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을 보내면서 멋진 설경 한 번쯤은 봐야 지루함을 심리적으로나마 단축시킬 수 있다. 그 멋진 설경을 보기 위해서는 덕유산으로 가야 실패할 확률이 낮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덕유산은 갈 때마다 속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왜냐하면 15분 걸리는 설천봉까지의 거리가 마치 15시간이 걸리는 것 같은 줄 서기 때문이다. 지난봄에 이탈리아 바티칸 대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2시간 동안 줄을 섰는데 이번에도 그 버금가는 덕유산 정상을 향해 곤돌라 타기 위한 줄 서기가 한 시간 반 정도였다. 약 50미터짜리 끈을 네 번으로 접어야 할 정도로 지그제그로 사람의 선을 펼쳐놓고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서 손발이 견딜 수 있었지만 며칠 전처럼 영하 10도 정도의 바람까지 심한 날이라면 줄 서다가 얼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날씨가 따뜻해서 더 인파가 많았는지도 모른다.
긴 줄 서기를 하면서 이제 덕유산은 포기다라고 투덜대면서 한 발자국씩 좁혀가지만 한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늘 충돌하고 있다. 곤돌라를 타고 15분간 올라가면서 창으로 보이는 설경을 마주하는 순간 "이제 안 올까야"라고 했던 마음은 금방 사라지고 "역시 덕유산이야, 너무 좋아" 하면서 최고에 도달하기 위한 대가를 치르고 나면 덕유산은 그만큼 아름다운 보상을 듬뿍 안겨주는데 한아름 받아 안은 보상은 환호성이 되어 터져 나온다.
덕유산에 폭설이 내리던 날은 너무 추워서 산행금지까지 되었는데 며칠 따뜻했다고 산 아래는 눈이 녹고 있어서 줄 서기도 힘드는데 설경도 볼 게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멋진 설경을 보기 위해서는 추운 날이 좋고, 산행하기엔 따뜻한 게 좋으니 적당함을 바라는 건 욕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설천봉에서 향적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향적봉 아래는 언제나처럼 덕유산 특유의 관목에 꽃 피운 설화는 역시 너무 아름다웠다. 길은 다져져서 단단한 가운데 떼 묻지 않은 하얀 길이 뽀드득뽀드득 발 밑에서 내는 소리는 경쾌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설천봉에서 200미터를 오르면 향적봉에 도착한다. 등산객이 아니면 거의 향정봉까지만 왕복하는 사람이 많아서 좁은 길을 서로 부대끼면서 오르내리지만 표정에는 다 만족했다는 행복함이 묻어 있다. 어쩌다 발이 밟혀도 성내지 않을 것 같은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이다. 곤돌라로 왕복할 많은 사람들이 내려가고 등산객만 향적봉에 오른 후 중봉, 백암봉을 지나 동엽령
에서 안성으로 내려가는 네 시간 반의 눈길을 타고 내려간다. 그제야 마주치는 사람이 없는 편도의 눈길을 만끽하면서 간다.
설천봉 상제루
향적봉 정수리의 검은 암봉
분화구처럼 폭 꺼져서 바람타지 않는 향적봉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쉬어간다.
파란 하늘이 바탕색이 되어주니 더욱 아름다운 눈꽃이다.
붉은 몸체가 돋보이는 그림 같은 주목
덕유산에서 보이는 원경은 중봉에서 사방을 돌아볼 때가 가장 멋지다.
백암봉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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