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사에서 출발 국녕사로 하산.
오랜만에 친구들과 송년산행을 하게 되었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일기예보를 내심 반기면서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가볍게 출발했는데도 집에 오니 네시 반에 도착할 만큼 산행거리가 짧기도 했지만 북한산 아래 사는 혜택을 많이 보는 셈이다. 오르는 동안은 별로 힘들지 않았고 가사당 암문에 이르게 되자 눈보라가 치면서 싸락눈이 내리고 바람이 심했지만 아는 길이기에 느긋하게 즐기면서 하산길로 접어드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이왕이면 싸락눈이 아닌 함박눈을 맞으면서 높은 곳에서 하얗게 덮인 산봉우리와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예보대로 라면 큰 눈은 밤새 내려 아침을 하얗게 밝힐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새하얀 눈길을 걷는 날엔 세월이 주는 밭이랑 같은 숫자는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고 거부한다. 그러나 사정없이 들처내는 그 똑똑한 카메라 렌즈 앞에선 모두들 돌아서며 뒷모습만 허락하는 어쩌지 못하는 서글픔이다.
산에만 가면 우리들은 언제나 청춘이고 그중에서도 빼낼 수 없는 재미는 장대비가 오나 천둥번개가 치나 오늘같이 눈보라가 쳐도 따끈한 커피는 죽어도 마셔야 하기에 오늘도 산사 추녀 밑에서 볼폼없는 자세로 한 잔의 커피에 언 몸을 사르르 녹이는 즐거운 커피타임이 행복했음이다. 한 해는 저물지만 올해 마지막 산행을 하얀 눈 위에 새로 쓰는 우리들의 추억과 역사를 위한 선물 같아서 안 좋았던 기억일랑 눈 속에 묻고, 새로운 다짐만 눈 위에 하얗게 남기는 즐거운 산행을 접고이제 365일을 그만 편히 뉘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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