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이쁜 송년회를 가졌다.
일 년을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는 조촐하지만 함축적인 송년회가 되었던 것은, 우리의 놀이가 짧게 짧게 다 들어 있는 하루가 되도록 짜인 시간이었
다. 늘 해오던 것들, 길을 걷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거, 이 절차를 다 넣어서 시행하고 마지막에 집에서 와인과 케이크로 마무리하는 작은 송년회의 의미는 왁자지껄한 어떤 송년회보다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송년회의 의미는 어제와 오늘 사이에 마음의 선을 긋고 새것, 새로움, 시작을 의미하는 의식이다. 시간의 흐름에는 어떤 구분도 없이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이 다르지 않겠지만 인식을 달리해야 하는 시간개념에 마음으로나마 보이지 않는 선 하나라도 긋고 시작한다는 다짐 같은 것이다. 불가항력이란 걸 알면서도 가지 말라고, 머물러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건 그 누구도 아닌 시간이다. 보이지도 않는 시간의 줄을 잡고 애원하고 싶을 만큼 질주하는 유속을 느끼는 것이 나이라는 걸 살다 보면 다 알게 된다.
멋지게 장식된 상자를 선물로 받으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연다. 겉이 화려하지만 속에 소복이 시간을 담아주는 선물상자라는 걸 알았더라면 거절했을 것이다.
겉포장에 마음이 동해 활짝 열어젖힌 선물꾸러미 시간이라니, 하루하루를 다 잡아먹은 일 년은 악마의 뱃속인가 무소불위의 권력인가. 열지 않으면 잃지 않을 것 같은 종이 한 장 한 장의 힘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매정한 것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시간들이 날아갈 줄 알면서도 공포의 상자를 열고 우리는 또다시 새로울 것도 없는 시간들을 살아내야 한다. 그럴 바엔 그냥 따라 흐를 것이 아니라 내 안을 찬란하게 빛내면서 마음에라도 주름지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시작이라는 줄을 받아 쥐고 새해의 한 끝을 살며시 잡아당긴다.
용인 오리역에서 만나 탄천을 건너서,
점심을 먹고,
카페거리를 걷다가,
크리스마스도 느끼고,
이쁜 찻집에서 차를 마사고,
30분을 걸어서 집으로 와서,
행복했던 시간들에 대해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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