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난 자리, 가을이 남긴 자리를 더듬어보려고 불암산을 찾았다. 가을이 떠난 자리라면 산자락을 뒤덮은 낙엽으로 그 여운을 남기고 있었고, 가을이 남긴 자리라면 텅 빈 충만 같은 게 있었다. 텅 비었다는 건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초록으로 메워졌던 자리가 텅 비었고, 충만이란 건 떠날 건 떠나고 남을 건 남은 그 자리를 다시 초록으로 채울 수 있는 모성을 간직한 나무들의 몸통이 숲을 꽉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텅 빈 듯하지만 가득 찬 겨울숲 속은 짙은 녹차향이 발자국마다 배어 나왔고 간밤의 겨울비로 젖은 눅눅함을 밟고 오랜만에 정상을 향해가는 길은 지난날의 기억을 찾을 수없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올랐으니 옛날 그 산이 아닌듯했다. 그때는 바위에 온통 붉고 검은 낙서로 도배가 되어있어서 좋은 산이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찾지 않다가 마침 친구도 가보고 싶다니 다시 올라본 불암산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위의 낙서는 찾을 수 없었고 길도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옛날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와서 너무 좋았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거북바위며 쥐바위 가 보였고 펑퍼짐한 화강암 몸통에 우뚝한 머리부분을 올려놓은듯한 정상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은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불암산은 서울의 북쪽에 경기도 남양주와 경계를 이루며 수락산과 마주 보고 있는데 높이 508미터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악산이라고 할 만큼 깔딱고개가 있고 상층부는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날이 맑으면 서울의 상계동 일대와 경기도 남양주의 일대가 산 아래를 둘러치고 있는 도시의 중심에 우뚝한 산으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을 텐데 하필이면 올 들어 처음으로 미세먼지 나쁨이어서 제대로 도시의 멋진 풍경을 맑게 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겨울숲을 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나무들의 몸통은 서로 뚝뚝 떨어져 있지만 우듬지의 가지들은 서로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는 듯하다. 마치 몸과 마음처럼,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네 곁에라는 뜻을 전하는 것 같다.
나무를 받치고 있는 벌칙.
쥐바위라는데 어디서 봐도 아닌 듯.
불암산 정상
어부바
쥐눈이 바위
거북바위, 불암산의 팔부능선쯤에 이르면 정상부 아래 거대한 거북이 한 마리가 산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엎드려 있는데 너무 거대해서 언뜻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거북바위라는 표지를 세워두어서 자세히 보면 대형 거북이다. 불암산은 장수하는 거북의 떠받치는 기운으로 영원할 것 같았다.
나도 거북처럼....
모션 1
모션 2
나도 거북처럼.
불암산 정상부
모션 3
정상을 향하여
소나무를 받쳐주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네. 잠시라도 우리가 이럴게...
하산해서 뒤돌아본 불암산
산행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데 우리 아파트 정윈은 아직도 가을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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