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가을산의 열매들

꽃이 피지 않고 열매 맺는 일을 보았는가, 사계절을 살아내는 자연의 순리를 난 다 지켜보았다. 작은 새싹이 모체 밖으로 쏙 나와서 그것들이 성장해가고 꽃 피우는 것까지, 한때는 꽃으로도 아름다웠지만, 잎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지. 꽃자리가 다 열매로 맺어지는 건 아니었어. 좋은 조건의 환경에서 자라야만 열매 맺는 건 어쩌면 우리의 삶과도 똑같은 결과였어. 이제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어딘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한 유혹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바람에게 부탁하고 새에게 부탁해서 땅으로 내려앉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임종의 때를 기다리는 모습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오직 자연뿐이다 모든 삶이 마지막까지 저토록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이제 곧 모든 나무들이 몸에 붙어 있던 걸 다 떨구면 이름표를 떼는 거다. 그리..

등산 2022.10.18

성남누비길

목표가 있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도전의식으로 또다시 성남 누비길 위에 섰다. 돌아보니 참 많이도 걸었다. 완주라는 목표 없이도 언제나 길을 걸었지만 이왕이면 목표를 세우면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고 아직은 도전적인 정신을 갖는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아서 성남 둘레길을 짧지만 완주라는 목표를 세웠다. 목적이라고 하면 "왜"라는 의문에 접근하는 생각이 들지만 목표는 의문 없이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서 목적보다는 목표가 더 가벼운 마음가짐이 된다. 목표점이 없으면 가다가 힘들면 돌아서게 되지만 지향하는 것이 있으면 끝을 보게 된다는 경험을 맛봤던 우리들이다. 그동안 완주한 것들을 살펴보니, 제주올레길 두 번 완주, 서울 둘레길, 북한산성 14 성문 완주, 한양도성길 두 번, 사도북(..

등산 2022.10.14

선암사와 송광사(천년불심길)

오래전 어느 가을날 등산하면서 지나갔던 그 길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았던 천년불심 길을 가는데 기어이 다시 찾은 그 길은 그때의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길은 분명 그대로인데 단풍이 곱던 그날과는 너무 달라서 오르면서 계속 그 길이 맞는지 의심을 품었지만 분명 그 길이 맞았다. 그뿐 아니라 기억이란 것이 힘들었던 구간은 잊고 좋았던 것만 편집되어 저장되나 보다. 그렇게 나직하고 평이했던 그 길의 아름다운 기억에 흠집을 내면서 오르다 보니 쉬어가는 큰 굴목재가 700미터가 넘는다는 걸 몰랐다. 아니 잊었다. 가파른 너덜길을 함께 걷던 일행들은 연신 속았다며 웃었지만 속으론 미안하고 잘못 인도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동서에 품고 있는 조계산은 두 절을 왕래하던 운수납자의 구도의 길과..

등산 2022.10.02

여수 금오도(비렁길)

길은 세상에 그려진 장기들이다. 일상이 답답할 때 숨을 쉬게 하는 허파 같은 역할을 한다. 숲 속에 있는 길은 사람의 마음작용을 잘 돌게 하여 경화를 풀어주고 삶의 체증에도 숨을 쉬게 하는 장기들의 집합체 같다. 아름다운 많은 길들은 세상 곳곳에 임자도 없고 차별도 없이 누구나 위로받으며 걸을 수 있도록 하얗게 그려져 있다. 자연 속에는 이미 그려진 사계절의 수많은 그림과 곳곳에 써놓은 자연의 글들이 있어 그걸 보이는 데로 내가 옮겨오기만 하면 된다. 나의 글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다시 남도에서 만났다. 세상의 길을 다 걷고 싶은 여전사들이 모여 여수 바다에 그려놓은 산수화 속에 길이 있다기에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려고 다시 모였다. 남도의 여름은 아직도 꼬리를 거두지 않고 끝자락에 잔뜩 습기를 머금고..

등산 2022.10.02

가을아침

허공에 돌을 던지면 쨍그랑 소리가 날 것 같은 크리스탈 하늘이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좋은데 초록은 지쳐만 가는구나. 푸르른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등산 2022.09.07

마음의 종합비타민(남산과 안산자락길)

마음에도 비타민이 필요해, 무더운 여름날 집에 있으면 더위는 피할 수 있으나 뭔가 정신적 영양소가 부족한 듯 몸이 축 처지고 만다.그럴 때는 얼른 숲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 삼복더위 2주간 서울 남산과 안산을 연속으로 걸었다. 남산 정상에서 도심을 내려다 봤을 때 한 번도 선명한 서울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장마철에 여러날 씻어내린 서울을 보러 갔는데 또 허탕이다. 비가 그친 직후라야 좋을텐데 비 속에서 걸었더니 시야가 뿌옇다. 남산과 안산은 서울시민들의 산소 공급처다.산에서 만들어진 질 좋은 산소가 도심을 향해 사방으로 흘러가지만 사바와 같은 도심에 이르면 어느새 매연과 뒤섞여 희석이 되고 마니 청정한 공기는 호흡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청정한 공기를 그대로 받아 마시려면 숲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빽..

등산 2022.07.22

소백산

2022.6.1일 주인공이 빠진 축제는 빛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소백산 철쭉 시기에 맞춰서 산행 날을 잡고 보니 소백산 철쭉제와 겹쳤다. 그런데 주체 측이 산을 올라보지 않고 정한 날짜여서일까, 3년 만에 열리는 축제라는데 시기도 잘 맞추지 못하고 꽃도 예전 같지 않아서 비로봉까지 올랐지만 축제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떤 축제든 축제시기는 피하는 편이다. 별로 볼거리도 없고 소란하기만 할 뿐 좋아하지 않는데 우연히 겹쳤으니 뭔가 분위기라도 느낄까 싶었지만 미리 상황을 다 알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꽃을 보기 위해 모여들지는 않았다. 철쭉은 이미 다른 산에서 봤으니 오롯이 소백산을 느끼기 위해 산악회가 아닌 J와 둘이서 갔다. 산악회를 따라 몇 번 가봤지만 단체는 언제나 바쁘기만 하고 스쳐가는 희방..

등산 2022.06.03

인릉산(성남누비길 7코스)

오월이 구름 되어 사라져 가고 유월이 내린다. 오월의 여운은 꼬리조차 싱싱하다. 타는 갈증을 느끼던 오월이 막바지를 지나는 길목에서 오랜만에 단비로 목을 축이고 너무 좋아서 산들산들 초록 춤사위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니 그 밑을 지나는 우리들마저 그 춤사위에 덩달아 춤추듯 즐겁게 산길을 걸었다. 비 온 후 산길은 촉촉한 생명의 바탕인 흙에서 올라오는 공기와 싱싱한 숲에서 나오는 향기로 가득찬 길을 걷는 내내 마음조차 혼미해질 정도였다. 청계산은 수도 없이 갔지만 큰 산 그늘 같은 밑자리에 인릉산이 있는 줄 몰랐네. 잘난 사람 옆에 있으면 늘 묻혀버리는 평범한 사람처럼 365.2미터의 인릉산은 그렇게 나지막하게 묻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성남 누비길 마지막 코스인 7코스를 걷다 보니 인릉..

등산 2022.05.26

겨울 도봉산

24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대한의 추위를 절정으로 이제 겨울 추위도 잦아들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절기를 기념이라도 해야 된다는 둣 오랜만에 도봉산을 찾았다. 전 날 대설주의보란 예보에 얼마나 들떴는지 내일은 산으로 가야 되는데 누구와 가지, 하면서 짝을 물색하고 있는데 이심전심인지 늘 함께 산행을 즐기던 나의 트레블메이트가 먼저 도봉산 가자며 당장 올라온다고 해서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그녀가 옆에 있을 때 너무 좋았는데 먼 곳으로 이사를 간 후 동행할 친구가 늘 아쉬웠다. 옆에 친구가 있다고 다 산행을 함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고치로 끌어올렸던 기대치는 도봉역에 내리면서 반이 뚝 잘라졌지만 음지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야, 지난해의 멋진 설경을 추억 속에서 꺼내어 잘라진 기대를 품고 정상을 ..

등산 20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