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수원화성의 설경

반야화 2024. 2. 22. 09:36

며칠간  봄비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요란한 비가 아니라 겨울꽃눈을 살살 만지며 눈을 뜨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막 눈을 뜨려는 산수화에 노란 물방울이 봄망울 같이 대롱대롱 맺혀 있다. 비 내리던 날씨가 새벽사이에 함빡 눈으로 바뀌면서 남몰래 꽃을 피우고 있었나 보다. 어릴 때의 기억에도 저장되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겨울풍경은 밤사이 내린 눈이 아침에 문밖으로 나갔을 때 와! 하고 새로운 세상이 된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던 그 기억이다.

우리 동네는 키 큰 나무와 숲이 좋아서 멀리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는 있지만 때마침 트레킹 약속이 있는 날이어서 너무 좋았다. 가까운 건 늘 멀리에 밀리는 순서에 놓인다. 그래서 여행은 먼 곳에 가면 뭔가 더 좋은 것이 존재할 것 같은 마음이 작용해서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도 멀리멀리로 떠난다. 그런데 설경은 해가 나고 바람이 불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눈 내린 풍경을 즐기고 돌아가는 길은 조금은 허무하고 마치 꿈을 꾼 듯 일순간의 즐거움이 될 때가 더러 있다. 물론 높은 산에 쌓인 눈이라면 그렇지 않지만 마을이 가까이 있는 산은 잠시만의 순수다. 그래서 금방 쫓아가기엔 마음이 바쁘다. 더구나 봄눈이라면 빛에 더욱 약하다. 다행히 바람이 없고 구름 낀 날씨여서 마음의 여유가 있었지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수원화성은 한 시간 안으로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좋다. 도심에 있는 아름다운 장소여서 먼저  성밖을 돌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벌써 눈송이가 조금씩 녹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올 겨울에는 눈을 원 없이 즐겼다. 덕유산에 가야만 눈을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힘들게 올라갔는데 그 외에도근교 산행 에서도 여러 번 눈산행을 하게 되어 겨울을 지루하지 않게 잘 보내게 되었다. 겨울에는 눈이 와야 겨울답지만 나무들은 아닌 것 같다.수원화성을  돌아본  둘레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습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있어서 너무 아까웠다. 해마다 겪는 춘설의 수난을 견디고 있는 멋진 소나무들을 보면 제 몸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울고 있을 것 같은 나무들의 마음이 생각나서 그런 나무들을 볼 때마다 내 몸의 일부를 잃어버린 만큼 마음이 아프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밖을 봤더니 올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와서 동네의 설경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마침 약속이 있는 날이어서 더 좋은 설경을 찾아갔다.

친구들과 함께 즐긴 눈길도 부족해서 집으로 돌아와 아직 하얗게 간직된 동네를 다시 돌아봤다.

눈과 기와집은 가장 장 어울리는 풍경이다. 수원화성을 돌아보며 이쁜 풍경 아름다운 조화를 담았다.

수원화성 서장대에서 바라보는 원경인데 오늘하루 눈 찾아간 곳은 다 만족했을 풍경이다.

눈송이를 고이 담고 꽃이 된 눈.

산수유 꽃망울

위쪽에서 내려다본 목련나뭇가지.

설중매가 된 붉은 매화와 산수유가 이쁘지만 얼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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