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지는 봄이다.
봉오리 져 있던 봄이 파안대소로 활짝 웃으니 여기저기서 강냉이 터지듯 하얀 봄꽃들이 마구 터진다. 수많은 꽃망울이 터지듯 들썩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잡은 날은 비를 동반한 여행이 되는 오류를 범했다. 그래도 먼지 낀 날보다 비가 내리는 말갛게 씻긴 날이 더욱 운치 있어 좋고 차창에 튀는 춤추는 빗방울을 바쁘게 닦아내며 양 차도에 펼쳐진 핑크빛 풍경들을 스쳐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마음은 풍경의 일부로 자연과 내가 몰아일체가 되는, 나도 봄의 한 폭에 담겨겼다.
생활 속에서 본 대구와 여행으로 본 대구는 달랐다. 지인과 칠곡에서 만나 팔공산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내가 알고 있던 대구는 선입견에 불과했다. 적기에 찾아간 차도 주변 산기슭에는 하얀 자두꽃이 피어서 구름처럼 깔려 있고, 기습적으로 덮치던 안개는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막히지 않는 차도는 마음의 여유까지 충분히 주었다. 붉게 피어난 도화와 하얀 자두꽃이 한순간의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꽃 지고 나면 농부의 일거리인 농작물이다. 일 년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농부와 먼저 일이 아닌 꽃으로 대면한다는 것이 이 또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하며 팔공산으로 달려갔다.
비는 하루종일 내리고 적기에 보고 싶었던 풍경들을 볼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고 비 때문에 돌아서기엔 찾아간 시간이 아까워서 기어이 짙은 안갯속에 검은 나뭇가지만 보면서 갓바위까지 올랐지만 안개는 더욱 심해져 팔공산은 한 자락도 보여주지 않았다. 내 오랜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팔공산과 갓바위를 들쳐봐도 그 기억 역시 안갯속이라 현상과 꿈의 분별이 없는 듯 두 번째의 팔공산도 안개와 만났다. 언젠가는 활짝 열린 팔공산의 전경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돌아섰다.
안갯속에 활짝 핀 자두꽃밭
차창으로 보이는 좁다란 2차선 차도에도 온통 벚꽃길이다.
산길에도 벚꽃이 피어서 길을 안내하는 듯했다.
울타리 너머의 복숭아밭에 도화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금호강 벚나무길,
팔공산 갓바위와 동화사를 보고 나서 대구역으로 가는 길에 걸었던 꽃길은 이제까지 보았던 최고의 벚꽃길이었다. 밑에는 금호강이 흐리고 위쪽 둑길 5.24킬로미터의 벚나무길은 사람만 걸을 수 있어서 차도에 핀 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멋지고 길에는 맨발로 걸을 수 있게 기능성 마사토를 깔아 두었다. 고목이 된 벚나무를 고개 들어 쳐다보면 꽃터널을 이루고 양 옆으로는 꽃날개를 펼치고 있는데 비를 흠뻑 들이킨 몸통은 검고 꽃은 연분홍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걷는 사람조차 많이 없으니 마음껏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것도 참 좋았다.
이 좋은 길을 인증을 안 할 수가 없지.
공산예원에서......
비가 오는 덕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공산예원이란 곳에 들렸다. 지인으로부터 많이 들은 바는 있지만 속으로만 어떤 곳에 어떤 분이 계시는지, 여러 번 들으면 보고 싶듯이 궁금해하면서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이번에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남은 시간에 제자처럼 드나드는 지인과 함께 그곳에 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공산예원이 자리 잡은 집터였다. 언뜻 보면 사찰 같기도 하고 별장 같기도 한 넓은 터에 이층 집을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들이 우거진 정원이 멋스럽고 동네보다 높은 위치인 팔공산 기슭 언덕이어서 바라보는 풍경이 또한 그림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예원답게 수많은 명작들이 걸려 있고 작품이 태어나는데 일조를 하는 여러 가지 인장과 소품들이 오브제 컬렉션 같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된 것도 볼거리였다. 또한 명작들을 설명해 주시는 분이 계셔서 더 잘 감상할 수 있었으며 유명한 작가남과의 티타임도 너무 감사했다.
남석 이성조 선생님에 대해서는 감히 설명을 할 수가 없으나 서예의 대가라는 것과 미술에도 능하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선생님의 엄청난 이력은 나로서는 생략하는 게 낫지 싶다.
선생님의 작품 일부,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의 신비와 글씨,
우주를 주제로 한 점묘화에서 세상 만물이 태어나는 건 음양의 조화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긴 전시실 전체를 차지하고도 다 펼치지 못하는 168폭 120m, 글자수 6만 9천384자가 깨알 같이 촘촘히 박힌 세계 최대규모의 묘법연화경 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작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 것 같은, 신력으로만 가능할 것 같았다.이 대작을 보는 순간 불자인 나는 불상이 앞에 없어도 그 이상의 기운이 느껴져서 절로 경건해지는 마음이었고 철야기도를 한 후에 가피를 입은 충만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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