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수리산 임도트레킹

집 밖에만 나가면 몸에 와닿는 연둣빛 살랑이는 이파리들이 너무 싱그럽다.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려서 더욱 푸른 물이 올라있는 가로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이 좋은 계절을 좀 더 머물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여름을 반토막내고 봄을 심어 두고 싶다. 봄꽃의 주류를 이루던 벚꽃과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제2의 주류가 되는 오월이 오고 있다. 이산 저산 철쭉 찾아다니던 지난 시간들이 이제는 추억 속에만 있다. 그만큼 높은 산보다는 트레킹 위주로 가다 보니 자꾸만 고도가 낮아져서 무리 지어 피는 멋진 군락은 볼 수없지만 야산에도 철쭉은 볼 수 있다. 사계절이 주는 행복은 끝이 없다. 철쭉이 지고 나면 오월부터는 주로 흰꽃이 많이 핀다. 대표적으로, 떼죽, 쪽동백, 덜꿩, 팥배, 산사나무,..

등산 2024.04.20

성남 검단산

계절이 바뀌면 그 철에만 할 수 있는 보람된 뭔가를 해야만 한다. 겨울이 지루할 때 다가오는 봄을 연상하면 절로 생기가 나고 봄에 할 수 있는일, 야생화 찾아다니는 일을 생각만 해도 마음밭에 뿌려놓은 씨앗이 움트는 것 같이 활력이 생긴다. 이제 기다리던 봄이 왔고 잠시 지상으로 내려앉은 천국 같은 봄을, 그 청춘을 내 마음 파아랗게 물들이는 일로 바쁘다. 순환하는 계절의 링에서는 완주가 없다. 다만 이탈하지 않으면 된다. 이탈한다는 것이 병들거나 생을 접거나 둘 중 하나다. 뒤돌아 보니 참 많은 봄을 돌았다. 같은 봄을 돌고 돌아도 봄은 여전히 새롭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새봄이다. 트레킹마니아인 우리들은 관찰력이 남다르다. 작은 거 하나라도 남이 못 보는 걸 찾아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행습이 몸에 배어..

등산 2024.04.10

대구여행의 아름다움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지는 봄이다. 봉오리 져 있던 봄이 파안대소로 활짝 웃으니 여기저기서 강냉이 터지듯 하얀 봄꽃들이 마구 터진다. 수많은 꽃망울이 터지듯 들썩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잡은 날은 비를 동반한 여행이 되는 오류를 범했다. 그래도 먼지 낀 날보다 비가 내리는 말갛게 씻긴 날이 더욱 운치 있어 좋고 차창에 튀는 춤추는 빗방울을 바쁘게 닦아내며 양 차도에 펼쳐진 핑크빛 풍경들을 스쳐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마음은 풍경의 일부로 자연과 내가 몰아일체가 되는, 나도 봄의 한 폭에 담겨겼다. 생활 속에서 본 대구와 여행으로 본 대구는 달랐다. 지인과 칠곡에서 만나 팔공산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내가 알고 있던 대구는 선입견에 불과했다. 적기에 찾아간 차도 주변 산기슭에는 하얀 자두꽃이 ..

등산 2024.04.05

동화사(대구 팔공산)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지났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팔공산 동화사를 찾았지만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이 뭔지 종교가 뭔지 관심도 없었던 전생 같은 시절이었으니 기억이란 것이 선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었던 곳 중의 한 곳이었다. 기억 속에는 동화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 어디쯤에 아주 큰 벚나무와 왕벚꽃이 있었다는 것인데 잘못된 기억인지 현재의 동화사에는 없는 것인지 아니면 팔공산의 찬기운이 아직 꽃을 피워내지 못한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꽃 없는 빈 가지에서 꽃너머의 꽃과 숲을 이루는 동화사의 풍경을 마음의 눈으로 음미할 수 있었다. 동화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전경은 얕은 분화구 같은 아늑함으로 팔공산 기슭에 잠겨 있었다. 명산은 명찰을 품고 있어..

등산 2024.04.04

북한산, 그때 그꽃

식물과 빛의 관계, 빛을 너무 좋아하지만 달아나는 빛을 따라 가지 못하고 그늘진 응달에서 늘 빛을 기다리는 꽃, 그 조금의 양식 같은 빛으로 피워낸 이쁜 꽃이 열흘을 못 넘기는 걸 보면 안타 깝다. 해는 지나가기 바쁘고 꽃은 빛을 쫓아가기 바쁜 게 짧은 봄날의 술래잡기다. 지난해 북한산에서 보았던 청노루귀와 처녀치마를 보기 위해 찾아갔던 곳에선 노루귀는 만났지만 처녀치마는 볼 수가 없었다. 분명 치마는 길게 내려뜨리고 있었지만 꽃은 없었다. 어쩌면 어떤 나쁜 손길에 의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길을 잘 못 들여 엉뚱한 곳에서 처녀치마를 봤고 처음 가려든 곳에서는 꽃은 없고 치마자락인 잎만 치렁치렁 했다. 귀한 꽃을 누군가 혼자만 보고 꺾어버렸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돌아오면서 봄..

등산 2024.04.01

봄물결

봄이 솟아오른 땅에 발 딛기조차 조심스럽게 산길을 간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훈풍이 봄을 부르는 마중물이 되었나, 하루가 다르게 세상의 빛깔이 달라지고 있는 이때가 난 가장 좋다. 봄이 한창일 때보다 어디선가 보이지도 않는 매화의 영혼 같은 향기가 내 코끝에 스며들고 갓 핀 어린싹들이 자라는 걸 지켜보는 시간이 너무 짜릿하다. 봄은 어디에 머물다가 나타나는가. 대지의 태중에 잠들었던 봄의 생명들이 소록소록 자라나면 마음속 봄에대한 상념들도 자라나 뭔가를 글로 표현해내고 싶어 진다. 그러나 자연을 눈으로 보는 만큼 표현하는 건 나로선 불가능하다. 그 신비를 글로써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늘 한계에 부딪친다. 그럴 때는 차라리 사진을 찍어서 그림이노라 하고 붙이는 게 편하다.청계산에 노루귀가 산..

등산 2024.03.24

노루귀 영접

작은 생명인 꽃 한 포기가 거대한 대지에 균열을 일으키는 봄은 퍼펙트 매직이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센 척 불어데지만 꽃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결국 꽃은 피었고 가이아의 모성을 꺾지는 못한다. 대지 위에 펼쳐지는 생명의 봄은 정신건강을 위한 보이지 않는 보약이다. 온갖가지 꽃들이 피어나 겨우내 메말랐던 마음에 건강한 행복으로 채워주기 시작했다. 언 땅을 녹이고 올라와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꽃을 보는 시간는 해마다 조급하다. 자연은 조금씩 그 약속에 어긋남을 보여주는 듯해서 올해도 조급증을 늦추지 못하고 노루귀와의 약속장소로 갔더니 우리들의 약속은 서로 시간을 착각한 듯 꽃은 천천히 오고 있는 중이고 우리는 채 도착이 완료되지 않은 무리들과 짧게 대면했지만 그래도 온다는 약속을 영 지키지 않은 것은 아니어..

등산 2024.03.20

금정산과 범어사

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금정산을 드디어 올랐다. 금정산을 가기 위해서 범어사를 먼저 참배를 했다. 마침 이월 초하루여서 경내는 신도님들로 북적이고 대웅전은 이미 들러설 틈이 없어 겨우 관음전에서 삼배를 드릴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대성암에 가면서 경내를 지나갔지만 기억나는 건 계곡에 돌이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금정산은 크고 질 좋은 암석이 많아서 전각의 주춧돌이 마치 기둥 같은 돌로 높게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돌이 건축자재로 많이 쓰인 것 같고 무엇보다 누각이나 일주문의 돌기둥인지 추춧돌인지 모를 만큼 나무 기둥과 돌기둥의 높이가 반반이라는 것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범어사는 금정산이 양팔을 뻗혀서 포근히 끌어안고 있는 형상 아래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전과 지장전이 일직선에 있..

등산 2024.03.10

수원화성의 설경

며칠간 봄비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요란한 비가 아니라 겨울꽃눈을 살살 만지며 눈을 뜨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막 눈을 뜨려는 산수화에 노란 물방울이 봄망울 같이 대롱대롱 맺혀 있다. 비 내리던 날씨가 새벽사이에 함빡 눈으로 바뀌면서 남몰래 꽃을 피우고 있었나 보다. 어릴 때의 기억에도 저장되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겨울풍경은 밤사이 내린 눈이 아침에 문밖으로 나갔을 때 와! 하고 새로운 세상이 된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던 그 기억이다. 우리 동네는 키 큰 나무와 숲이 좋아서 멀리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는 있지만 때마침 트레킹 약속이 있는 날이어서 너무 좋았다. 가까운 건 늘 멀리에 밀리는 순서에 놓인다. 그래서 여행은 먼 곳에 가면 뭔가 더 좋은 것이 존재할 것 같은 마음이 ..

등산 2024.02.22

모락산 눈밭

겨울산은 한 해 살이가 끝나고 성장을 위한 것들의 잠을 재워주듯 숫한 생명을 품고 있는 단조로운 흙빛으로 고요하다. 보이지 않아도 조심해서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이니기 때문에 산길이 아닌 곳을 벗어나 걸어갈 때는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얼굴을 밟을 수도 있고 여려해 살이들의 생명을 꺾어버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기도 한 것이 겨울 산이다. 의왕시에 있는 모락산(383m)은 여러 번 갔지만 겨울산은 처음이다. 도심에서 설경을 본다는 것은 함박눈이 내리는 당시가 아니면 보기 힘든다. 혹시 모를 눈길 산행을 위해 아이젠을 준비해서 갔더니 바닥에는 눈이 제법 남아 있어서 산행 내내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었다. 봄 여름에 걸을 때는 몰랐는데 눈 덮인 모락산은 왠지 더 큰 산 같았..

등산 2024.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