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은 한 해 살이가 끝나고 성장을 위한 것들의 잠을 재워주듯 숫한 생명을 품고 있는 단조로운 흙빛으로 고요하다. 보이지 않아도 조심해서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이니기 때문에 산길이 아닌 곳을 벗어나 걸어갈 때는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얼굴을 밟을 수도 있고 여려해 살이들의 생명을 꺾어버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기도 한 것이 겨울 산이다.
의왕시에 있는 모락산(383m)은 여러 번 갔지만 겨울산은 처음이다. 도심에서 설경을 본다는 것은 함박눈이 내리는 당시가 아니면 보기 힘든다. 혹시 모를 눈길 산행을 위해 아이젠을 준비해서 갔더니 바닥에는 눈이 제법 남아 있어서 산행 내내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었다. 봄 여름에 걸을 때는 몰랐는데 눈 덮인 모락산은 왠지 더 큰 산 같았다. 마치 정상 같은 봉우리를 몇 개를 넘어야 진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던 것은 그만큼 눈길이 쉽지 않아서다.
트레킹메이트들과 함께, 밟아도 때 묻지 않는 눈밭을 걸어보는 것이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이었다. 갈 때마다 정상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둘레길을 한참 돌고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니 몇 번을 가도 들려보지 않았던 사인암을 만났다. 눈 덮인 사인암은 아래가 낭떠리지로 위태로운 가운데 앞을 가리지 않는 조망이 좋은 곳에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슬픈 사연이 있는 바위인데 우리는 위에 올라 재미있게 사진을 찍었다.( 아래 사진에 설명)
사인암이 있는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눈이 있을 때는 조심해야 할 구간이었는데 꽤 가파른 능선길이 끝나고 한 고개 넘으면 널찍한 모락산성자리가 나오는데 마침 정자가 있어서 편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 정상까지는 길이 미끄러울 것 같기도 하고 몇 번을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모락산성까지만 걷고 평촌마을로 하산했다
주기적인 우리들의 트레킹은 늘 어디로 갈까를 정하는 것이 약간의 난제가 되고 있다. 수도권 일대의 산은 거의 다 걸었기 때문에 이제는 학습으로 인한 볼거리를 찾아 언제 어디에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알고 다시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겨울이 끝나면 우리는 또 어디를 가야 봄손님을 맞을지 알고 그곳으로 갈 것이다.
모락산 바위치고는 꽤 큰 것이어 이름이 있을법한 암석인데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앞에 세워둔 팻말의 이름을 따서 소방암이라는 명명을 하고 왔다.
겨울에만 살고 있는 흰돌고래.
눈바탕의 곡선길이 멋지다. 직선은 날카롭다. 그래서 나는 부드러운 곡선을 좋아한다.
겨울을 함께하고 있는 사이좋은 우듬지의 이웃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경계를 피해 광주 의곡, 지금의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으로 은신하였다고 한다.
임영대군은 산 아래 초막을 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높은 봉우리 에 올라 궁궐을 바라보고 절하며 예를 갖춰 종묘사직을 걱정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후손들은 임영대군이 '한양을 사모하던 산'이라 하여 모락산에 망궐례를 올리며 넋을 기리는 제를 올리던 바위를 사인암이라 하였으며, 불당을 짓고 경일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경일암은 연계해서도 갈 수 있는 백운산에 있다.
사인암
백제시대의 산성인 모락산성 안이 널찍한 마당 같다. 겨울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장소다.
산아래 있는 프라타나스 나무인데 방해할 다른 나무가 없어서 일대땅을 다 차지하고 마음껏 날개를 펼치고 사는 독보적인 나무다. 얼마나 더 클지 상상이 안 간다.
북극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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