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잠든 겨울 숲에서.....

2021년, 아슬아슬하게 한해를 거의 다 지나왔다. 새 달력의 365일을 받아 들고 숫자 하나하나를 살얼음 딛듯이 징검징검 건너는데 날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반질반질한 징검다리 돌이 되어 위태롭고 혹시라도 잘 못 디뎌 전염의 바다에 빠져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어느덧 종착지에 도달했다. 그러다 보니 돌 하나하나에 간절함을 실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사히 건너옴에 무척 감사하며 새로운 날들을 받아 쥐었을 때는 거친 돌을 쉽게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길 두 손 모으면서 시작하는 시점에 와 있다. 새날들은 어느덧 내 앞에 서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며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듯한데 징검다리 입구에 서성이며 선뜻 들어서기 겁이 날 정도로 낯선 숫자가 무섭다. 사계절 중에 가장 오래 기다려야 하는 계절은 봄이다..

등산 2021.12.28

팔달산에서 광교저수지까지......

가을 한 철은 집 밖에만 나가면 내 모습이 풍경화 속에 들어 있는 인물이 된다. 어느 한 곳이 아닌 마을마다, 들판마다, 산천마다 저마다의 풍경화를 그려놓고 마치 심사를 받기 위한 행사를 열어둔 것 같다. 아무 곳을 다녀도 산, 들, 마을의 점수를 매길 수가 없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다 좋아, 그런데 전시 기간이 너무 짧아" "더 길게 전시하는 쪽에 점수를 많이 줄 거야"라고 말하고 말았다. 새봄 어린 새싹에서부터 낙엽이 질 때까지 난 그들의 한 해 살이를 지켜보며 산천을 헤매고 다녔다. 모체에서 아기 눈이 쏙 나오고, 눈을 뜨고, 꽃 피우고, 꽃지고, 무성한 숲이 되고, 단풍 들고 낙엽질 때까지, 이제 낙엽 지면 나무들의 한 해 살이는 끝이 나는 셈이다. 겨울에는 숙면을 취하면서 이듬해 봄을 위한 ..

등산 2021.11.10

속리산 가족등산(큰딸 부부)

가을을 가장 먼저 만나러 가는 속리산 가는 길이다. 더디다고 투정 부리고 싶지 않은 계절이 가을인데 그래도 가을의 색체만큼은 기다려진다. 올해는 단풍이 늦은 감이 있어서 속리산에도 아직 만산홍엽이 되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봐야 될 것 같았다. 세 번째 속리산을 가지만 법주사에서 오르기는 처음이다. 갈 때마다 법주사와 정이품송이 보고 싶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쳐가는 절이나 문화제 같은 것은 보려 하지 않아서 늘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큰딸 내외하고 승용차로 가족 등산으로 가니까 법주사 들머리에 있는 정이품송을 만나고 하산 길에 법주사 경내를 둘러보는 시간이 되어서 너무 좋았다. 정이품송 앞에 섰는데 순간 큰 어른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그런 마음이 밀려왔다. 600여 년을 간직하면서 한쪽 팔..

등산 2021.10.24

청계산 과천쪽으로

산천은 이제 이름표를 다 떼고 한 가지 녹음으로 짙어가는 유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봄꽃이 다 지고 나니 이름표 없이 그냥 숲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꽃을 달고 있을 땐 꽃 이름을 성씨처럼 나무에 붙여서 떼죽 꽃, 함박꽃 등으로 불렀지만 이제는 한 가지 녹색으로만 숲이 되었죠. 짙은 녹색 속에 들어가는 사람, 우리들만이 꽃처럼 알록달록하네요. 청계산을 수없이 올랐지만 과천쪽은 정상에서 바라만 볼뿐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찾지 않다가 수고를 하지 않고 얻어지는 건 없기에 어제는 평소보다 길게 돌아서 대공원 치유의 숲으로 갔습니다. 초입부터 이름값을 하는 짙은 숲, 오솔길을 따라 계곡으로 오르는데 우렁찬 물소리가 예고편처럼 들리더니 놀랍게도 큰 산에나 있을법한 폭포가 세차게 계곡을 흔들면서 흰 물줄기를 길게 내..

등산 2021.06.08

가족등반, 설악산 대청봉

오월의 마지막 날,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 코스: 설악동 소공원-비선대 -천불동 계곡 -희운각 소, 중, 대청봉 -한계령으로 하산. 전 날 연 3일 비가 왔고 산행 이튿날도 비가 왔는데 용 하나게도 전 후 사이 선물 같은 하루,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작년 겨울에 온 산이 하얗게 덮인 설경 위로 일출과 운해를 환상적으로 봤는데 이번엔 산 골짜기 주름진 곳까지 선명할 정도로 날씨가 맑아서 깊은 계곡까지 흘러내린 산 주름 발치까지 먼지, 바람, 운해 없는 3 무의 설악산을 봤다. 설악산을 오르려 할 때는 늘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모험심으로 도전을 결심하게 된다. 설악산을 한 번도 올라보지 않은 초보 딸 부부와 코스마다 다 올라본 엄마, 그러나 체력적인 면에서 분명 달라서 우리..

등산 2021.05.31

광교산의 숨은 명소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중심에 섰다가 가정의 울타리가 되었다가 이제는 울타리를 자연 속으로 확대해서 친구를 불러 들이고 나만의 중심을 만들어 두었으니 내마음의 울타리는 한없이 넓어져버렸다. 윤기 흐르는 밀도 높은 숲 속을 걷는데 장마철 검은 구름 터진 틈으로 파란 하늘 한조각 보이듯이 하늘을 다 가린 숲의 터진 틈으로 조명처럼 비춰드는 빛줄기에 눈이 시리고, 어디선가 날아드는 향기가 코끝을 스치면 더 짙게 맡아보려고 긴 호흡을 하면 맛만 보여주고 금새 사라지는 향기는 숲의 요정이 장난을 치는 것 같다.전 날 비가와서 촉촉히 젖은 산길은 흙에서도, 나무에서도, 꽃에서도 향기가 뿜어져 온 산천이 향기롭다. 광교산의 품이 얼마나 넓은지 가도가도 새로운 길이다.숨은 길까지 다 찾아내어 고요히 안겨 들면 ..

등산 2021.05.18

의왕 모락산

초록바다의 심연은 향수병과도 같았다. 길을 가다가도 숲을 보면 갑자기 그 속에 빠져들고 싶어지는 실록의 계절이다. 까만 나무들이 봄을 품고 있을 때부터 봄을 해산해서 꽃천지를 만들고 이제는 꽃 진 자리가 초록바다가 될 때까지 경기도를 걷는 중이다. 아직도 처음 가는 경기도의 야산은 산재해 있다. 어제는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모락산에 올랐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준거집단에서 언제나 길을 선택함에 의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경기도의 길들을 훤히 꿰고 있는 리더가 있어서 그가 길을 정하면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이다. 사월의 꽃은 화려하지만 향기가 없고, 오월의 꽃은 순박하지만 향기가 있다. 그렇듯 겉치레가 화려한 진달래, 철쭉에는 향기가 없으니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오월의 흰 꽃은..

등산 2021.05.14

이천 설봉산

요즘은 주 일회씩 정기 걷기를 하고 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느껴지는 것은 경기도의 야산을 탐방하는 대원들이 된 것 같다. 경기도는 높고 낮은 산들이 많아 앞으로도 탐방을 계속하면 경기도 사계의 그림이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이천에 있는 설봉산을 갔는데 이 역시 처음 가 본 산이다. 설봉산은 이천의 진산이며 유적으로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토성 위에 신라가 다시 석축으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니 삼국시대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성은 일부 복원이 되었는데 여장이 없는 석축으로만 된 편축 기법으로, 외벽은 석축으로 쌓고 안은 흙으로 채워서 성 안인 줄도 모르고 점심을 먹고 한참을 놀았음에도 내려와서야 우리가 성 안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규모는 작지만 성에서는 언제나 시대를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등산 2021.04.20

광교산에 다시 서다.

난 오늘도 그 산에 있었다. 날이 맑으면 마음이 맑고 마음이 맑으면 지나온 자취가 거울처럼 마음속에서 다 비친다. 오늘 같이 좋은 날엔 깊숙이 잠재된 의식의 심중 깊은 곳까지 다 들쳐지는 맑디맑은 마음이다. 면경 같이 맑은 오늘 위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발걸음을 춤사위로 만들어 가락까지 흐르게 한다. 지평선이 없는 우리나라, 곧은 지평선은 숨을 곳 하나 없어 보이지만 굴곡진 삶을 다 감추어 줄 것만 같은 내 나라 지형은 잘 못 된 건 감추어 주고 불룩 솟아 막아주며 키다리 아저씨의 선행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차별 없이 감싸주는 넓은 품이 있어 오늘처럼 무덤 앞 따스한 볕에서 점심을 먹어도 우리의 조상님을 뵙는 것 같은 편안함이 있어 웃고 즐기는 장소도 되어준다. 그렇듯 ..

등산 2021.04.13

남한산성 설경

암울하던 시간 속에 절망의 꽃처럼 첫눈이 내렸다. 한나절 남한산성을 헤매다 돌아왔더니 마을에는 이미 눈이 다 녹아서 마치 한나절이 꿈결인가 싶었다. 도심에선 눈이 내려도 잘 쌓이지 않는다. 더구나 굳게 다져지지 않은 결정체 그대로 보일만큼 여린 첫눈이기에 예보를 믿고 잡았던 약속을 앞 당여 눈 오는 날 멀리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갔다. 귀한 눈인데 눈앞을 가리면 어떻고 보이는 게 없으면 어떠리, 그저 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 첫눈인데, 같은 마음을 가진 산행 친구 셋이 한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예상대로 눈이 내리는 중이어서 자욱한 안갯속 같고 눈발이 날려서 눈길만 보였다. 바람도 없고 포근해서 고이고이 성벽과 나뭇가지에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남한산성에 여러 번 갔지만 눈이 온 후에는 성체..

등산 2020.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