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7

피서는 이렇게

북한산 삼천사 계곡어느새 여름의 한가운데인 삼복더위에 들어섰다. 아침엔 처음으로 매미소리도 들었고 장마도 왔고 여름에 올 손님들은 다 모인 것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을 즐기게 되는 휴가철이구나. 나에겐 별 의미가 없지만 괜히 마음이 들뜬다. 피서라면 오늘도 가장 더웠다는 열기를 산속 계곡에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잠겨 있었으니 남 부러울 게 없었다. 자연 속을 관통하는 대동맥의 흰 피 같은 우렁찬 계곡의 물줄기를 양 옆에 끼고 대청마루 같은 반석에 누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쳐다보며 세상 잡음 다 쓸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치 이 몸도 자연의 한 조각 세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놓고 즐거워하기에는 수해를 입어 힘든 처지에 있을 다른 사람들 생각이 나서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등산 2009.07.16

오월 따라 님은 가고

2009.5.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노 대통령님의 장례식이 있었다(5.29). 장례식 애도기간에 산행을 할 수가 없어 산행을 미루다가 오늘 딸과 함께 북한산에 갔다.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져버린 듯한 마음인데 산 입구에 들어서니 너무도 고운 해당화가 산 입구에 홀로 피어 있다. 이웃한 찔레꽃과 해당화가 다투어 가며 상큼한 향을 뿌리고 있는데 해당화 홑꽃잎이 노란 꽃술까지 드래내며 감추고 있는 속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다 보여주면서 순수하고 상큼한 향이 아픈 마음에 깊게 베어 온다. 한 주간 소중한 님을 보내 드리고 아직도 눈이 부어 있는데 하필이면 해당화는 왜 그리 곱고 향기롭던지, 산자들은 오월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고 푸르름에 젖어 있는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분께서는 오월을 거두어 슬..

등산 2009.05.30

산사의 야경 (초파일)

작년에는 도심에서도 가장 혼잡하고 화려한 봉은사에서 야경을 찍어 봤지만 이번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큰딸이 절에 가보자고 해서 당일보다는 전야가 좋겠다 싶어 집 근처 북한산 삼천사로 향했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지니는 게 버릇이 돼서 챙겨 들고 갔는데 잊고 갔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가로등조차 없는 적막한 산길을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삼천사에 도착하니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고 그 가운데 경내를 밝히고 있는 연등이 전에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뒷 배경은 우뚝한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키 큰 소나무와 산줄기의 곡선이 멋진 실루엣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계곡에 물소리와 소쩍새 소리 눌은밥 영화 속의 밤 같았다. 도심의 화려하던 등불과는 달리 내면의 ..

등산 2009.05.02

행복은 많은 댓가를 필요치 않더라

행복은 순간의 연속이지 영원한 게 아니다. 오늘 하루 행복해 지기 위한 일정은 간단했다. 빈 몸으로 나서서 배낭 가득 행복을 담아 오는 데는 그리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산이 품고 있던 뭇 생명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본다는 게 재미있었고, 혈액 같은 계곡물은 산의 혈관을 돌고 돌아 꽃과 잎을 피워내고 있었으며 가늘게 드리워진 실가지에 돋아나는 어린잎에"참 예쁘구나" 한마디 해 주면 한 아름 행복을 주고, 진달래 한 송이를 카메라에 담고 나면 연분홍 행복이 담겨 온다. 그동안 오르기 힘들어 지나치기만 했던 삼각산의 한 봉우리인 노적봉에 오르기로 결정하고 한 발씩 올라가는 그 과정에 흔한 것 같지만 처음 보는 토토리의 껍질을 깨고 뿌리를 내리는 이쁜 모습도 보고, 야생화며 진달래 ..

등산 2009.04.02

딸과 함께 즐거운 한 때

어제는 산 밑에 살면서 누리는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는지를 실감하는 날이었다. 이제 막 진달래가 피고 있을 것 같은 따스한 날씨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연일 새벽에 퇴근하는 작은애를 데리고 오전엔 푹 재운 뒤 며칠 전에 해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언제나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아이가 난 너무 좋다.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두 달 동안 평균적으로 새벽 3시는 되어야 퇴근한다. 그것도 매일 25,000이나 하는 택시를 타고서 한 달 택시비만 60만 원 정도를 회사에서 지급받으며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딸, 너무 안쓰러워인 인삼을 달려 먹이다가 부족할 것 같아 홍삼으로 계속 먹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체력을 닮았는지 잘 견뎌주고 그런 중에서도 엄마와의 약속을 이행해 주는 그 애가 난 참..

등산 2009.03.23

수정 같이 녹는 얼음의 변신

겨울산행은 화려한 영상도 없고 조금은 밋밋한 맛이다. 그러나 돌아올 땐 언제나 한 가지라도 얻어오는 즐거움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주에 너무 좋았던 기억 때문에 오늘 다시 같은 코스를 갔는데 시야도 맑고 경치도 선명했지만 지난번 같은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것보단 조금은 은근하게 보일 듯 말듯한 신비의 멋이 더 좋은 것 같다. 좋았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서 환상을 깨고 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혜를 얻은 샘이다. 오늘의 선물은 단연 얼음의 변신이다. 며칠 전에 비가 온 것이 계곡에 물이 많아졌고 추위도 눅어졌는지 두터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이 얼음을 녹이면서 다양한 얼음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형체도 없이 물이 되고..

등산 2009.02.18

물소리를 가장 잘 표현하려면.....

그동안 산행을 하면서 숭숭 뚫린 바윗돌 구멍으로 빠져버린 물줄기가 어디를 휘돌아 언제쯤 이 계곡을 채워줄까 기다리면서 목말라하던 터라 장마를 반갑게 맞이했을 계곡과 수목들이 보고 싶어 정수리가 타는 듯한 불볕더위를 마다하지 않고 수락산 깔딱 고개를 를 향해 아예 힘을 빼놓기로 하고 올라갔다. 더울 때는 그저 욕심을 버리고 물 좋고 그늘 좋은 곳으로 숨어들어 몸도 마음도 풀어놓고 축 늘어져 누워서 둥둥 떠다니는 구름이나 쳐다보면서 회상에 잠기다 오는 게 상책이다.깔딱 고개를 힘겹게 넘어 장암으로 내려가니 계곡에 면경같이 맑은 물이 내 마음까지 다 비추어서 부끄러운 마음이 다 들통나고 말았다. 상류에서 점심을 먹고 얼음 같은 물에 발을 담그고 커피를 마시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연신 자리를 잘 잡았다고 부러워..

등산 2007.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