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눈오는날의 산책

반야화 2023. 12. 18. 20:33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습기 없는 눈이 실가지 위에 곱게 내려앉는다.
눈 입자가 보일만큼 가벼운 눈이 힘없이 내리는 날이면
밟기도 안쓰럽다.

마치 고운 채로 친 쌀가루를 묻혀둔 것 같은
마을 공원의 풍경은 미처 거두지 못한 가을 위에 덮혀지면
붉고 흰 눈이 만들어 낸 그림 같은 풍경이
냉정한 겨울한테 밀어내지 말라는 가을의 부탁 같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어디로 떠난 것 같지만 아니다.
서로에게 스며든 계절이 하나가 되어 대지의 품에서 잠들어 있다.
때가 되면 고운 계절을 하나씩 낳아서
아름답게 보여 줄 것이기에 기다리는 그것이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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