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7

속없는 아가씨 얼레지

정년을 퇴직한 주부가 집안행사를 체크하는 것보다 자연의 행사를 더 체크하며 날자를 기다린다. 언제 어디를 가야 되는지 그날을 체크하고 찾아다니는 게 일과라니, 집안에서 내 역할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남는 시간은 오직 내 행복을 찾아다니는 날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으냐.봄의 연중행사에서 빠진 적이 없는 것이 노루귀와 얼레지를 보는 것이다 올봄도 두 가지를 다 봤다. 노루귀는 다소곳이 얼굴을 숙이고 있는 얌전한 아가씨라면 얼레지는 속없는 아가씨다. 저렇게 속을 다 보여주면 어쩌자는 건지, 발랄하고 깜찍한 얼레지의 속을 살펴보면 참 이쁘고도 귀엽다. 긴 꽃술 끝에 까만 씨방을 달고 있으며 분홍얼굴에 하얀 분을 바른 듯이 흰 부분이 있고 거기에 또 이쁜 무늬를 만든다. 여섯 장의 꽃잎 흰 부분에는 W자로 보라색..

등산 2025.04.18

벚꽃앤딩

산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비 온 후에 걷는 산길이 얼마나 좋은지를. 간밤에 마른땅을 흠뻑 적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침에 반짝 빛이 나서 바로 뒷산으로 갔다. 역시 촉촉한 산길이 너무 좋다. 검은 가지들 뒤로 연한 빛이 감도는 숲도 좋고 숲이 깨어나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가 너무 좋아 심호흡을 들이키며 올랐다. 지금쯤 산벚꽃이 무척 좋을 거란 생각으로 갔지만 지난해 이즘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온통 산이 하얗더니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꽃이 별로 없었다. 진 것도 아니고 아예 꽃이 맺히지를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실망하고 단국대 캠퍼스로 내려갔다. 단국대 교정 안의 차도변에 키는 작지만 탐스런 벚꽃이 흰나비의 군무처럼 거친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내친김에 법화산 아래 있는 단국대 대..

등산 2025.04.13

문경투어

코스: 김룡사-대성암-화장암-돌리네 습지-소야벚꽃길,봄이란 올 때는 더디고 갈 때는 쏜살같아한 철 꽃지고 나면 하룻밤 일장춘몽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중에도 깨어 있는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것인가? 달력 속의 빼곡한 일정이 마음을 바쁘게 하지만 봄 속에 있다는 것이 그래도 너무 좋다.한참 전에 받아놓은 문경으로의 여행인데 경북지방에 산불이 난 후여서 무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차가 경북으로 갈수록 혹시 불탄 흔적이 보이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보는 것이 괴로워질 뿐 아니리 자칫 여행하는 마음에 상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창밖을 주시했지만 다행히 문경 쪽은 무사한 것 같아서 마음 편히 문경시내를 통과하고 목적지로 깊숙이 들어갔다.*운달산 금룡사 홍하문*이번에 가는 여행지는 존재..

등산 2025.04.08

노루귀의 귀환

불타는 산야의 가슴에도 조용히 꽃이 피어났다. 어느 때보다도 혼란한 세상에 불까지 질러 세상은 온통 지옥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고향이 불타고 고향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해서 꽃을 보고도 꽃을 봤다는 말을 못 한 채 며칠이 지났다. 검어진 고향산천에는 꽃도 죽고 모든 생명들의 한 해 살이가 죽었다. 이 좋은 봄이 왔는데 고향의 봄은 꽃대궐이 아니라 한겨울 같은 혹독한 추위를 겪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자연은 삶이 되풀이된다. 추워도 살아지고 더워도 살아지는 삶, 비바람 막아주고 비료 주는 게 아니라 척박한 흙 한 줌에도 살아내는 자연이 위대하다. 기후의 악조건에서도 살아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스스로,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자연이다. 가장 잘 사는 방법을 제시해 주..

등산 2025.04.01

동탄 무봉산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도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산을 뚫고 나가지만 역시 산에 갇혀 있는 길일 뿐이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지평선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다. 특히 경기도에 산이 많아서 아직도 처음 가는 산이 있어서 참 좋다. 그저께는 무봉산에 갔는데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산이었다.겨울산행은 좀 심심하다. 아무리 살펴도 뭐 하나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봄을 가장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눈이 녹아도 눈물이 땅으로 스며들 정도가 아니어서 푸석푸석한 산길을 걷다 보면 음지에는 몇 번 내린 눈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 낙엽 속에 단단히 숨어 있다. 숨은 얼음덩어리가 녹을 때면 산길이 질척이기도 해서 이즘에는 산길을 잘 선택해야 된다.처음으로 가는 곳은 지명의 ..

등산 2025.02.24

겨울 광교산

겨울 기온은 고르지 못해서 날 잡는 것부터가 산행의 시작인데 오늘도 너무 좋은 날을 잡았다. 매번 정해진 날자가 아니라 각자의 여건을 고려해서 이왕이면 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잡지만 여행철이 되면 꼭 한 명은 빠지는 날이 있다. 그러므로 겨울 동안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싶다.어느 해는 광교산만 가다가 작년에는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연초에 산문을 열었으니 올해는 광교산행이 많을지도 모른다.상현역 3번 출구에서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서 중앙공원 속으로 들어가는데 간밤에 내린 빗물인지 눈 녹은 물인지 나목의 실가지에 은방울이 조롱조롱한 것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쁜 모습에 벌써 파져든다.편안한 산길이 펼쳐져 있는 광교산 대부분에 눈이 없는데 우리가 가는 길에만 눈이 남아 있는 건 마지 하얀 ..

등산 2025.01.14

2025년 트레킹 스타트(청계산)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사계의 추억은 하얀 백지 같은 눈으로 덮어두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라는 듯 2025년 첫출발에 산은 고운 눈길을 내주어서 축하받은 기분으로 길을 오른다.트레킹을 이어가다 보면 때로는 험한 코스를 만나기도 하니까 스타트는 산꾼들이 시산제를 올리듯 우리도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청계산 눈길을 걸었다.가끔씩 친구들과 모여 앉아 눈 속에 묻어 두었던 백지장을 들치면 지난날의 추억들이 순서도 없이 다투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어디서 무엇을 봤고 어디로 가면 무엇이 있는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즐겁다. 누군가와 같은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추억을 공유한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며 헌신적이던 의무에서 벗어난 우리들한테는 꼭 필요한 만남의 시간이 되어준다.지금은 산이 품고 ..

등산 2025.01.07

독야청청의 고집

첫눈이 내리는 걸 보면 절로 하얀 미소가 피어나면서 늘 그것은 서설이라고 생각했다. 기후가 비 뀌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한 요즘은 서설이라고 반겼던 첫눈도 한갓 추억일 뿐인가?2024년 첫눈은 서설이 아니라 흉설이 되고 말았다. 집 앞이 마치 한라산눈 같이 쌓였던 첫눈이 아직도 음지에 시커멓게 쌓여있는 산길을 오랜만에 올랐더니 입새부터 소나무들이 허리가 다 꺾어지고 생살이 찢어져 하얗게 드러나 있다. 더러는 길을 막기도 해서 겨우 동강동강 잘랐을 뿐 아직 찢어지고 꺾어진 잔해는 다 치우지도 못하고 널브려져 있었다.강풍이 불어도 흔들리며 피할 수 있는데 짓눌리는 무게는 감당이 안되었던 것 같다. 짓누른다는 것은 숨이 막히는 일이다. 사람이 잠든 사이 숲에서는 얼마나 고통의 아우성이 들렸을까. 여기저기서 괴성..

등산 2025.01.01

분당 태봉산

이제는 겨울이라고 해야겠다. 한 주 전만 해도 늦가을 만산홍엽 속을 헤매었는데 갑자기 영하권의 날씨에 겨울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렇게 음산한 날은 약속 없으면 나가고 싶지 않다. 늘 약속을 해주는 트레킹 마니아의 친구들이 있어서 내 건강의 지킴이가 되어준다. 서로에게 우리는 그렇다. 단풍도 없고 낙엽이 깔린 겨울산에는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렇지 않다. 가을이 다녀간 뒷모습의 여운이 남아서 여전히 향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잎들을 다 떨구어낸 모체는 한동안 할 일 다 한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 휴식이란 게 쉽지가 않다. 이제부터 설한풍과 싸우면서 역경을 이겨내야 할 숙제 같은 삶이 기다린다. 잎들은 모체를 위해 영양분을 돌려주려고 스스로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떨어진 잎들은..

등산 2024.11.20

숲의 빈부차이

생명이 집단생활 하는 곳에는 어디서나 빈부차이가 있는 것 같다. 숲도 마찬가지다.숲이 우거진 산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어울려 살지만 그중에 쭉쭉 뻗어 올라간 교목들 아래서 작은 잡목들은 잘 살지 못한다. 워낙 힘이 센 나무들이 주위의 영양분을 다 빨아들이고 그늘까지 두터워서 살아갈 수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들끼리만 모여서 경쟁하듯이 키를 키우고 있다. 설악산같이 높고 바람이 많은 산에는 관목이 주인공이다. 나무들이 키를 못 키우다 보니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동종만 모여서 사는 편이고 위로 키워야 할 키가 바람 때문에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크기 때문에 나목이 되는 겨울에 보면 수형들이 참 특이한데 그것이 그들에겐 고통의 증표지만 등산하는 사람한테는 보기 좋게 멋을 부린 것 같아 보인다. 거기다가..

등산 202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