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가을날 등산하면서 지나갔던 그 길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았던 천년불심 길을 가는데 기어이 다시 찾은 그 길은 그때의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길은 분명 그대로인데 단풍이 곱던 그날과는 너무 달라서 오르면서 계속 그 길이 맞는지 의심을 품었지만 분명 그 길이 맞았다. 그뿐 아니라 기억이란 것이 힘들었던 구간은 잊고 좋았던 것만 편집되어 저장되나 보다. 그렇게 나직하고 평이했던 그 길의 아름다운 기억에 흠집을 내면서
오르다 보니 쉬어가는 큰 굴목재가 700미터가 넘는다는 걸 몰랐다. 아니 잊었다. 가파른 너덜길을 함께 걷던 일행들은 연신 속았다며 웃었지만 속으론 미안하고 잘못 인도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동서에 품고 있는 조계산은 두 절을 왕래하던 운수납자의 구도의 길과도 같은 천년불심 길을 사이에 놓아두고 있다. 설명을 함축하고 있는 길 이름에서 천년의 세월이 한순간에 와닿는 길이다. 그 수고로움 끝에 맛보는 아름다운 경내에 들어서면 지나온 여정의 땀방울이 다 사라지고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경외감이 느껴진다.
선암사는 태고종 본산이고 송광사는 조계종 발상지다. 송광사는 법보사찰인 해인사, 불보사찰인 통도사와 함께 보조국사를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불 법 승의 승보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