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6

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더니 딱 맞는 말이네. 사월 초 대구에서 시작한 벚꽃놀이가 오늘로써 딱 열흘째다. 벚꽃명소를 찾아다닌 지 열흘 만에 내 몸은 꽃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쉬어야 할 때쯤이면 꼭 야속한 비가 내린다. 그때가 내일인지 벌써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별나게 온다고 한다. 비바람 천둥 번개라니, 꽃비가 내려 꽃물이 흐를 것 같다. 사월중순, 연분홍의 초절정을 이루는 나날들을 집안에 있으면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라도 하듯이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가는 곳마다 곱게 봄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시간을 잡기라도 하듯이 꽃나무 아래서 추억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중에도 봄이 온 줄도 모르고 꽃이 핀 줄 도 모르고 허둥지둥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

living note 2024.04.13

부산 광안대교와 바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새로운 경험인, 하루종일 바다를 보면서 사는 체험을 한 것 같다. 부산에 반한 딸이 기어이 눌러앉은 부산에 갔더니 현관에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광안리바다와 대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바라보는 광안대교는 한 집의 설치미술의 장식처럼 창에 걸려 있고 밤에는 빛춤을 추고 있다가 자정이 되면 빛도 꺼지고 고요한 교각으로 돌아가지만 길은 잠들지 못하고 구분도 없는 시간을 이어가면서 제 역할에 충실하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눈 비비고 가장 먼저 보는 것도 바다다. 아침바다는 빛을 뿌리며 떠오르는 것에서부터 붉어지다가 해가 높이 떠오르면 바다는 투명한 빛으로 온바다를 물비늘로 반짝이게 한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이제부터는 바다 위에 걸쳐진 광안대교가 쇼를 ..

living note 2024.03.23

오륙도 해맞이공원과 제한유엔공원.

부산을 열흘간 여행하는 중에 만개한 수선화를 보기 위해 간 곳이 오륙도 해맞이공원이다. 오륙도 맞은편 언덕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공원이 하늘과 바다와 꽃이 3단으로 구성된 듯한 모습으로 사진 찍기에 배경이 아름다운 곳이다.부산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점심을 먹고 나가서 오륙도공원과 유엔공원, 두 개의 공원을 둘러보고 음악회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잘 이용한 하루였다. 문화회관에서 내려볼 때는 추모공원이라는 것만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 걷다 보니 너무 좋았다. 공원의 규모도 크지만 묘역둘레에 조성되어 있는 이름 모를 고목이 된 수목들도 많고 한 바뀌 도는 동안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길, 향나무길의 곧은 직선의 아름다움도 있고 막 피어나는 홍매화가 잠든 영혼을 깨우듯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living note 2024.03.16

통도사 자장매와 평산책방

작년 2월 하순에 성급하게 통도사를 찾았다가 일주일만 더 있다가 왔으면 너무 좋은 자장매를 볼 수 있었겠다고 했던 아쉬움이 있어서 올해는 3월 초순에 다시 찾았더니 이번에는 일주일만 더 빨리 왔으면 완벽했겠다는 아쉬움을 또 남겼다. 완벽하면 또 다른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완벽을 기대하기보다는 완벽을 기대하는 마음이 어쩌면 더 큰 재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낱개의 꽃잎은 시들었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마음으로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아름다움과 색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거리의 차이로 내가 기대했던 완벽의 미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절간의 기와지붕과 너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붉은 매화와 분홍매화가 겹쳐 보이는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그림같이 이쁘다. 그 외에도 통도사는 역사의 깊이와 영축산 위용의..

living note 2024.03.08

여행처럼(부산)

동백꽃을 보듯 내 딸 보러 부산에 왔다. 딸부자였던 친정엄마는 동서남북에 딸을 시집보내고 여행처럼 딸네집을 찾았다니셨다. 그 옛날에도 농사로 바쁜 시골사람들은 여행이란 한가한 생각은 꿈같은 것이었지만 우리 엄마는 여행처럼 딸을 찾아다니면 동네사람들은 부러운 듯이 "남호댁은 좋겠다, 조선팔도를 다 다니고" 하면서 부러워했다. 신장로에서 엄마가 내릴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내 기억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었나 보다. 옆옆이 두 딸을 두고 살다 보니 시집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가족 하나 더 생긴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별나게 살고 싶어 하는 작은 딸이 여행처럼 전국을 다 찾아다니며 국토순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하더니 그 첫 번째의 정착지로 부산을 선택하고 부산에 근거를 두고 남..

living note 2024.03.06

끝없는 새로움

어제는 하루종일 뭔지 모를 사소한 것으로 기분이 흐렸으나 오늘은 사소한 한 가지가 기분을 밝게 해 준다. 이처럼 나이가 쌓인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움으로 가득 채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아직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은 진행 중인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흔히 발전이 없을 때 "이제 다 살았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은 정신이 정지상태가 되었을 때 해야 하는 말이다. 가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맴돌 때가 있다. 잠 못 드는 밤에는 어리고 풋내 나는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어 갖고 놀다가 버리지 못한 채 잠재의식 속에 보관하게 된다. 그러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참 많이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만났을 때가 너무 좋고 새로움이란 것에 한동안 마음이 붙들릴 때가 좋다. 며칠 전에..

living note 2024.02.28

작은 송년회

작지만 이쁜 송년회를 가졌다. 일 년을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는 조촐하지만 함축적인 송년회가 되었던 것은, 우리의 놀이가 짧게 짧게 다 들어 있는 하루가 되도록 짜인 시간이었 다. 늘 해오던 것들, 길을 걷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거, 이 절차를 다 넣어서 시행하고 마지막에 집에서 와인과 케이크로 마무리하는 작은 송년회의 의미는 왁자지껄한 어떤 송년회보다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송년회의 의미는 어제와 오늘 사이에 마음의 선을 긋고 새것, 새로움, 시작을 의미하는 의식이다. 시간의 흐름에는 어떤 구분도 없이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이 다르지 않겠지만 인식을 달리해야 하는 시간개념에 마음으로나마 보이지 않는 선 하나라도 긋고 시작한다는 다짐 같은 것이다. 불가항력이란..

living note 2023.12.26

눈오는날의 산책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습기 없는 눈이 실가지 위에 곱게 내려앉는다. 눈 입자가 보일만큼 가벼운 눈이 힘없이 내리는 날이면 밟기도 안쓰럽다. 마치 고운 채로 친 쌀가루를 묻혀둔 것 같은 마을 공원의 풍경은 미처 거두지 못한 가을 위에 덮혀지면 붉고 흰 눈이 만들어 낸 그림 같은 풍경이 냉정한 겨울한테 밀어내지 말라는 가을의 부탁 같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어디로 떠난 것 같지만 아니다. 서로에게 스며든 계절이 하나가 되어 대지의 품에서 잠들어 있다. 때가 되면 고운 계절을 하나씩 낳아서 아름답게 보여 줄 것이기에 기다리는 그것이 그리움이다.

living note 2023.12.18

2023년 첫 눈 출사

수원화성에서...... 첫눈 온다는 소식에 아직도 설렘 반짝이는 가슴 있었네. 비 오는 날의 이별은 있어도 첫눈 오는 날의 이별은 없듯이 모든 이의 가슴속에 간직되었던 이쁜 추억 한 자락을 일시에 꺼내는 첫눈 오는 날, 그래서 첫눈을 서설이라고 하나보다. 격정의 가을빛이 바래지고 우리들 마음도 차분해지는 시점에 찾아온 첫눈 오는 날, 하얀 바탕에 첫사랑의 자욱이 선명한 그런 추억이 잠재의식을 뚫고 살며시 올라오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에 나만의 새싹 같던 첫사랑이 걸었던 시절을 들춰보는 추억 하나 없이 노년으로 접어들었을 때, 첫눈 오는 날마저 눈이 와서 불편하다는 때 묻은 마음밖에 없는 일상의 연속이라면 삶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쭉쭉 뻗은 교목들이 빽빽하고 길섶에 초록이 남아 있는..

living note 2023.11.17

병산서원

이번 안동여행의 기록을 쓰다 보니 마지막장에서 알게 된 공통점은 어디를 가나 학문과 만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자들이 만년에 남긴 안빈낙도의 삶이 한결 같이 고향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었으며 삶의 흔적들을 남겨 잠시나마 후대에게 생의 마무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야 하는지 군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과 오랜 세월 속에서도 그것을 잘 지켜내고 있는 후손들의 노력도 볼 수 있었다. 만휴정, 농암종택, 병산서원, 하회마을을 돌아보면서 청렴결백하게 하게 살았던 분들만 낙향하기를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부귀영화를 원했다면 두메산골 외진 고향으로 찾아들지 않았을 것이다. 서원과 종택을 찾아가는 곳마다 편리한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불편함을 느끼는데..

living note 2023.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