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분당 태봉산

이제는 겨울이라고 해야겠다. 한 주 전만 해도 늦가을 만산홍엽 속을 헤매었는데 갑자기 영하권의 날씨에 겨울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렇게 음산한 날은 약속 없으면 나가고 싶지 않다. 늘 약속을 해주는 트레킹 마니아의 친구들이 있어서 내 건강의 지킴이가 되어준다. 서로에게 우리는 그렇다. 단풍도 없고 낙엽이 깔린 겨울산에는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렇지 않다. 가을이 다녀간 뒷모습의 여운이 남아서 여전히 향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잎들을 다 떨구어낸 모체는 한동안 할 일 다 한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 휴식이란 게 쉽지가 않다. 이제부터 설한풍과 싸우면서 역경을 이겨내야 할 숙제 같은 삶이 기다린다. 잎들은 모체를 위해 영양분을 돌려주려고 스스로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떨어진 잎들은..

등산 2024.11.20

숲의 빈부차이

생명이 집단생활 하는 곳에는 어디서나 빈부차이가 있는 것 같다. 숲도 마찬가지다.숲이 우거진 산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어울려 살지만 그중에 쭉쭉 뻗어 올라간 교목들 아래서 작은 잡목들은 잘 살지 못한다. 워낙 힘이 센 나무들이 주위의 영양분을 다 빨아들이고 그늘까지 두터워서 살아갈 수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들끼리만 모여서 경쟁하듯이 키를 키우고 있다. 설악산같이 높고 바람이 많은 산에는 관목이 주인공이다. 나무들이 키를 못 키우다 보니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동종만 모여서 사는 편이고 위로 키워야 할 키가 바람 때문에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크기 때문에 나목이 되는 겨울에 보면 수형들이 참 특이한데 그것이 그들에겐 고통의 증표지만 등산하는 사람한테는 보기 좋게 멋을 부린 것 같아 보인다. 거기다가..

등산 2024.11.19

걸으면서 쓰는글

걷는 게 일상인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가을날씨다. 드센 여름과 혹한의 겨울 사이에 있는 가을이 맥을 못 출 것 같았다.여름이 물러나기 싫어 버티는 것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쫓아오는 겨울 속에서 가을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며칠 째 맑고 푸른 날씨가 가을옷에는 여름같이 덥다. 이 좋은 날씨를 잃어버리기 전에 많이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산책을 나섰다. 할까 말까 했을 때 하는 쪽이 늘 옳았다. 집 뒤에 있는 야산에나 가야지 생각하고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맞은편에 보이는 법화산 단풍이 곱게 물들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저기를 갈까 말까 머뭇거렸다. 저기까지 가려면 물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섰더니 망설여졌다. 결국 아는 길이어서 법화산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올라가는데, "어..

등산 2024.11.10

한라산 영실

왠지 덤으로 얻은 산행 같다. 예정에도 없던 일정을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 영실 갈까" 하는 이 한마디에 우리는 산으로 갔다. 2014년 10월 중순에 찾았던 영실풍경이 스치면서 갑자기 변경한 일정이 자칫 놓칠 뻔했던 한라산 영실코스를 가게 되어서 너무 잘 한 선택이었다. 적기보다 약 열흘정도 늦었지만 아직 산 아래는 단풍이 들지도 않았다. 그만큼 높고 낮음이 가을을 맞는 시기가 다르다. 가을은 시간을 먹는 괴물인가, 하루에 며칠을 먹어치우는 것 같다. 가을인가 싶으면 바로 겨울이다.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바쁜지 따라가기가 힘겨울 정도다. 제주에는 갈 곳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제쳐놓고 제주를 논하지 않는다. 어느 카페가 뷰가 좋은지, 어느 식당이 맛이 좋은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한..

등산 2024.11.01

밀양 천황산,제약산

은은한 초가을의 색채를 깔아놓았을 것 같은 그 푸근하던 억새의 평원으로 간다. 부산에서 아침 아홉 시 12분이 된 시계를 보고 출발했는데 약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밀양 천황산이 제철을 맞아 등산객이 많이 모였을 줄 알았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을 서야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평일이어서인지 줄은 서지 않았고 십 분 만에 천황산에 도착했다. 평지보다는 바람이 조금 쌀쌀했지만 걷다 보니 금방 몸이 따뜻해졌다. 오랜만에 천 미터가 넘는 산 정상을 향해가는 발걸음이 즐거웠던 건, 옆에 산을 좋아하는 딸 부부를 동행하고 가면서 많은 걸 함께 얘기하고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다. 기억은 변함이 없는데 현상은 늘 변하는 거구나. 표충사를 보고 사자평까지 올랐던 너무 오래된 기..

등산 2024.10.22

남한산성 성곽 둘레길

가을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었어. 유례없는 더위를 오래 겪으면서 가을이 아예 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오래 기다렸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역시 가을은 푸른 창공 저 넘어 이디엔가 침묵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가봐. 봄은 땅에서 솟아나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린다고 생각되는 건 하늘이 먼저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더 높아 보이고 더 푸르고 금빛이 쏟아지면 가을이 오는 징조가 된다. 봄은 언 땅이 녹으면서 생명이 솟구치고 나무들은 눈 녹은 땅에서 습기를 힘차게 길어 올리며 눈을 뜨고 좀 더 상쾌한 봄기운을 느끼게 된다. 늦게 온 가을은 분명 짧아질텐데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고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늘어선다. 머무는 시간보다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을을 쫓아다녀야지 다짐하며 높..

등산 2024.09.26

자연학교 개학날

우리들은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생의 후반기를 자연학교에서 배우고 지혜를 얻고 있는 학생들이다. 우리의 교정은 끝이 없다. 선생님은 너무 많지만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말없이 가만히 보여주기만 하고 우리는 그 모습에서 관찰하고 즐기다 보면 절로 알아지는 지혜가 생기게 되는 무위의 진리를 배워가는 학생들이다. 대신 졸업은 언제든 할 수도 있지만 영원히 안 할 수도 있다. 생이 끝나도 그곳, 자연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래서 더욱 자연과 가까워지고 친해져야 언젠가는 오고야 말 끝이란 게 두렵지 않게 된다. 인생 전반기는 교육으로 지식을 얻었고 후반기는 우리처럼 자연에서 진리와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꽃을 보면 이름을 알고 싶고 이름을 알고 나면 더욱 친해지고 이뻐..

등산 2024.09.05

장미와 치유의 숲

마음을 치유한다는 건 현실감을 다 끊어낸 텅 빈 마음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물러 있는 집에서 떠나 먼 거리를 유지해 보면 자연스럽게 잡다한 생각에서도 멀어진다. 무엇보다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숲의 푸르름에 잠겨 있으면 보고 들리는 모든 것들이 청정함 뿐이기 때문에 근심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치유의 숲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아도 모든 숲 속은 다 치유의 공간이다. 오늘은 그런 숲이 있고 꽃이 있는 곳으로 간다. 바로 서울대공원 치유의 숲에서 청정한 공기로 속을 정화하고 장미의 축제장인 장미원에서 눈으로 받아들이는 아름다움과 향기로 마음을 정화하는 날이다. 가우르 고팔 다스의 , 이 글에서 얻은 지혜로움을 음미하면서 숲을 걷는다면 자연치유가 될 수 있는 방..

등산 2024.05.23

삼성산 삼막사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품고 있던 생각들이 마음밖으로 나와서 실천이 되는 예가 많기 때문에 늘 노래하듯 " 가고 싶다,~~싶다샆다" 하다 보면 이루어진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도 전에 서울로 이사 와서 한창 등산의 재미에 빠져있을 때 서울의 산만 찾아다녔다. 그중에 들어 있던 산이 삼성산의 삼막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진 한 장 남은 게 없어 꼭 한번 다시 가서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생각이 마음밖으로 나와 실천되는 날이다. 오월은 향기로운 계절이다. 산속으로 들어서면 하얀 꽃들이 내뿜는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산이 마치 향수병 같고 그 열린 병 속을 헤매는 것 같다. 향기가 날 찾아오지 않으니 내가 향기를 찾아가는 오월의 산행은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이..

등산 2024.05.13

주왕산을 다녀와서......

먼 길 다녀온 여독을 달래며 차 한 잔 앞에 놓고 음악이 흐르는 창가 티테블에 앉아 밖을 보며 글을 쓴다. 검은 겨울이 눌러 있던 자리에 어느새 초록으로 빽빽하다. 창밖은 거친 봄바람이 구름 같은 송홧가루를 날리는데 창 안에 있는 나의 아침은 참 고요하다. 여행은 환상으로 시작된다. 목적지에 닿아야 하는 과정은 생각에도, 계획에도 빠져 있고 오직 목적지에 대한 환상만으로 떠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다녀온 후에 비로소 여독으로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게 된다. 여행사를 통해서 갈 때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가족여행은 운전을 하고 가는 시간이 힘든 게 보이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가족이 좋아할까 하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 몸만 힘들었던 나만의 여행보다 가족여행은 마음까지 힘이..

등산 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