다. 당연하다. 그런 기본적인 거 말고 내가 생각하는 노후대책이란 시간관리와 건강관리다. 경제적으로 빈틈없이 대책을 잘 세워놓았는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거나 건강하지 못하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돈이 많아도 쓸 수도 없고 시간이 남아돌아도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세워놓지 않으면 아마도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나는 늘 말한다. 살만큼 살고 보니 잘 노는 게 노후대책이라고. 잘 논다는 건 건강하다는 뜻이고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뜻이다. 논다는 것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

living note 2024.11.23

전문가라는 사람들

스마트시대를 살면서 어두운 구석이라곤 없는 너무 밝아진 세상을 살다보니 오히려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넘쳐나지만 잘못된 정보도 많아서 그걸 고르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원하는 정보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학자들의 학설은 왜 대립, 상충하는가?연구를 많이 했다는 학자 내지 전문가들이 내놓은 주장에는 일관성이 없어서 정작 내가 필요한 정보가 여러 개일 경우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를 때가 있다. 거창하게 철학, 과학, 역사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를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정보 또한 너무 많아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준다. 그런 ..

living note 2024.11.22

처음은 낯설어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요한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깊은 잠을 자고 난 후 산책을 나갔더니 나무와 바람이 사투를 벌였는지 그 흔적이 길바닥을 덮었고 결국엔 바람이 승리한 겨울의 첫추위를 느꼈다. 바람은 유령 같아서 모습을 감춘 그 힘에 당해내는 것이 없다. 여름엔 고맙기만 하던 바람이 겨울엔 불청객이 되었다. 고마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며 또 한 철 혹한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야겠지. 첫 만남, 첫추위, 첫 더위, 처음이란 건 무엇이든 낯설고 적응이 어렵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음가짐에 맛보기 같은 걸 꼭 한번 느끼게 한 다음 본격적은 성격을 보여준다. 첫 만남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기간이 있듯이 본격적으로 닥칠 겨울과의 만남에도 얼마나 매섭게 닥칠지 탐색을 하라는 듯 오늘 처음으로 기온이 영도까..

living note 2024.11.18

우리집 강아지 루비

우리 집에 이쁜 아가가 생기면 육아일기를 잘 쓰고 싶었다. 그러나 헛된 바람을 뒤로하고 어느 날 아기 대신에 강아지를 안겨준 딸이, 엄마를 위해서라나. 엄마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면서 공부도 하고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 해주고 있는 시간이 어느새 십 년이 되었다. 까만색의 강아지를 안고 보니 윤기 나는 어린것이 보석처럼 이쁘다고 이름을 루비로 지어놓고 불러주니 금방 자기 이름인 줄 아는 것도 신기했고, 조그마한 응가를 내놓을 때도 신기했고, 대소변을 잘 가리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아침마다 휴지 한 뭉터기를 다 풀어놓아도 이쁜 짓이라고 좋아했던 루비, 처음으로 산책을 하던 날 무섭다고 주저앉아 있는 강아지를 따라 어른 셋이..

living note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