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비타민이 필요해,
무더운 여름날 집에 있으면 더위는 피할 수 있으나 뭔가 정신적 영양소가 부족한 듯 몸이 축 처지고 만다.그럴 때는 얼른 숲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 삼복더위 2주간 서울 남산과 안산을 연속으로 걸었다. 남산 정상에서 도심을 내려다 봤을 때 한 번도 선명한 서울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장마철에 여러날 씻어내린 서울을 보러 갔는데 또 허탕이다. 비가 그친 직후라야 좋을텐데 비 속에서 걸었더니 시야가 뿌옇다.
남산과 안산은 서울시민들의 산소 공급처다.산에서 만들어진 질 좋은 산소가 도심을 향해 사방으로 흘러가지만 사바와 같은 도심에 이르면 어느새 매연과 뒤섞여 희석이 되고 마니 청정한 공기는 호흡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청정한 공기를 그대로 받아 마시려면 숲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빽빽한 숲 속에서 숲이 주는 공기를 마시면서 걷다보면 전 날 잠을 자지 못해도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건 다 좋은 공기덕분일 것 같다.
재물은 독식해야만 내것이지만 행복은 나누었을 때 배가 되어 내것도 되고 우리것도 된다.내것 보다는 우리의 것이 되었을 때 순간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추억 속에 쌓여서 꺼내볼 때마다 행복의 순간이 새롭게 미소가 되어 살아난다.그래서 우리는 트레킹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좋은 길을 걷는다.만나면 언제나 즐거운 소란을 곁드린다. 길가에 나 있는 풀포기 하나조차 그냥 지나치지 않고 뭔가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분석하고 즐거워한다.어제는 내기를 했다. 좋다는 표현을 하면 벌금을 내기로 했지만 몇발자욱 못가서 잊어버리고 좋다좋다를 연발해선 결국 다 같이 벌금은 없던 것이 되고 말았다.그만큼 자연 속에서는 오직 그 순간에만 집중하지 다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그래서 마음은 종합비타민으로 충만하고 정신건강을 위한 자연의 숲 테라피 효과를 누린다.
안산은 높이 295.9미터,둘레 7킬로미터의 나즈막하고 편안한 산이다.말안장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보다는 구릉지에 봉우리 하나 얹어놓은 것 같은 편안한 산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서대문구 여덟개의 마을이 공유하며 산을 감싸고 있으니 각 마을에서 오르는 길 또한 많다.한 때는 한양의 도읍지 후보지였을만큼 아름답고 편안한 산이다.정상인 봉수대 오를 때만 조금 수고를 하면 둘레길 전체가 나무데크로 길이 되어 있어서 누구나 즐겨 걷는 길이다.봉수대에서 내려다 보면 인왕산 정상을 마주하고 멀리 북한산 줄기와 겹쳐진 보현봉,족두리봉이 수도의 진산으로 우뚝하게 보인다.막힘 없는 봉수대에서 서대문형무소가 보이는데 아무리 좋아도 비운의 역사를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도 같아서 잠시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호흡이 멎은 역사의 울분을 본다.
봉수대를 내려서서 참나리가 지천인 길을따라 하산길 자락에 이르면 자그마한 연못이 있는데 웃음으로 잔잔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며 잠시 연꽃처럼 피었다가 다시 길을 간다.비가 온 후 습도가 최고치에 달했지만 짓푸른 초록이 모공마다 들어차 몸 속 동맥과 정맥을 다 돌아나온 듯 땀조차 초록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여름이 싫지 않는 건 멀어져 가는 내인생의 푸른빛을 자연 속에서 찾고 싶어서다.푸르다가 붉었다가 사그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안산의 전부를 알기 위해서는 사계절을 다 봐야된다.그래서 다음 계절 봄을 위하여 마음 한구석 여백으로 비워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