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여수 금오도(비렁길)

반야화 2022. 10. 2. 10:36

길은 세상에 그려진 장기들이다.
일상이 답답할 때 숨을 쉬게 하는 허파 같은 역할을 한다. 숲 속에 있는 길은 사람의 마음작용을 잘 돌게 하여 경화를 풀어주고 삶의 체증에도 숨을 쉬게 하는 장기들의 집합체 같다. 아름다운 많은 길들은 세상 곳곳에 임자도 없고 차별도 없이 누구나 위로받으며 걸을 수 있도록 하얗게 그려져 있다. 자연 속에는 이미 그려진 사계절의 수많은 그림과 곳곳에 써놓은 자연의 글들이 있어 그걸 보이는 데로 내가 옮겨오기만 하면 된다. 나의 글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다시 남도에서 만났다. 세상의 길을 다 걷고 싶은 여전사들이 모여 여수 바다에 그려놓은 산수화 속에 길이 있다기에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려고 다시 모였다.
남도의 여름은 아직도 꼬리를 거두지 않고 끝자락에 잔뜩 습기를 머금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걷기 좋은 계절이라고 찾았는데 너무 더워서 3개의 코스를 걸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3,4 두 코스만 걷고 하산했다. 걷다 보니 더운 탓인지 산길이 제법 높게 느껴졌는데 찾아보니 매봉산은 해발 382미터였다. 금오도의 해안선 둘레는 64.5 킬러 미터고 비렁길의 둘레는 전체 18.5킬로 미터라고 하니 평소 우리가 하루에 완주할 수 있는 거리지만 이날은 기온이 한여름만큼 높고 길이 가팔라서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그뿐 아니라 바다가 아름답고 숲이 좋아서 느리게 걸으면서 좋은 곳에서 놀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어 나머지 코스는 남겨놓기로 했다.

비렁길에는 초입부터 동백군락이 터널을 만들어 놓고 이쁜 첫인상을 준다. 길은 해안절벽, 즉 벼랑길과 동백숲을 들락날락하면서 걷게 되어 있다. 물빛은 짙은 비췻빛이고 수종들은 해송과 동백들이 거의다. 아마도 다른 수종은 동백 등살에 배겨내지 못하고 도태된 것 같았다. 그나마 해송은 동백과 친구를 맺었는지 무탈하게 잘 조화를 이루면서 빛이 차단될 정도로 깊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바닷물은 절벽을 파고들어 틈새가 깊은 육지의 계곡 같은 곳이 많았고 아래로 내려다보면 숨이 멎을 정도로 아찔했다. 그런 특별한 구간에는 다 전망대가 있어 바다를 마음껏 바라보다가 뜨거우면 바로 숲 속으로 들어가서 걸었다.

춘여사추사비, 봄에는 여자를 사랑하게 만들고 가을엔 남자를 슬프게 만든다는 뜻이지만 사랑할 일도, 사랑받을 일도 없는 나는 봄에는 꽃을 사랑했고 가을엔 단풍을 사랑하며 한 해를 보내게 된다. 즉 자연을 사랑하면 눈물도 슬픔도 없고 받기를 바라지 않고 무한정 주기만 해도 행복한 사랑이다.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언제나 옆에 두어야 인생이 행복하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 대상이 자연이다.

남도로 가는 차창 밖으로 보는 들판,도시에서 뾰족한 건축물만 보다가 벼가 익어가는 넓은 들빤을 보니 마음마져 평화롭다.
은목서
금목서, 초가을이 되면 순천의 목서꽃 향기에 끄달리듯 남도로 가고싶어 진다.제주의 오월에 상산향이 그립듯이...
여수 화태교
비렁길로 올라가는 초입의 동백숲

금오도 풍경
깊은 협곡에 기가 빨려들듯이 아찔하다.

금오도의 특산물인 방풍나물 밭

바다에서 보이는 다도해인 금오열도 가장 큰 것이 금오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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