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금정산을 드디어 올랐다.
금정산을 가기 위해서 범어사를 먼저 참배를 했다. 마침 이월 초하루여서 경내는 신도님들로 북적이고 대웅전은 이미 들러설 틈이 없어 겨우 관음전에서 삼배를 드릴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대성암에 가면서 경내를 지나갔지만 기억나는 건 계곡에 돌이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금정산은 크고 질 좋은 암석이 많아서 전각의 주춧돌이 마치 기둥 같은 돌로 높게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돌이 건축자재로 많이 쓰인 것 같고 무엇보다 누각이나 일주문의 돌기둥인지 추춧돌인지 모를 만큼 나무 기둥과 돌기둥의 높이가 반반이라는 것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범어사는 금정산이 양팔을 뻗혀서 포근히 끌어안고 있는 형상 아래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전과 지장전이 일직선에 있고 그 외 전각은 벽처럼 사각형을 이루는 가람배치도 특별하고 그래서 대웅전 앞마당도 네모 반듯하다. 금정산이 낳은 대 명찰에서 잠시라도 참배를 하고 나니 경건한 마음으로 산에 오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경내를 다 둘러보고난 후 오른쪽 청연암 옆으로 산에 오르는데 겨우내 얼어 있던 산길이 녹아서 몹시 질척거려 발을 놓을 곳이 없어 힘들게 올랐다. 아직은 잠든 숲이 어떤 이름표를 달고 있는지 알아볼 수 없어 숲바다를 이룰 금정산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날씨가 투명해서 정상에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올랐다.
조계문에서 머리를 낮추면 천왕문과 불이문이 한 번에 보인다. 이 세 개의 문을 통해서 올라서면 대웅전에 이른다.
대웅전, 보물 제434호인 정면 4칸 측면 4칸인 정사각형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웅전이고 그것이 특징이다. 보물 제434호.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1717년(숙종 43)에 건립된 것이다.
일주문 역시 처음보는 특별함이다. 일주문이라고 하면 두개의 기둥에 지붕을 얹은 형태인데 범어사의 일주문은 네 개의 돌기둥이 가로로 세개의 현판인 조계문,선찰대본산,금정산 범어사라는 현판을 받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제루는 설법당이며 대웅전에서 보면 금강계단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걸 보면 계를 받는 장소이기도 한 것 같다. 보제루와 대웅전이 마주보고 있는데 가장 으뜸이 되는 전각인 것 같다. 무심코 찾아갔는데 마침 음력 2월 초하루여서 안에는 자리가 없고 밖에서 예불을 하고 있는 대웅전 앞마당이다.
멀리서 보이는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진흙이었으나 정상에서 보는 금정산은 암석이 많은 돌산인 것 같았다. 고당봉에 오르니 얼기설기 짜여 있는 바윗돌이 닳기도 했고 진흙이 묻어서 무척 위태로웠다. 그런데 일요일이어서 사람들이 많아
정상석 인증은 포기하고 전망 좋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매료되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금정산은 산보다 산에서 보이는 조망이 월등해서 유명세를 탈만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은 더욱 강폭이 넓어져 있고 그 끝이 바다로 흘러드는 낙동강하구의 드넓은 들판과 바다, 강이 하나가 되어 있는 낙동강 여정의 끝을 보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눈을 돌리면 금정산성이 용이 누워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잘 보이기도 한다.
금정상 꼭대기 아래에 있는 큰 바위가 북한산 사모바위 같은 모양이다.
금정산 정상에서 보이는 해운대 마린시티의 원경과 바다.
오랜만에 좋은 날씨여서 정상에서 낙동강 줄기와 하구 쪽의 많은 농토가 펼쳐져 있고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이 보이는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원경이 다른 어느 산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멋진 풍경이다.
낙동강 여정의 끝자락을 이렇게 선명히 본다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금정산의 정상인 고당봉(801.5)인데 칼바위들이 위태롭게 모여 있고 주말이어서 인증을 하려는 인파들이 줄을 서 있다.
금샘, 기록에 보면 금샘은 8천만 년 전부터 형성된 화강암 바위로 풍화작용과 기후변화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풍화혈이라고 하는데 세종실록 지리지 등 역사기록(1418년)에 금빛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부른다.
원래의 정상석인데 2016.8.1일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 시 낙뢰로 파손이 되어 금정산 아래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엄청난 통바위를 파내고 물을 담아서 사용했던 것 같은데 사용은 하지 않지만 옛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의 역사적인 물건이다.
정상 인증에 밀려나 정상석 아래서 나도 이곳에 왔노라 하고 한 껐을 찍었다.
금정산성 북문, 사적 제215호 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길이 18.845미터 높이 1.5~3미터이며 국내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바깥성채는 예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성체위에 여장은 깨끗한 산돌로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금정산성 바깥 성체
산성 북문을 통과해서 하산을 했는데 하산길은 계곡의 돌계단을 한참 지나 막바지에 도달하면 그야말로 돌바다를 지난다. 어디서 어떻게 싸인 돌들일까, 돌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바위덩어리들이 어느 돌기둥을 만들기 위해 선택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 흔들림 없이 잘 짜인 바윗돌이 석제의 돌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금정산 등산의 백미는 유명한 동래온천인 허심청에서 온천욕을 한 후 동래파전과 막걸리로 하루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완벽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