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다. 밤사이 눈이 온다는 예보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커튼을 열었는데"어머나 눈이다" 하는 환호성과 아침부터 미소가 지어지는 아주 기분 좋은 설을 맞게 되었다. 지난 2009년 연말에도 눈이 와서 좋았는 데음력 섣달 그믐날 뜻밖의 하얀 설경이 선물로 배달된 것 같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주부라면 오늘이 보통날이라야 말이지. 아침부터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일거리는 잔뜩 쌓여있고 그렇지만 도저히 설레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어, 가게에 살 것도 있고 해서 장바구니를 들고 한 바뀌 돌고 들어 오려고 생각했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하듯 진관 공원 옆을 지나는데 마음이 오늘은 발끝에 돌고 있는지 저절로 장바구니 말아 쥐고 공원(앞산)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이젠도 지팡이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올라가긴 했지만 내려 올 길이 난감했다. 그러나 걱정은 뒤로하고 순백의 눈꽃 속을 마음껏 즐기고 돌아왔는데 금방 해가 나고 눈은 아이스크림같이 녹아서 잠시 허상에 젖은 마음처럼 그렇게 내려앉고 말았지만 놓치지 않고 눈 속에 잠겼다가 왔으니 얼마나 행복한 날이었는지! 기분 좋게 하루가 시작되고 오늘 할 일을 끝내니 어느새 밤이 되었네 하루 종일 서 있었더니 몸은 힘들지만 오늘은 하얗게 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우는 섣달그믐이니 그렇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