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경주에서 북한산까지

봄은 게으를 사람 곁에는 머물러주지 않는다. 사월초반부터 국토 아래위를 뛰어다니며 봄을 쫓다보니 게으리지 않아도 달아나는 봄을 따라가기 힘든다.일주일에 3개의 산을 오르며 근래들어 체력과시를 시험하는건지 경주남산을 다녀와 이튿날 아침에 경주 선도산을 오르고 오후에 집으로 와서 또 이튿날 북한산을 갔는데 이산저산 다 봄의 화신이 내려앉아 교태의 몸짓을 한다.살아 있다면,사람이라면 그 유혹에 매혹당하지 않을 자 누가 있으랴! 요즘은 무리를 하거나 위험한 곳엔 가지말라고 식구들한테 늘 제지를 당한다.여행을 다녀와서 쉬지 않고 또 등산을 한다면 분명 나무랄 것 같아서 다 출근한 다음 강아지한테 미안하지만 또 혼자 두고 "엄마한테 이르지마" 하고 식구 몰래 출근과 퇴근 사이를 살짝 다녀올만한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

등산 2018.04.16

남양주 천마산

몇 년 전부터 천마산에 야생화가 많다는 소문만 듣고 간다 간다 하면서 늘 다른 곳에 밀렸던 천마산에 드디어 갔다. 집에서 남양주 천마산역까지는 몇 번을 차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교통은 좋은 편이다. 지하철 경춘선을 타고 남양주역에 내려서 언닥받이 차도를 건너면 바로 천마산으로 가는 진입로가 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묵현리 마을 뒤로 올라가니 길이 참 좋다. 흔히 있는 마을 야산쯤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남양주시 중앙에 자리 잡은 812미터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어엿한 백 대 명산이었다. 산 아래는 하얀 목련이 활짝 피었고 진달래도 피었다. 그러나 작은 풀꽃 하나라도 찾으려고 열심히 살폈으나 우리가 가는 길은 군락지가 아니었는지 꽃은 보이지 않고 우뚝우뚝한 봉우리를 보면서 저기..

등산 2018.04.04

내변산 쇠뿔바위봉

달구지도 않은 쇠뿔을 단숨에 뽑아야 하는 힘을 다 쏟았다. 북한산 염처봉을 겁 없이 오르던 용기는 어지로 가고 요즘은 가는 곳마다 오금을 저리 게하는 구간을 만나면 몸이 먼저 알아차리니 마음도 움츠리게만 된다. 눈 산행을 하고 나서 두 달 정도 산행을 쉬었더니 더욱 힘든 산행이었다. 남녘의 삼월 하순은 초여름 같았다.그래서인지 산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노루귀는 이미 잎이 올라와 있고 겨우 끝물만이 그 가냘픈 목이 갈잎을 헤치고 나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삼월에는 풀꽃이 먼저 피어나고 이어서 생강나무 꽃과 진달래가 피기 때문에 삼월의 산행은 어떤 기다림, 설렘 그런 것이 있다. 그런데 산 중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이미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기다림도 설렘도 주지 않고 이미 와 있는 꽃 앞에서 난 왜 이쁘다..

등산 2018.03.28

광주 무등산

그것이 지속되는 거라면 난 그것을 찾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눈이란 거, 생애 처음으로 눈을 알았을 때나, 첫눈의 환상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마음엔 주름도 생기지 않는다. 볼 때마다 하얀 미소의 파문이 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바탕이 원래는 순백의 결정체 같기 때문이 아닐까. 흑백으로 양분되는 겨울의 느낌에서 까맣다고 생각하면 몹시 가난해질 수도 있는 마음에 하얗게 눈 속에 묻혀보면 금방 수북이 쌓여가는 넉넉하고 부유해지는 마음이 된다. 채색되지 않은 두 마음이 들쑥날쑥하던 겨울도 입춘이 지나고 나면 힘을 잃는다. 연 사나흘씩이나 눈이 내려서 깊은 눈길을 걸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투사처럼 나섰는데 그 다져진 눈길이 하루빛살이 뭐라고 다 녹아내린단 말이냐, 허망했다. 차도 아닌 차도로 겨우 비집고..

등산 2018.02.15

덕유산 설경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내가 보고 있는 내 마음을 그린다. 천상병 시인의 "아름다운 세상 소풍...."그 소풍 안에도 내가 보고 있는 저 아름다운 장면이 있었을까, 아마 그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똑같은 장면을 목격했다면 귀천은 아름다움에 대한 수식어가 더 그려졌을 것이다. 그분의 구차한 인생을 아름다웠노라고 귀결 지울 때의 아름다움 속에는 어떤 것이 들어 있었는지가 새삼 알아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덕유산은 설경의 성지다.밤새 무주구천동을 흐르던 물들이 살금살금 올라와 온 산천에 꽃으로 승화한 것이다. 그 고결한 순수를 즐기는 것이 나의 연중행사가 된 것은 어떤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을 덕유산은 해내기 때문이다. 강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물감으로 오직 한 색상만..

등산 2018.02.07

원주 치악산의 설경

2018.1.9일의 치악산, 산행거리 13.1킬로, 비로봉 높이 1228미터, 산행시간:약 7시간,기온:영하 13도풍속,초당 15미터 이 악조건 속에서 기대에 대한 보상과 수고에 대한 보상을 그 이상으로 받으면서 내가 그리던 추상화 속으로 들어가 물아일체가 되어본 날이다. 꽃 진 자리, 일진 자리, 단풍 진 자리, 숫한 색상들을 입고 그들의 일생이 지고 난 자리를 하얗게 덮어버린 산천의 단조로움이 최상의 화려함이란 걸 보여주는 치악산 설경 속에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끊어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였을까, 일 년이란 날들이 만들어낸 오탁악세의 흔적조차 하얗게 지워버려야 모든 걸 시작한다는 듯이 일시적은 어떤 중지처럼 산천은 모든 생명을 끌어안고 동면에 들어가고 생명들은 하얀 눈 속에서 봄을 위한 꿈을 꾸고..

등산 2018.01.10

2018년의 의미 있는 첫 산행(마니사)

처음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첫 산행이다. 송년 산행에서는 일 년간 아무 탈 없이 즐거운 산행을 한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간의 일들을 뒤돌아보는 것이라면, 첫 산행은 남들처럼 시산제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론 그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기 때문에 장소를 선택할 때 성스런 곳을 지정한다. 주로 태백산, 계룡산, 마니산을 선호하는데 이번에는 강화도 마니산으로 가는 날, 처음 가는 곳이어서 나 개인의 의미부여를 해보고 싶었다. 세월은 무심히 흐르지만 인위적으로 4차원의 세계에다 금을 그어서 오늘이다 내일이다 하고, 새해라고 해봐야 찰나의 시공간이지만 너무나 익숙해진 개념 때문에 새해가 되면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거기엔 나쁜 건 티끌만큼도 넣지 않고 오직 새 희망만으로 가..

등산 2018.01.03

송년산행 북한산의 설경

양지에서 음지로.....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어느덧 한 해의 마자막 산행을 하고 보니 일 년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산신령님께, 또한 나 스스로에게 감사한 생각이 든다. 때로는 한 번 들어선 산길에서 위함 한 구간을 만나도 우회할 수 없는,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비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살아온 삶이란 것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 1막을 끝내고 나니 숫한 고비와 역경을 만나도 피할 수 없으니 다 넘어 넘어온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피안의 언덕 같은, 어쩌면 무의도 식자 같은 그런 생활이지만 다 지나온 언덕 베기에서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관조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행복은 만족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크기도 없고 무게도 없다...

등산 2017.12.27

보은 구병산

겨울산행의 묘미는 하늘빛이 꽃이다. 이른 아침 어스름 하늘 가득히 피어 있는 맑고 투명한 하늘빛을 배경으로 도심을 지나는 길에 마천루의 풍경이 또한 일품이다. 흐린 차창을 닦으며 허허로운 들판으로 시선을 날리면서 잠을 깨우고 점점 푸르게 밝아오는 아침 하늘빛이 이상의 꿈으로 가득 찼던 청운의 푸르름으로 채워진 꿈의 꽃이 펼쳐진 하늘 같다. 그런 기분 좋은 출발을 해서 구병산 깔딱 고개까지 오르는데 몸에 닿는 상쾌한 맛이 마치 순무의 맛 같다. 알싸하게 매우면서도 달짝지근하고 시원한 그 맛이 참 좋다. 처음 가는 산길은 한 번 출발하고 나면 어떤 길이 펼쳐져 있는지를 모르면서도 나아가게 된다.숫한 고비를 넘기면서 주저 않을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오직 앞으로만 가는 인생길 같은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

등산 2017.12.06

함양 황석산

가을이 남겨놓고 떠난 향기는 아직 있었다. 수확이 다 끝나고 아무것에도 피해를 주지 않는 비는 착한 비다. 지난주만 해도 푸석푸석한 먼지가 싫었는데 겨울가뭄에 완전 해갈이 되는 비가 많이 내렸나 보다. 때마침 가장 늦게 낙엽이 지는 낙엽송 바늘잎이 많이 떨어져서 바닥을 꼼꼼히 덮어 노란 길을 만들었고 길 옆 산에도 푸른 소나무 속에 드문드문 낙엽송 단풍이 보기 좋게 섞여 있어 가을이 떠나면서 채색이 끝난 뒤 마지막 물통을 흩뿌려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오르는 길에는 노란 바늘잎이 카펫처럼 깔려 있어서 걷기에도 아주 편했다. 흙에 섞이면 생명 있는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간다. 가을은 부엽토를 만들고, 또한 가을은 생명을 길러내는 모태가 되어주기도 하는 자연의 순환 위를 걷다 보면 오는 것도 없고 ..

등산 201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