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60

오월이여 안녕

온산천에 순수의 향기를 뿌리던 나의 계절 오월이 떠나는 마지막날, 매정하게도 하얀 그의 정체성을 다 쏟아낸 꽃가루 위로 잡히지 않으려고 형체도 없이 바람을 불러 타고 떠나가고 있네. 어린아이처럼 봄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매달리며 애원하는 마음을 뿌리치며 떠나가지만 잡지도 못하고 찐득한 속울음만 운다.아카시아도, 떼죽도 떠나고, 찔레꽃마저 향기를 거두어 떠니 버린 후 오월의 자취는 어디에도 머문 적 없는 듯이 하얀꽃을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말라가는 누런 꽃잎에서도 향기가 배어있어 작별의 인사 같은 여운을 준다.푸르름은 더욱 짙어져 있지만 온몸에 스며들던 오월의 향기만은 못하다. 숲 속을 걸으면 흰꽃들이 내뿜는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그 향을 맡아보지 못한 채 여름을 맛는이는 사람들은 왜 그토록 오월을 ..

등산 2025.06.01

홍룡사, 홍룡폭포(양산 천성산)

어느 날 산행을 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소에 설치된 버스 안내판 옆에 엄청난 홍보영상이 붙어 있었다.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사진을 살펴보니 양산 8경 중의 한 곳인 양산 홍룡사의 관음전과 홍룡폭포 영상으로 지역홍보를 하는 사진이었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 수도권에서 일부러 폭포를 보기 위해 올라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마침 부산에 체류하는 시간이 충분해서 꼭 가보리라 마음먹고 정보를 살펴보니 대중교통으로 혼자 가기엔 만만치 않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마침 전날에 이틀간 많은 비가 내려서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맵에서 알려주는 교통편이 다 옳은 건 아니다는 걸 오늘 실감했다. 양산까지 지하철로 가서 버스를 두 번 환승하는 걸로 알려주는 대로 ..

등산 2025.05.19

해운대 장산

며칠간 바다하고만 놀다가 어제는 해운대에 위치한 장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12일 예정으로 머물고 있는데 구일동안 저녁때가 되면 해변을 걷고 화려한 광안리 밤바다를 바라보다가 짙어져 있는 숲에 찾아들어 푸르름을 깊이 호흡하고 싶어 숲으로 갔는데 공원을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달랐다. 바다는 바라보는 맛이 좋고 산은 온몸으로 그 속에 깊이 들어가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딸네 집에선 거실에서 바라보는 시야를 광안대교가 길게 막고 있어서 대교가 마치 수평선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잘린 바다가 밤이 되면 부산의 젊음을 다 불러내고 관광객과 어우러진 해변 이벤트가 열리는데 그 또한 볼거리다.반복되는 바다의 날들을 뒤로하고 자연의 맛을 너무 잘 알고 그 맛에 길들여진 ..

등산 2025.05.18

속없는 아가씨 얼레지

정년을 퇴직한 주부가 집안행사를 체크하는 것보다 자연의 행사를 더 체크하며 날자를 기다린다. 언제 어디를 가야 되는지 그날을 체크하고 찾아다니는 게 일과라니, 집안에서 내 역할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남는 시간은 오직 내 행복을 찾아다니는 날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으냐.봄의 연중행사에서 빠진 적이 없는 것이 노루귀와 얼레지를 보는 것이다 올봄도 두 가지를 다 봤다. 노루귀는 다소곳이 얼굴을 숙이고 있는 얌전한 아가씨라면 얼레지는 속없는 아가씨다. 저렇게 속을 다 보여주면 어쩌자는 건지, 발랄하고 깜찍한 얼레지의 속을 살펴보면 참 이쁘고도 귀엽다. 긴 꽃술 끝에 까만 씨방을 달고 있으며 분홍얼굴에 하얀 분을 바른 듯이 흰 부분이 있고 거기에 또 이쁜 무늬를 만든다. 여섯 장의 꽃잎 흰 부분에는 W자로 보라색..

등산 2025.04.18

벚꽃앤딩

산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비 온 후에 걷는 산길이 얼마나 좋은지를. 간밤에 마른땅을 흠뻑 적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침에 반짝 빛이 나서 바로 뒷산으로 갔다. 역시 촉촉한 산길이 너무 좋다. 검은 가지들 뒤로 연한 빛이 감도는 숲도 좋고 숲이 깨어나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가 너무 좋아 심호흡을 들이키며 올랐다. 지금쯤 산벚꽃이 무척 좋을 거란 생각으로 갔지만 지난해 이즘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온통 산이 하얗더니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꽃이 별로 없었다. 진 것도 아니고 아예 꽃이 맺히지를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실망하고 단국대 캠퍼스로 내려갔다. 단국대 교정 안의 차도변에 키는 작지만 탐스런 벚꽃이 흰나비의 군무처럼 거친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내친김에 법화산 아래 있는 단국대 대..

등산 2025.04.13

문경투어

코스: 김룡사-대성암-화장암-돌리네 습지-소야벚꽃길,봄이란 올 때는 더디고 갈 때는 쏜살같아한 철 꽃지고 나면 하룻밤 일장춘몽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중에도 깨어 있는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것인가? 달력 속의 빼곡한 일정이 마음을 바쁘게 하지만 봄 속에 있다는 것이 그래도 너무 좋다.한참 전에 받아놓은 문경으로의 여행인데 경북지방에 산불이 난 후여서 무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차가 경북으로 갈수록 혹시 불탄 흔적이 보이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보는 것이 괴로워질 뿐 아니리 자칫 여행하는 마음에 상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창밖을 주시했지만 다행히 문경 쪽은 무사한 것 같아서 마음 편히 문경시내를 통과하고 목적지로 깊숙이 들어갔다.*운달산 금룡사 홍하문*이번에 가는 여행지는 존재..

등산 2025.04.08

노루귀의 귀환

불타는 산야의 가슴에도 조용히 꽃이 피어났다. 어느 때보다도 혼란한 세상에 불까지 질러 세상은 온통 지옥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고향이 불타고 고향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해서 꽃을 보고도 꽃을 봤다는 말을 못 한 채 며칠이 지났다. 검어진 고향산천에는 꽃도 죽고 모든 생명들의 한 해 살이가 죽었다. 이 좋은 봄이 왔는데 고향의 봄은 꽃대궐이 아니라 한겨울 같은 혹독한 추위를 겪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자연은 삶이 되풀이된다. 추워도 살아지고 더워도 살아지는 삶, 비바람 막아주고 비료 주는 게 아니라 척박한 흙 한 줌에도 살아내는 자연이 위대하다. 기후의 악조건에서도 살아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스스로,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자연이다. 가장 잘 사는 방법을 제시해 주..

등산 2025.04.01

동탄 무봉산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도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산을 뚫고 나가지만 역시 산에 갇혀 있는 길일 뿐이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지평선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다. 특히 경기도에 산이 많아서 아직도 처음 가는 산이 있어서 참 좋다. 그저께는 무봉산에 갔는데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산이었다.겨울산행은 좀 심심하다. 아무리 살펴도 뭐 하나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봄을 가장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눈이 녹아도 눈물이 땅으로 스며들 정도가 아니어서 푸석푸석한 산길을 걷다 보면 음지에는 몇 번 내린 눈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 낙엽 속에 단단히 숨어 있다. 숨은 얼음덩어리가 녹을 때면 산길이 질척이기도 해서 이즘에는 산길을 잘 선택해야 된다.처음으로 가는 곳은 지명의 ..

등산 2025.02.24

겨울 광교산

겨울 기온은 고르지 못해서 날 잡는 것부터가 산행의 시작인데 오늘도 너무 좋은 날을 잡았다. 매번 정해진 날자가 아니라 각자의 여건을 고려해서 이왕이면 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잡지만 여행철이 되면 꼭 한 명은 빠지는 날이 있다. 그러므로 겨울 동안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싶다.어느 해는 광교산만 가다가 작년에는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연초에 산문을 열었으니 올해는 광교산행이 많을지도 모른다.상현역 3번 출구에서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서 중앙공원 속으로 들어가는데 간밤에 내린 빗물인지 눈 녹은 물인지 나목의 실가지에 은방울이 조롱조롱한 것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쁜 모습에 벌써 파져든다.편안한 산길이 펼쳐져 있는 광교산 대부분에 눈이 없는데 우리가 가는 길에만 눈이 남아 있는 건 마지 하얀 ..

등산 2025.01.14

2025년 트레킹 스타트(청계산)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사계의 추억은 하얀 백지 같은 눈으로 덮어두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라는 듯 2025년 첫출발에 산은 고운 눈길을 내주어서 축하받은 기분으로 길을 오른다.트레킹을 이어가다 보면 때로는 험한 코스를 만나기도 하니까 스타트는 산꾼들이 시산제를 올리듯 우리도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청계산 눈길을 걸었다.가끔씩 친구들과 모여 앉아 눈 속에 묻어 두었던 백지장을 들치면 지난날의 추억들이 순서도 없이 다투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어디서 무엇을 봤고 어디로 가면 무엇이 있는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즐겁다. 누군가와 같은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추억을 공유한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며 헌신적이던 의무에서 벗어난 우리들한테는 꼭 필요한 만남의 시간이 되어준다.지금은 산이 품고 ..

등산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