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선암사와 송광사(천년불심길)

반야화 2022. 10. 2. 11:17

오래전 어느 가을날 등산하면서 지나갔던 그 길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았던 천년불심 길을 가는데 기어이 다시 찾은 그 길은 그때의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길은 분명 그대로인데 단풍이 곱던 그날과는 너무 달라서 오르면서 계속 그 길이 맞는지 의심을 품었지만 분명 그 길이 맞았다. 그뿐 아니라 기억이란 것이 힘들었던 구간은 잊고 좋았던 것만 편집되어 저장되나 보다. 그렇게 나직하고 평이했던 그 길의 아름다운 기억에 흠집을 내면서
오르다 보니 쉬어가는 큰 굴목재가 700미터가 넘는다는 걸 몰랐다. 아니 잊었다. 가파른 너덜길을 함께 걷던 일행들은 연신 속았다며 웃었지만 속으론 미안하고 잘못 인도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동서에 품고 있는 조계산은 두 절을 왕래하던 운수납자의 구도의 길과도 같은 천년불심 길을 사이에 놓아두고 있다. 설명을 함축하고 있는 길 이름에서 천년의 세월이 한순간에 와닿는 길이다. 그 수고로움 끝에 맛보는 아름다운 경내에 들어서면 지나온 여정의 땀방울이 다 사라지고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경외감이 느껴진다.

선암사는 태고종 본산이고 송광사는 조계종 발상지다. 송광사는 법보사찰인 해인사, 불보사찰인 통도사와 함께 보조국사를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불 법 승의 승보사찰이다.

선암사 입구
천년불심길에 들어서면 이쁜 풀꽃들이 피어있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편백숲에 이르고 시원스러 뻗은 편백숲은 쉴곳도 많고 그네도 많아서 자꾸만 바쁜 걸음을 잡아두려한다.
승선교와 아치 밑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조합인 강선루가 있다.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정자인 강선루는 위에서보면 도저히 저런 구도가 될수 없어 보이지만 계곡에서 바라보면 승선교는 강선루를 포근히 품고 있다.

선암사 일주문
죽은 몸통을 간직한 선암사 고사목은 창건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다.
선암사 구시,회화나무로 만든 2000여명분의 밥을 보관하던 용기를 보면 당시의 대중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이 간다.
누워서도 잘 살고 있는 와송이다.마치 와불 같은 모습이다.

은목서 나무 아래서....
선암사 뒷간, 지방 문화재인 400년이나 되었다고 하는 해우소다.여러 문학작품에까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화장실인데 아직 사용중이다.화장실이 이렇게 아름다웠던 연유는 무엇일까.아마도 인간과 똥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밖으로 쏟아도 안에 꽉채우고 있는 그것. 욕심은 선암사 뒷간에 버리고 자비는 송광사 밥통에 담으라는 말이 있으니 밥통과 뒷간은 어쩌면 인간의 근본이 아날까? 가장 크게 비우고 가장 크게 채우는 것 둘 다 보물이 되었다.

하얀 꽃이 지고 빨간 팥배열매가 가을을 수놓고 있다.

천년불심길로 들어간다.

굴목재에 올라 가만히 있으니 바람이 인다.쓰리던 얼굴에 땀이 식는다.
보리밥 상차림

선암사와 송강사 사이를 동서로 연결하고 있는 길 중간쯤에 있는 보리밥집이다.산길을 걷다가 시장기가 느껴질 딱 그 시점에 반갑게 만나는 보리밥집의 찬과 양재기 그릇은 변함 없이 2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고, 밥집이 고급지거나 멋스럽지 않아도 시장이 반찬이듯 직접 키운 농작물로 억센 손맛으로 버무린 갓가지 나물 반찬과 고소한 참기름 맛이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진미를 느끼게 해준다.맛있게 먹고 마루에 아무나 타먹게 비치해 둔 싸구려 커피를 마셔도 비싼 아메리카노의 쌈싸름한 맛을 기억하며 노곤한 몸을 들청마루에 잠시 뉘이며 쉬다가 계곡에 발까지 담그면 그야말로 요산요수의 멋을 달구어진 심신에 사치로 느켜보는 여정이다.

보리밥집 옆에 흐르는 옥수와 폭포

두 번째 재를 넘는다.높이를 모른 채 올랐던 산길이 이렇게 높았나 하고 놀라는 일행들에게 무척 미안한 순간을 맞는다.
이 다리를 건너 송강사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 담장을 따라 아래로 가면 아름다운 가람배치를 그림보듯 감상한다.

송광사의 가을 맛보기
송광사는 나무와 전각들이 아름다운 구성으로 짜여있다.
송광사 대웅전

베롱나무,고목이 된 베롱나무가 여러 전각 옆을 지키며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꽃을 못 봐서 아쉬운 마음을 꽃진 가지에 걸어두고 왔다.때가 되면 그 마음 찾으러 가야지.언제 갈꺼나!

쌀 7 가마 분량의 밥(4,000인분)을 담을 수 있는 비사리구시,400년이나 되었다는 송광사 보물인 밥을 담아 두던 용기로 크고 작은 3개가 보관되어 있다.느티나무는 오래 살고도 몸보시로 가장 중요한 의식주의 으뜸인 밥그릇까지 되어주니 다음 생은 무엇이든 좋은 목숨 받았지 싶다.
대웅전과 일직선상에 있는 천왕문이 송광사의 하일라이트로 단풍이 들면 최고의 걸작품인 가을 풍경화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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