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트레킹의 즐거움

반야화 2023. 12. 7. 18:55

길을 걸었고, 길을 걸을 것이다.
물의 흐름은 끝이 있지만 길의 흐름은 어디가 끝인 줄을 모르고 정지된 듯하면서도 길 위에 올라서면 그것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23년 12월, 이 시점에서 돌어보니 단단하게 봉해진 한 해를 커팅하는 순간부터 길을 따라서, 길 위에서 우리는 흘러왔다. 아름다운 흐름이었다.

참 많이도 걸었다. 내 몸에 무명실을 두르고 그 끝을 길 위에 깔면서 걸었다면 아마 멋진 그림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연초에 선으로만 그린 드로잉이 완성되고 계절 따라 채색되어 가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다 보면 어느새 채색은 빛이 바래져 무채색의 겨울이 되고 한 해도 마무리가 된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길을 따라 흘러왔다. 어쩌다가 몸이 쉬어달라라고 반항을 하면 "알았어, 쉬어줄게"하다가도 탈 난 몸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숲으로 찾아들어 숲 속 세러피를 하면 몸이 더 좋아라고 한다.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몸이 안 좋을 때 쉬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지만  트레킹 마니아가 되고 나면 걷지 않으면 병이 난다.

바람 난 마음 따라 한 해를 잘 따라와 준 몸이 너무 감사해서 이즘에는 내 몸에 대접을 해야 할 때다. 마구 부려먹지만 말고 대접을 해주면 몸도 금방 그것을 알아차리고 더 잘 따라와 준다. 그런데 보양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딱히 무엇으로 대접을 해야 할지, 감사하게도 푸대접에 길들여진 내 몸은 화를 내지 않고 아직까지는 말썽을 부리지 않아 더욱 고마운 몸이다.

신년 걷기와 송년 걷기 중간을 채우는 것은 행복 걷기다. 팀이 함께하지 못하는 날은 힘이 조금 빠지기도 하지만 무사히 행복 걷기를 이어와준 트레킹메이트한테도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걷는 걸 좋아하는 마음이 같고 단순히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만나는 온갖 것을 지나치려 하지 않고 들여다보면서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간직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면서 와유가 아니라 현장주의여서 어디에 뭐가 좋다 하면 숫하게 넘쳐나는 정보는 내 것이 아니라면서 직접 가서 보고 즐기고 담아 오는  현장주의자들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길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한 해의 끝지점 어느 한 곳에 잠시 나뭇가지에 매어둔 실 끝을 풀어서 다시 이어가며 새로운 드로잉과 채색을 해나가는 것이 목표가 된 사람들, 그건 바로 우리들.

과천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길이다.
서울대공원길은 잘 가꾸어진 인위적인 면도 있지만 산림욕장길은 자연적인 산길이어서 적당히 오르내리는 구간을  걷고 나면 하루 운동량으로 충분한 네 시간 코스가 된다. 접근성도 좋고 즐길거리도 많은 사계절이 아름다운 공원이지만 우리는 주로 신길만 걷는다. 산림욕장 아래는 동물원 둘레길이 있는데 조금 짧지만 가다가 언덕에 호수를 만날 수도 있어 너무 좋다. 하늘을 가리는 키 큰 나무들이 가로수로 되어 있는 4.5킬로의 길이다 그 외에서 여러 개의 사잇길이 있고 호수도 있으니 다 갖춘 공원이 언제나 처음 같은 즐거움을 준다.

은빛 내리는 길 위에서 너무 좋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해 내는 친구들.

바라만 봐도 좋은 산, 청계산이 눈앞에 있다. 저 산에도 안 가본 곳이 없다.

산림욕장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숲 속에는 쉴 공간도 많아서 좋다.

서울대공원 동물원둘레길

가을의 여운이 내 마음 메어놓은 같아.


아래부터는 안양 수리산 길.

수리산 도립공원, 경기도 안양시와 군포시 안산시에 걸쳐 있는 최고봉인 높이 489미터의 태을봉이 정상이다. 정상같이 보이는 슬기봉에는 군부대가 있는데 거기서 보이는 일대 풍경이 아름다워서 더 가지 않아도 좋다. 정상까지는 높이에 비해 가파른 길을 올라야 되는 난코스가 있다. 정상보다는 길을 좋아하는 우리는 안양 철쭉동산에서 시작해서 임도를 돌아 다시 철쭉동산을 지나 수리산역으로 갔다.

수리산 임도, 흙길이어서 좋고 철쭉이 피는 봄이면 더 좋은 길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연상작용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겨울도 좋다.

전나무 숲, 너무 좋은 곳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싱거워서 우리는 몸으로 표현한다. 솔잎이 쌓여서   고급 카펫 같은 질감이 좋고 겨울 같지 않은 푸르름이 또한 너무 좋다.

철없는 진달래가 선잠을 깨서 활짝 웃지도 못한다.

안양 철쭉동산에 있는 수리산의 모형,

수리산 전경, 미세먼지가 많은 겨울철에 이렇게 좋은 크리스털 같은 날씨에는 산에 가는 게 가장 잘하는 일이다. 맑고 투명한 날씨가 너무 좋아 짧아지는 하루의 한계가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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