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7

덕유산2(백암봉,동엽령에서 안성으로 하산)

중봉에서 사방을 조망한 후 덕유평전에서 마음마저 하얗게 백지 같은 상태가 되어 설화를 그리며 긴 능선길을 걷다가 백암봉에 한 번 더 오르고 나면 동엽령까지 가서 하산길로 들어선다. 한눈에 들어오는 하얗고 드넓은 덕유평전의 넉넉함 속으로 내려서면서 큰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눈꽃을 카메라로 담다 보면 마치 큰 산에 눈송이로 수를 놓은 듯한 사진이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인데 이번에는 조금 부족한 듯하지만 그 하얀색이 다른 어떤 색상보다 곱다. 그렇게 드넓은 평원에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가는 눈길이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 동엽령에서 물도 마시고 쉬다가 안성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구간이다. 아름다운 설경을 다 봤고 이제는 발밑만 보면서 내려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30..

등산 2023.12.29

트레킹의 즐거움

길을 걸었고, 길을 걸을 것이다. 물의 흐름은 끝이 있지만 길의 흐름은 어디가 끝인 줄을 모르고 정지된 듯하면서도 길 위에 올라서면 그것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23년 12월, 이 시점에서 돌어보니 단단하게 봉해진 한 해를 커팅하는 순간부터 길을 따라서, 길 위에서 우리는 흘러왔다. 아름다운 흐름이었다. 참 많이도 걸었다. 내 몸에 무명실을 두르고 그 끝을 길 위에 깔면서 걸었다면 아마 멋진 그림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연초에 선으로만 그린 드로잉이 완성되고 계절 따라 채색되어 가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다 보면 어느새 채색은 빛이 바래져 무채색의 겨울이 되고 한 해도 마무리가 된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길을 따라 흘러왔다. 어쩌다가 몸이 쉬어달라라고 반항을..

등산 2023.12.07

불암산

가을이 떠난 자리, 가을이 남긴 자리를 더듬어보려고 불암산을 찾았다. 가을이 떠난 자리라면 산자락을 뒤덮은 낙엽으로 그 여운을 남기고 있었고, 가을이 남긴 자리라면 텅 빈 충만 같은 게 있었다. 텅 비었다는 건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초록으로 메워졌던 자리가 텅 비었고, 충만이란 건 떠날 건 떠나고 남을 건 남은 그 자리를 다시 초록으로 채울 수 있는 모성을 간직한 나무들의 몸통이 숲을 꽉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텅 빈 듯하지만 가득 찬 겨울숲 속은 짙은 녹차향이 발자국마다 배어 나왔고 간밤의 겨울비로 젖은 눅눅함을 밟고 오랜만에 정상을 향해가는 길은 지난날의 기억을 찾을 수없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올랐으니 옛날 그 산이 아닌듯했다. 그때는 바위에 온통 붉고 검은 낙서로 도배가 되어있어서 좋은 ..

등산 2023.11.24

안동 천등산 봉정사

언젠가 뉴스에서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 오래된 건물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 목조건물이 바로 안동 봉정사라는 걸 알고 나니 꼭 보고 싶었다. 무량수전보다 13년이나 앞선다는 봉정사 극락전인데 와서 보니 사찰 안에 있는 전각들이 전체가 국보와 보물이고 시대 또한 고려말부터 신라 초. 중. 후기까지의 건축양식이 한자리에 다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봉정사의 또다른 놀라운 점은 너무 아름다운 장소라는 것이고 뒤에는 천등산이 있고 경내의 정원은 고목으로만 우거진 숲이 대단하고 영산암으로 오르는 계곡의 숲과 만세루와 우화루를 들어섰을 때의 아름다움, 다시 온다면 천등산도 올라보고 하루쯤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그..

등산 2023.11.08

안동 농암종택

청량산 산행을 마치고 걸어서 농암종택까지 올 계획이었으나 산행에서 쌓인 피로 때문에 택시로 바로 오고 말았다. 평소에 우리가 하던 트레킹에 비하면 거리상으로 가능했으나 이어질 일정을 생각해서 숙소로 바로 왔다. 해 질 무렵에 농암종택에 들어섰더니 농암선생의 17대 종손인 이성원 종손님의 안내를 받아 한속정사로 들어갔더니 이미 따뜻하게 방을 데워놓으셨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선 여정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대자연가든으로 안내받아 저녁을 먹고 밤길을 걸으며 숙소로 가는데 물소리 풀벌레소리만 들리고 하늘엔 별이 총총한데 폰 플래시로 길을 밝히며 밤 마실길 같은 숨죽인 밤의 정적을 느껴보는 것이 오랜만에 해본 경험이었다. 안동에는 숙박할 수 있는 고택과 종택이 45곳이 있다. 종택이 18개, 고택이 27..

등산 2023.11.06

청량산도립공원(축융봉)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 싶다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것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많이 했다. 이번 3박 4일간의 안동여행도 그랬다. 몇 년 전에 혼자 도산서원에서 이육사문학관까지 걷다 보니 왕모산 밑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멋진 풍경에 반해 일대를 서성이다가 조금 더 올라가니 단천교에서 시작되는 여뎐길이라고 하는 미완성의 길이 표지판만 있고 공사 중이라고 해서 더 가지 못하고 돌아서며 퇴계선생이 청량산까지 산책을 했다는 퇴계오솔길을 따라 다음에 꼭 걸어보겠다고 마음먹고 늘 그 길을 그리워했다. 그 후로 여태 가지 못하다가 3년이란 시간 속에 여행길이 묶이기도 해서 훌쩍 세월만 흘려보내는 사이 길은 완성이 되었고 그 길은 선비순례길 4코스라는 새로운 테마길이 되었다. 그래서 계획된 여행길에 친..

등산 2023.11.05

가을 스케치(북한산 사모바위 코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은 자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변화하는 사계절의 자연 밖에서 아름답다는 말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참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사물이 아닌 자연적 현상에서 어원의 본질을 느낄 수 있다. 시월도 막바지, 나는 구월에 가장 쓸쓸함과 허무를 느낀다. 마치 아무도 봐주지 않는 새벽녘 하현달처럼 쓸쓸한 정서에 젖어드는 시기다. 잠시 불그레한 빛을 뿌리다 숨어버리는 맥없는 하현달을 봤을 때도 그랬다. 상현달처럼 차오르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름달처럼 광채가 나는 것도 아닌 이울어가는 하현달은 잠 못 이루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달이어서 더 서글픔을 주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잠시 구월만 잘 넘기면 나에게도 차오르는 상현달 같은 활기가 넘친다. 가을 스케치를 위해 찾아든 ..

등산 2023.10.23

덕양산과 행주산성

올가을은 감사하게도 연일 좋은 날씨가 좋다. 집안에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다. 아직은 미세먼지도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는 가을하늘이 자랑거리였는데 언젠가부터 그 자랑거리 하나를 잃어버리고 나니 가을다움이 뭔지도 모른 채 짧은 게절이 다 가버리도록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았었다. 이대로만 가을하늘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욕심은 아니겠지. 수도권에는 산이 참 많다. 큰 산들은 서울 쪽에 많고 경기도는 야산이 많다. 요즘은 야산트레킹이 좋아서 많이 걷고 있지만 서울의 산은 거의 다 가봤기 때문에 가끔씩 찾고 있는데 이제까지 가보지 못한 산이 하나 있어서 미루다가 드디어 찾아갔다. 바로 고양시에 있는 덕양산이다. 서울에서 상징성이 있는 산길을 다 걸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외사산과 내사..

등산 2023.10.20

도봉산 (오봉에서 첫 단풍을....)

혹한과 혹서를 견디다 보면 다시는 다른 계절이 오지 않을 것 같음을 느낀다. 겨울 뒤에 봄이, 여름 뒤에 가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투정을 부린다. 계절의 악조건을 견디어 낼 때에는 그것마저 뭔가 쓸모 있음을 찾는다면 나쁜 계절은 없다. 두 번이나 미루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최적의 날을 맞았는데 내 몸 컨디션이 엉망이다. 전 날 밤 잠을 놓쳐버리고 겨우 한 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드러눕고 싶을 정도로 안 좋았지만 내가 만든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이 더 안 될 일이어서 먼저 도착할 친구에게 약을 부탁하고 기어이 그 장소, 그 길을 올랐다. 몸이 안 좋아도 산속에 더 좋은 처방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너무 좋은 풍경을 보면 혼자 독락 ..

등산 2023.10.16

오산 마등산

몇 년 전만 해도 연분홍색 연달래라고 부르던 산철쭉에 대해서 계절의 여왕이 오월이 쓴 왕관 같다고 썼는데 올해는 산철쭉이 오월이 되기도 전에 다 져버렸다. 물론 높은 산에는 아직 피지도 않은 곳이 있겠지만 동네 주변 야산에는 일찍 피고 일찍 저버려서 꽃에 대한 계절 인식을 달리해야 할 정도다. 경기도 오산에 있는마등산길을 5개의 봉우리를 다 거치면서 11킬로를 걸었다. 완만하고 나지막한 산길은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길이다. 좁다란 오솔길을 초록색으로 하늘을 가린 솔밭길을 걸으면 꽃들은 지고 잎들이 연두에서 짙은 초록색으로 변했고 아직 벌레들이 시식도 하지 않은 보드라운 잎들이 윤기 나게 싱그럽다. 산에 살던 숲 속 식구들이 정체성을 감추고 깊이 잠들었던 초목들이 일제히 깨어나 저마다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고..

등산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