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에서......
첫눈 온다는 소식에 아직도 설렘 반짝이는 가슴 있었네. 비 오는 날의 이별은 있어도 첫눈 오는 날의 이별은 없듯이 모든 이의 가슴속에 간직되었던 이쁜 추억 한 자락을 일시에 꺼내는 첫눈 오는 날, 그래서 첫눈을 서설이라고 하나보다.
격정의 가을빛이 바래지고 우리들 마음도 차분해지는 시점에 찾아온 첫눈 오는 날, 하얀 바탕에 첫사랑의 자욱이 선명한 그런 추억이 잠재의식을 뚫고 살며시 올라오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에 나만의 새싹 같던 첫사랑이 걸었던 시절을 들춰보는 추억 하나 없이 노년으로 접어들었을 때, 첫눈 오는 날마저 눈이 와서 불편하다는 때 묻은 마음밖에 없는 일상의 연속이라면 삶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쭉쭉 뻗은 교목들이 빽빽하고 길섶에 초록이 남아 있는 수원화성 정원에 눈이 내린다. 첫눈 오는 날 함께 길을 걷게 된 친구들은 선물 같은 눈을 맞으며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잠자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눈이 제법 펑펑 내리더니 너무 잠깐 꿈결처럼 지났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어서 행복한 순간에 있었다. 좋은 건 함께할 때 배가 되기 때문에 좋은 일에 혼자 있으면 누군가가 생각나게 되는데 어떤 이의 생각나는 사람이 언제나 나였으면.......
잎이 없는 실가지에 눈이 앉으니 매화꽃 필 무렵 같다.
일장춘몽 같은 순간이 지나고 거짓말처럼 명징한 하늘이 드러나더니 해맑고 광휘로운 가을빛에 휩싸인 행궁의 성체를 따라 걷는데 눈 맞은 나뭇가지는 금방 보석 같은 물방울을 달고 반짝인다.
세월이 만든 성체의 돌들은 한 모를 다듬어 서로를 맞물리게 해서 잘 짜여 있다. 깨끗하게 윤기 나는 것이라면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옛성길을 걸을 때면 늘 그렇듯이 껴껴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 좋고 고담한 아름다움의 기품이 묻어나는, 있는 그대로가 너무 좋다. 내가 감히 향기도 맡지 못했던 세월이 흘러간 게 아니라 저기 돌 하나하나에 다 쌓여 있는 시간과의 만남까지 사랑하면서 걷는 성길투어는 언제라도 좋다.
성길을 돌다 보니 가을빛이 선명고도 처연하게 남아 있는 이런 곳도 있네.
수원화성의 수류방화정, 너무 아름다운 저 모습을 놓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둠벙에 들어찬 하늘에서 겨우 손을 뻗어 만난 것이네.
가오리 연이 구름 속을 날고 있는데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참새 한 마리가 포착되었다. 이런 우연이라니.......
광교산이 선명한 수원 성내마을.
맛있는 점심도 좋고 따뜻한 차도 좋았던 행복한 하루를 거두어 집으로 오는데 노늘 빛까지 좋으니 이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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