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대미산 악어봉

봄은 땅에서 솟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게 나의 지론인데 그 이치를 들여다보면 봄이 땅 위에 꽃 피워 두면 가을이 내려와 열매를 맺는, 계절의 음양에 해당하는 그런 이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문득 꽃 피울 일도, 열매 맺을 일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한없이 우울해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유난히 가을을 타는 난 그것이 재미로 타는 그네라고 해도 타고 싶지 않지만 내 의지로는 불가항력적으로 가을에 태워져 흔들리게 되는 가을을 올해는 우울하지 않게 보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시간들을 즐기리라 다짐해본다. 요 며칠간 연일 전형적인 초가을의 하루하루가 아깝게 지나간다.이 좋은 계절을 가장 잘 즐기려면 역시 산으로 가는 게 좋다는 걸 많이 경험하면서 지나왔다. 그렇게 많이 다녀도 아직 처음 가는 산이 있다는 게 ..

등산 2018.09.12

보성 오봉산

코스:오봉산 주차장-용추교-도새등-조 새바 위-칼바위-오봉산-용추폭포-칼바위 주차장 폭염도 죽고, 폭풍도 죽고, 폭우도 죽고 인간을 괴롭히던 '폭'자가 들어간 것들이 다 죽고 나니 사람이 살게 되었네. 폭, 폭, 폭들이 극성을 부릴 때 복지부동하고 있던 몸을 일으켜 드디어 산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살아남은 것들의 기세가 살아나 누른 잎은 다 털어버리고 녹음이 짙었던 시작되는 여름 같은 무성함이 무척이나 싱그럽게 보이는 날이다. 보성에는 녹차밭만 있는 줄 알았더니 보석 같은 작은 산 하나를 감추듯이 득량만을 만들어낸 절벽 한쪽 끝에 세워두었다는 걸 몰랐다. 깊이 들어가서 올라보니 정말 보석같이 아름다운 작지만 많은 걸 갖춘 산이었다. 먼저 오봉산 주차장에서 산으로 접어들면 오죽들이 터널을 이루는..

등산 2018.09.05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길

2018년 초복, 입에 인삼 한 뿌리만 물고 있으면 삼계탕이 되겠다고 하면서 산행을 무사히 마친 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에는 언제나 "한다"는 데 비중이 더 크게 실린다. 연일 무더위 소식이 가상 속의 일처럼 들려온다. 대구에서는 백화점 스프링클러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물폭탄이 떨어졌다 하고, 시멘트 도로는 늘어나지 못해서 위로 솟구쳐 오르고 유래 없는 소식을 접하고 산행을 시작하는 날인데 실감 나지 않던 뉴스들이 와닿는 뜨거움을 맛봤다. 장성군 서남면, 축령산 입구 추암 주차장에 하차한 후 임종국 선생의 공덕비가 있는 곳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약 10분 정도 올라가는데 크게 달구어 지지 않았는데도 뙤약 빛은 마치 내 머리 바로 위에 태양이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몇 년 전 어느 날 여름에 올레길을 걷다..

등산 2018.07.18

괴산 산막이 옛길

삼복더위가 찾아왔다. 몸은 복지부동을 원하고 마음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심신이 따로 노는 계절이 여름과 겨울이다. 어느 쪽을 따르는 것이 이로운지는 경험에 의해서 마음을 따르는 게 좋더란 걸 안다. 알프스를 다녀와서 장대하고 초자연적인 선경을 담고 왔을 때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어 당분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만큼 환경에 적응이 빠를 동물은 없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다 일장춘몽의 한 장면 같고 잠재의식 속에 있던 것이 꿈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깊이 간직해 두고 어느 날 문득 꿈같은 날을 추억이나 하자. 내 나라, 내 발자취가 수없이 새겨진 내 국토에 잠시 끊어졌던 발자국을 이으면서 적응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강산을 사랑하리라. 산막이옛길을 처음 갔을 때는 배를 ..

등산 2018.07.11

지리산종주 네 번째

2018.6월 6,7일 네 번째 지리산 종주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네 번이나 종주하면서 또 무엇을 쓸 게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또 쓴다. 속에 든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 안에서 자꾸만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사월부터 유월까지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수두룩 하던 걸 거의 다 소화하느라 늘 시간이 바쁘다. 이제 대망의 몽블랑 트레킹을 앞두고 준비하고 미팅하고 집안일까지 편히 쉴 시간 없이 날짜를 보냈다. 이렇게 상반기가 다 지나가고 여름에는 휴식을 취해야겠다. 지리산에 갈 때마다 늘 밤기차로 내려가서 새벽부터 시작하던 산행을 이번에는 달리 해보는 경험을 한다. 수원에서 아침 7시 25분에 출발해서 11시 20분에 구레 역에 도착했다. 성삼재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서 12시 20분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날씨는..

등산 2018.06.10

경주남산

2018.5.25일, 경주에서 6일째 경주는 수학여행의 성지같은 곳으로 이미지가 굳어져서 너무 익숙한 도시로 생각되어 별로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국에서 가장 깨끗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교통여건이 잘 갖추어진 작은 도시다. 어디든 멀어도 한 시간이면 다 갈 수 있다. 도시 전체가 국립공원인 곳이 딱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도 남산은 산 전체에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는 불국토이며 불교의 성지다. 누구나 한 번씩 가봤지만 오월의 남산이 가장 좋다. 코스가 다양하지만 비교적 쉽고 유적이 많은 포석정에서 시작해서 삼릉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간다. 짧은 코스라는 걸 알고 가는 길이어서 우리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길섶에 있는 산의 식구들을 그려놓은 안내판을 다 공부하면서 간다. 그..

등산 2018.05.29

불국사,석굴암,토함산

2018.5.23일 해마다 오월이면 경주로 간다. 인연 깊은 경주, 인연 깊은 오월, 그 인연 줄을 따라 그곳에 가면, 그리움은 늘 평행선이지만 오월의 경주는 평행선이 아닌 꼭짓점 같은 곳이다. 기다려 주고 반겨 주는 곳이어서 경주는 내게 친정 이상이다. 그리고 돌아서면 언제나 그리움과 이별하는 곳이기도 하다. 친구라는 말은 연령으로 맺어지는 관게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친분과 신뢰로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사람 인가로 구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주는 볼일만 보고 돌아오기에는 아쉬운 곳이어서 이번에 한 친구에게 "경주에 같이 갈래"라는 딱 한마디에 선뜻 따라주는 고마운 친구들과 함께 가서 초파일을 맞아 봉사도 하고 산행도 하는 여행길이 되었다. 봉축행사 이틀 전에 가서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등산 2018.05.29

속리산 천왕봉

봄이 땅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솟은 것처럼 신비롭기까지 했는데 며칠 익숙해지니 간사한 경험이 늘 있었던 봄으로 기억되고 어느새 봄이 덤덤해질 무렵 높은 산 깊은 계곡엔 그 신비가 다시 살아나더라. 속리산 천왕봉엔 시작되는 봄이 싹 틔우고 꽃 피우고 새울 더니 계곡 따라 내려오니 봄은 성장 중이고 내가 다 내려왔을 때는 이미 봄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천하의 봄이 동시에 오고 동시에 가버리지 않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문장대에서 조망되는 풍경들 신선대에서 편안한 산죽길을 2.3킬로 걸으면 천왕봉이 나오고 천왕봉에 올라서 사방을 바라보면 전국의 명산을 다 한 곳에 모아둔 듯하다. 북한산, 도봉산, 가야산, 같은 아니 그 모든 봉우리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다. 법주사로 내려오는 길의 계곡물이 묵은 잎 하..

등산 2018.05.02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다.

하늘만 천국이더냐, 땅에도 가끔은 천국 같을 때가 있다. 봄비가 연 3일씩이나 이어지더니 세상은 다 씻겨지고 땅이 해갈하고도 남은 물은 계곡에 넘치고 온 세상이 다 빛나는 날, 일 년 중 몇 안 되는 날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렇게 좋은 날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늘 노안으로 보이는 풍경 같던 서울이 마치 장님이 개안해서 처음으로 만나는 세상같이 빛난다. 4월 들어 세 번째 북한산에 간다.한 주가 지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다. 처음엔 새싹이 돋고, 다음번에는 꽃이 피고, 다시 가니 낮은 곳엔 잎이 무성하고 올라갈수록 아직 진달래 고운 색이 생생하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수도 서울의 선명한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진산들의 줄기가 그림같..

등산 2018.04.25

북한산의 봄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다. 그 봄이 세상이 다 얼어붙었던 지난 겨울,이 동토에 어떻게 봄이 다시 올까 싶었는데 봄은 다시 오고, 봄은 모체가 되어 죽움같았던 수많은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키워내는 중이다. 언젠가는 나 또한 흙이 되거든 저 꽃자리 하나 빌려서 해마다 다시 오는 자연이고 싶다. 지금 내가 빛이 차단 된 방 한쪽에서 손가락을 놀리고 있는 이 시간에도 바깥에는 봄이, 꽃이, 잎이 찬란히 빛나고 있을 테지. 아침에 강아지와 꽃길을 산책하고 왔는데 아름다운 길의 풍경이 지워지지 않고 어제 다녀온 북한산의 푸르른 산천의 풍경도 지워지지 않아 다시 달려가고 싶은 시간이다. 잠시도 잠잠할 수 없는 마음이 어디론가 마구 끄달리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히 바빠지는 마음이 된다. 그것이 봄인가 보다. 멀리 가..

등산 2018.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