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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여신

오래 그리워하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날처럼 오늘이 그런 날이다. 보고 싶은 대상을 만나야 할 때는 장애를 건너뛰어야 한다. 그렇듯 연일 치솟는 더위지만 이즘에 꼭 만나야 하는 꽃을 보는데 날씨가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 집을 나설 때의 목적은 빅토리아연꽃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일월수목원 앞에 갔더니 매주 월요일이 휴일인데 이곳은 화요일인 오늘이 대체휴일이었다. 힘들게 왔는데 돌아서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정문에서 뒤돌아섰더니 내 뒤에 그렇게 반가운 꽃이 있는 걸 몰랐다.비록 원하는 걸 보지 못했지만 가장 예쁜 물의여신을 보고 나니 많은 걸 보는 것보다 단 하나라도 완벽한 하나가 낫듯이 오늘은 이 한 가지만으로 만족하는 날이다.수목원은 굳게 닫혀있는데 감사하..

living note 2026.08.18

하늘스케치

나는 하늘의 식구들을 바라보는 걸 참 좋아한다. 땅은 높이 올라가야 넓게 보지만 하늘은 제자리에서도 고개 한 번 들고나면 드넓게 볼 수 있고 밤낮으로 그러내는 하늘의 요술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하늘의 식구들(해님, 달님, 별님, 구름) 중에 달을 가장 좋아한다. 별빛마저 꺼버리고 밤하늘의 제왕처럼 넓은 밤하늘을 혼자 차지하고 수많은 인간세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밤하늘의 유영을 보여주지.달은 온 세상의 비밀을 다 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모른 척 덮어주고 어두운 마음을 자애롭게 만져주며 밝게 위로해 준다. 그런 달을 보고 있으면 평등하게 빛을 뿌리는데도, 내 맘엔 나만 보는 것 같고, 나하고만 눈 맞추는 것 같고, 나만 따라다니는 것 같다. 마음껏 바라봐도 눈멀지 않은 달님,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회오리치는..

living note 2026.08.13

낭만의 달밤

인류를 위해 사명을 다하고 우주의 쓰레기가 될 운명을 지닌 채 몇 년을 날아간 후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보이저 ㅣ,2 호덕에 달나라에 살고 있는 영원하던 토끼방아는 한낱 옛날 옛적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내 눈으로 본 돌덩이의 정체를 믿을 수 없으니 달에 대한 낭만은 살아있는 거다. 살아있어야 한다.요즘 읽고 있는 책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인데 마침 전날 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으니 늘 보던 달이 아니라 검푸른 밤하늘을 독차지하고 유영을 즐기는 달이 다르게 보일 수밖에.....원시 지구와 충돌한 엄청난 크기의(화성만 한) 천체와 충돌한 후 먼지와 파편들의 가루가 뭉쳐져 태어난 것이 달이라고 한다. 차라리 비밀 속에 언제나 빛나는 아름다운 신비로 남았으면 더 좋았을 걸, 알고 났다고 그 신비가 깨..

living note 2026.07.31

여름밤, 달과 배롱나무

음력 6월 13일, 만삭이 다 된 열사흘 달이 까만 하늘에 하얀 구름배 타고 배롱나무 붉은 꽃송이를 바라보며, 꽃은 달이 되고 싶고, 달은 꽃이 되고 싶은 듯 서로 비추고 빛나는 여름밤의 비밀정원이 너무 아름답다. 서로가 함께 있어 더욱 그러하다.달나라 왕자님달사냥하려고 동네를 한 시간을 돌았다. 높은 아파트 때문에 달을 볼 수 있는 빈 공간을 찾아 두바뀌 돌다가 겨우 동 간 거리가 널찍한 한 곳에서 달과 마주하는데 유난히 큰 보름달이다. 열사흘 밤과 보름달을 본 여름밤의 장관이다.

living note 2026.07.26

장마철 탄천

잠시 비가 그치고 새벽 시간에 탄천으로 갔다. 2미터 정도 수위가 올라간 것 같고 온갖 수초들이 뿌리째 뽑혀서 다리 위에 걸쳐져 있는 흉물 같은 흔적이 아수라장이었다. 양쪽 수변공원을 다 덮어서 길이 깨끗이 씻겨진 곳과 진흙탕이 되어 있는 곳도 있어 엉망이 된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일거리 같은데 누군가는 또 힘들게 다 치워야 될 텐데 강가를 걷는 사람들은 다 평소와 다름없이 내 일이 아닌 듯 무심히 걷고 있었다.탄천의 아름다운 모습도 있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모처럼 충분히 흡수한 물기 가득한 나무들이 싱싱한 탄천의 아침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위의 수채화 같은 풍경과 너무 다른 탄천변의 모습, 어디서부터 끌고 내려왔는지 수변공원 시설물 위로 온갖 쓰레기가 다 걸려 있고 벤치도 제자리를..

living note 2026.07.17

여름야생화

뜨거운 여름을 빛내는 꽃들, 여린 꽃잎이 더위를 먹고도 저렇게 해맑은 미소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서는 강한 의지력을 보이는 꽃에서 힘을 얻는다.메꽃, 나팔꽃과 모습은 같은데 약용으로 쓰임새가 다르다고 돼 있다.메꽃은 색감이 더 곱다. 참나리, 주근깨 가득한 나리는 그것이 있어서 더욱 이쁘다.맥문동꽃회목나무꽃, 처음으로 본 꽃인데 북한산 오봉가는 길어서 이꽃을 보고 너무 신기하고 특별해서 요리조리 담아봤다.매우 희귀한꽃이라니 더욱 사랑스럽다.금꿩의 다리,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본것.금꿩의 다리, 아래는 은꿩의 다리 둘다 봤다. 흰색과 분홍새의 은꿩의 다리.

야생화 2026.07.16

아차산에서 한강을.....

비를 흠뻑 빨아드린 검은 소나무기둥과 더욱 짙어진 녹색으로 우거진 정갈한 솔밭길을 오른다. 정갈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어릴 때 자고 일어나면 아버지의 시작되는 하루가 물조리개로 먼지를 잠재우고 쓸어낸 티 없는 하얀 마당이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참 정갈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 날 비 내린 후의 산길이 수없는 발길로 다져진 흙길에 먼지를 잠재우고 잘 쓸려진 시골집 마당처럼 정갈한 하얀 산길을 걷는다.아차산을 여러 번 갔지만 갈 때마다 좋은 건 한강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강이 얼마나 좋았으면 삼국시대 때도 서로 차지하려고 전쟁을 했겠나. 그때부터 물길은 여전히 마른 적 없이 풍족하게 유유히 흐르니 세계가 탐낼만한 강이다. 그뿐 아니라 아차산의 소나무는 온몸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 반송의..

등산 2026.07.03

원주 법천사지

이번 원추여행에 참가한 주된 관심은 법천사 폐사지의 지광국사 승탑이 보고 싶어서다. 차를 타고 달리는 차창밖은 날씨 좋은 초여름의 들판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원주를 향해 간다. 일주일 전에만 해도 무논에 모포기 사이로 바닥이 보였는데 어느새 모가 자라 논은 초록색으로만 보인다. 세상모르고 자라는 저 벼는 알까? 앞으로 태풍 몇 개와 맞서 싸워 이겨야 결실을 맺는다는 걸, 원주 법천사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여행거리다. 남한강을 건너면 바로 법천사 폐사지가 드넓게 펼쳐져 보이는데 건축물 없이 한눈에 보이는 부지가 어마어마하다. 시야가 단절되는 건축물이 없어 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폐사지 입구에 있는 유적전시관으로 먼저 들어가 지광국사 현묘승탑을 먼저 본 후 명봉산..

living note 2026.06.28

원주 동화마을 수목원길

원주 법천사지를 먼저 보고 30분 정도 더 이동해서 점심을 먹은 후에 동화수목원 둘레길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뜨거운 시간 때여서 일행들은 힘들어했다. 동화 수목원은 2020년 10월 개장한 공립 수목원인 원주 동화마을수목원 국내에서 9번째로 큰 수목원이다.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명봉산 일원에 조성된 동화마을 수목원에는 명봉산등산로(8㎞)와 진달래길(6㎞), 자작나무길(3.2㎞) 등 다양한 둘레길이 조성돼 있는데 일행은 진달래길을 걸었다.좁다란 둘레길은 우리가 늘 걷던 길보다 다르진 않았는데 키 큰 나무 아래를 걷다 보니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먼 산의 풍경을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좀 답답했다. 날씨가 워낙 맑아서 멀리에 보이는 푸른빛을 보기 위해 틈새를 노렸으니 그런 장소는 길을 다 걷고 내려올 때쯤..

등산 2026.06.27

우담산과 청계산

자연학교 수업은 텍스트가 필요 없다. 오직 보고, 느끼고, 만져보면서 무언의 교육을 주는 자연이 선생님이다. 우리는 봄을 맞아 꽃피고 잎피고 무성한 숲을 이루는 과정까지 봤다. 곧 장마가 오고 혹서기가 올 텐데 얼마 남지 않은 자연학교 방학을 앞두고 그동안 숲의 변화를 탐구하기 위해 숲바다로 들어가는 날이다.우담산을 향해 숲 속으로 들어가는데 키를 넘는 수풀 속에 좁다란 오솔길이 너무 이쁘다. 우리가 좋아하는 길이다. 한 사람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에 무성한 수풀이 길을 침범해서 스틱으로 걷으며 걷지만 길섶에 자라는 각종 나무와 풀들을 만지고 느끼기에 참 좋은 조붓한 길을 우리는 좋아한다. 멀리서 보면 짙푸른 푸르름으로 산을 뒤덮고 있지만 속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윤기 나던 잎들이 벌레들의 집이 되고 오래..

등산 202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