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송년 산행

백화사에서 출발 국녕사로 하산.오랜만에 친구들과 송년산행을 하게 되었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일기예보를 내심 반기면서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가볍게 출발했는데도 집에 오니 네시 반에 도착할 만큼 산행거리가 짧기도 했지만 북한산 아래 사는 혜택을 많이 보는 셈이다. 오르는 동안은 별로 힘들지 않았고 가사당 암문에 이르게 되자 눈보라가 치면서 싸락눈이 내리고 바람이 심했지만 아는 길이기에 느긋하게 즐기면서 하산길로 접어드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이왕이면 싸락눈이 아닌 함박눈을 맞으면서 높은 곳에서 하얗게 덮인 산봉우리와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예보대로 라면 큰 눈은 밤새 내려 아침을 하얗게 밝힐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새하얀 눈길을 걷는 날엔 세월이 주는 밭이랑 같은 숫자는 우..

등산 2009.12.29

내 인생의 무대

북한산 족두리 바위,여기를 가기 위해서는 불광동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북한산 품이 얼마나 장대한지 코스에 따라 출발점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같은 북한산 줄기이지만 정릉 쪽에서 출발하려면 우리 집에서는 차로 4분 거리에 산성입구가 있는데 비해  여기서 정릉까지는 한 시간 이상을 가야 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기도 하다. 3년을 다녀야 다 갈 수 있다는 코스들을 난 거의 다 가 본 셈인데 이상하게도 몇 년 후에 다시 가면 처음 가는 것처럼 낯설어진다. 그만큼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북한산은 언제부터인가 내 중년의 삶을 풍요롭게 장식해 주는 내 인생의 무대가 되고 있다. 계절과 장소에 따라 연극무대, 음악 무대. 독서 무대 등 희로애락의 대부분이 연출되는, 어쩌면 앞으로도 불과분의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등산 2009.09.23

거꾸로 보는 세상

도봉산 산행 중에서 살다 보니 가끔은 이기적인 행동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는 하루였다. 바로 뒤에 북한산을 두고 한 시간 반을 가야 하는 도봉산은 참 힘들었다. 모처럼 동행하는 친구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결정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늘 얼마나 일들이 꼬였는지 너무 힘든 후에야 느낀 것은, 용감하게 북한산으로 와, 하는 한 마디만 했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난 배짱이 부족한지. 몇 주 만에 하는 산행이 힘들었지만 날씨가 맑고 하늘이 푸르러서 어지러웠던 기분을 진정시켜 주었고 오랜만에 수다도 떨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가 혼자 잠시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그 속에 산이 거꾸로 들어차 있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 그래서 세상을 거꾸로 보는 방법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아름다운 산천은 거꾸로 ..

등산 2009.09.01

오백 년 역사 속으로

서오릉(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 산책오백 년 역사 속에서 내가 보고 느낀 건, 산 자 보다도 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명당에서 참 편안하게 잠드신 왕릉을 보니 이 나라의 수호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울창한 자연림 속에 겹겹이 송림으로 둘러 쳐지고 사이사이를 계곡물이 자연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서 수목도 잘 자라고 후대들이 찾아가도 훌륭한 쉼터까지 제공해 주시는 크나큰 왕들의 품 속 같았다. 뜨거운 여름이지만 하늘을 뒤덮는 숲이 있고 물도 있고 감촉 좋은 모래길로 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하루 종일을 다녀도 지루하지 않았고 계절마다 가야겠다는 다짐을 남겨두고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중 명릉을 돌아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능 바로 옆에까지 갈 수가 없어 정자각에서 사진을 찍고 보니..

등산 2009.07.31

피서는 이렇게

북한산 삼천사 계곡어느새 여름의 한가운데인 삼복더위에 들어섰다. 아침엔 처음으로 매미소리도 들었고 장마도 왔고 여름에 올 손님들은 다 모인 것 같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을 즐기게 되는 휴가철이구나. 나에겐 별 의미가 없지만 괜히 마음이 들뜬다. 피서라면 오늘도 가장 더웠다는 열기를 산속 계곡에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잠겨 있었으니 남 부러울 게 없었다. 자연 속을 관통하는 대동맥의 흰 피 같은 우렁찬 계곡의 물줄기를 양 옆에 끼고 대청마루 같은 반석에 누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쳐다보며 세상 잡음 다 쓸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치 이 몸도 자연의 한 조각 세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놓고 즐거워하기에는 수해를 입어 힘든 처지에 있을 다른 사람들 생각이 나서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등산 2009.07.16

오월 따라 님은 가고

2009.5.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노 대통령님의 장례식이 있었다(5.29). 장례식 애도기간에 산행을 할 수가 없어 산행을 미루다가 오늘 딸과 함께 북한산에 갔다.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져버린 듯한 마음인데 산 입구에 들어서니 너무도 고운 해당화가 산 입구에 홀로 피어 있다. 이웃한 찔레꽃과 해당화가 다투어 가며 상큼한 향을 뿌리고 있는데 해당화 홑꽃잎이 노란 꽃술까지 드래내며 감추고 있는 속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다 보여주면서 순수하고 상큼한 향이 아픈 마음에 깊게 베어 온다. 한 주간 소중한 님을 보내 드리고 아직도 눈이 부어 있는데 하필이면 해당화는 왜 그리 곱고 향기롭던지, 산자들은 오월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고 푸르름에 젖어 있는데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분께서는 오월을 거두어 슬..

등산 2009.05.30

산사의 야경 (초파일)

작년에는 도심에서도 가장 혼잡하고 화려한 봉은사에서 야경을 찍어 봤지만 이번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큰딸이 절에 가보자고 해서 당일보다는 전야가 좋겠다 싶어 집 근처 북한산 삼천사로 향했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지니는 게 버릇이 돼서 챙겨 들고 갔는데 잊고 갔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가로등조차 없는 적막한 산길을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삼천사에 도착하니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고 그 가운데 경내를 밝히고 있는 연등이 전에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뒷 배경은 우뚝한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키 큰 소나무와 산줄기의 곡선이 멋진 실루엣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계곡에 물소리와 소쩍새 소리 눌은밥 영화 속의 밤 같았다. 도심의 화려하던 등불과는 달리 내면의 ..

등산 2009.05.02

행복은 많은 댓가를 필요치 않더라

행복은 순간의 연속이지 영원한 게 아니다. 오늘 하루 행복해 지기 위한 일정은 간단했다. 빈 몸으로 나서서 배낭 가득 행복을 담아 오는 데는 그리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산이 품고 있던 뭇 생명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본다는 게 재미있었고, 혈액 같은 계곡물은 산의 혈관을 돌고 돌아 꽃과 잎을 피워내고 있었으며 가늘게 드리워진 실가지에 돋아나는 어린잎에"참 예쁘구나" 한마디 해 주면 한 아름 행복을 주고, 진달래 한 송이를 카메라에 담고 나면 연분홍 행복이 담겨 온다. 그동안 오르기 힘들어 지나치기만 했던 삼각산의 한 봉우리인 노적봉에 오르기로 결정하고 한 발씩 올라가는 그 과정에 흔한 것 같지만 처음 보는 토토리의 껍질을 깨고 뿌리를 내리는 이쁜 모습도 보고, 야생화며 진달래 생..

등산 2009.04.02

딸과 함께 즐거운 한 때

어제는 산 밑에 살면서 누리는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는지를 실감하는 날이었다. 이제 막 진달래가 피고 있을 것 같은 따스한 날씨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연일 새벽에 퇴근하는 작은애를 데리고 오전엔 푹 재운 뒤 며칠 전에 해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언제나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아이가 난 너무 좋다.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두 달 동안 평균적으로 새벽 3시는 되어야 퇴근한다. 그것도 매일 25,000이나 하는 택시를 타고서 한 달 택시비만 60만 원 정도를 회사에서 지급받으며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딸, 너무 안쓰러워인 인삼을 달려 먹이다가 부족할 것 같아 홍삼으로 계속 먹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체력을 닮았는지 잘 견뎌주고 그런 중에서도 엄마와의 약속을 이행해 주는 그 애가 난 참..

등산 2009.03.23

수정 같이 녹는 얼음의 변신

겨울산행은 화려한 영상도 없고 조금은 밋밋한 맛이다. 그러나 돌아올 땐 언제나 한 가지라도 얻어오는 즐거움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주에 너무 좋았던 기억 때문에 오늘 다시 같은 코스를 갔는데 시야도 맑고 경치도 선명했지만 지난번 같은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것보단 조금은 은근하게 보일 듯 말듯한 신비의 멋이 더 좋은 것 같다. 좋았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서 환상을 깨고 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혜를 얻은 샘이다. 오늘의 선물은 단연 얼음의 변신이다. 며칠 전에 비가 온 것이 계곡에 물이 많아졌고 추위도 눅어졌는지 두터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이 얼음을 녹이면서 다양한 얼음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형체도 없이 물이 되고..

등산 200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