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해남 두륜산과 대흥사

반야화 2017. 11. 22. 17:14 남도기행은 가져간 마음을 다 거두어 오지 못한다.그러나 텅 빈 채로 내려가도 가득 담아오는 충만함이 있는 남도기행은 가을에 더욱 그러하다. 마치 남겨둔 정인이 있어 가도 가도 그리운 곳 같은 그런 곳에서 올가을 마지막이 되는 단풍은 대흥사에서 눈부시게 고왔다. 처음 가는 두륜산, 처음 가는 대흥사, 산다는 것은 처음과 끝을 경험하면서 이어지는 여행인가. 아직도 더 남아 있을 처음이 있다는 것이 나에겐 희망이고 그것이 더 이상 없어진다면 남는 건 끝일뿐이다. 지난봄 다녀온 달마산의 진달래와 대륜산의 단풍을 보고 나니 남도의 예인이라도 된 것 같다. 남도에서 내가 본 아름다운 사찰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내소사의 매화, 동백. 불갑사와 선운사의 꽃무릇. 백양사와 내..

등산 2017.11.22

조계산(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통이 있었다 해도 일프로의 행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삶일 수도 있다. 내 의무가 다 끝나고 여생을 살고 있는 나날들, 일프로의 행복에 또 하루를 보태던 투명한 가을날 시월의 마지막도 그 틀 속에 있었다. 어디서 어떤 행위를 하든, 걷든, 뛰든, 차로 달리든 난 그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을은 그렇게 세상을 온통 하나의 액자 속 작품이고 나의 하루는 훌륭한 작품의 소제였다. 마치 구족화가의 발끝이 마법에 걸린 듯 마구 뛰어다니며 그려내는 그림, 온종일을 액자 속에서 아무리 걸어도 벗어나 지지 않는 하루였다. 미련한 중생이었다.헤메고 헤매다가 찾아낸 안식처 같은 곳,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 되는 특별한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고찰을 만나고 나서 심연에 뿌리를 둔 그 ..

등산 2017.11.01

북한산 숨은벽

만추를 바라보는 소회, 가을 속에 뛰어들어 즐기지 못한다면 가을은 우울한 계절이다. 하루살이에게 가장 소중한 건 시간이듯이 언제부터인가 가을만 되면 나 역시 달음박질치면서 따라가는 시간의 흐름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무엇이든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어떤 것이 엄습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맞이해야 한다면 그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365개의 달력 속의 날짜들을 돌다리 건너듯 살아온 끝 지점의 겨울보다 가을이 더 두렵다. 더구나 눈물 나게 고운 단풍을 볼 때 화려함 속에 감추고 있는 우울의 징후가 나뭇잎 떨 거야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보면 즐겁다가도 아픔을 느낀다. 내 몸을 내 맘대로 부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부리라고 명령한 건 마음이다. 마음은 아직도 杜老靑靑이다. 이것이 되려 ..

등산 2017.10.26

세 번째 공룡능선

제주올레가 드디어 공룡능선으로...... 코스: 용대리-백담사-영시암-오세암-봉정암-소청-중청-대청-희운각 대피소-무너미고개-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소공원 1박 2일 코스, 총길이 약 27킬로, 22시간 걸었다. 바다에서 만나 산으로 간 여인천하, 우리는 해냈다. 한 사람은 대청봉에 오르고 싶고, 또 한 사람은 공룡능선을 타고 싶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 둘 다 충족하는 걸로 결정을 보고 봉정암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대청까지 갔다가 백 해서 소청과 중청 사이에서 희운각으로 빠져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으로 올라간다. 계산적으로는 해 지기 전에 하산할 줄 알았는데 예상은 빗나가고 비선대로 접어들면서 어두워지더니 내리 꽂히는 계단길에서 해는 미명도 주지 않고 퐁당 빠져버리고 무려 1시간 반 정도를 플래시를 켜고..

등산 2017.10.20

가야산

코스:백운동-만물상-상아덤-서성대-칠불봉-상왕봉-서성재-용기 골-백운동주차장 가야산 여신과 하늘의 신이 노닐던 상아덤에 밥상을 차린다.하얀 구름 쟁반에 단풍 입 둘러 깔아 장식하고 상왕봉 한 접시 칠불봉 한 접시 만물상 보초 세우시고 눈으로 드시는 밥상,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네 꽃피고 잎피고 단풍 들고 눈 내리는 사계절의 거룩한 만찬, 감히 거기에 숟갈 하나 더 얹어놓고 신선놀이하는 두 여인들의 밥상을 차리고 입으로 먹었지만 그 또한 신선이네. 부처상 만물상 멀리서 보는 가야산 정상의 봉우리들 상아덤(달에 사는 여인의 이름과 바위의 뜻인 덤)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와 하늘의 신 이비 가지가 노닐던 곳 그 자리에 우리가 앉아 점심을 먹었다. 칠불봉 웅덩이에 떠 있는 쓰레기와..

등산 2017.09.28

강화군 석모도

정적인 제주바다를 본 적이 없고, 파도치는 서해를 본 적이 없다. 맑은 초가을날,깨끗한 섬 하나를 보게 되면 그곳에 가을빛이 서려있어 가을을 기다리는 내 마음에도 파문이 일 것 같아 석모도로 간다.서해를 찾을 때마다 보드라운 갯벌이 드러나 있더니 이곳 역시 아직도 한낮엔 햇살이 따가워서인지 그 고운 갯벌에는 갈매기 발자국 하나 없이 물결무늬만 남아 있다. 그리고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닷가엔 가느다란 선 하나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듯한 전답이 노르므레하게 가을빛에 젖어 있었는데 짠물이 넘나들 것 같이 둔덕이 없어 보인다. 강화도 본섬과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생겼다. 외포리 선착장과 석포리 선착장이 마주 보고 있는 곳의 아래쪽으로 늘씬한 교각이 보이고 두 섬을 이어주던 뱃길이 없어지니 배를 따라다니던 갈..

등산 2017.09.14

괴산 이만봉 솔나리

솔나리를 만나러 간다. 만남은 설렘이고 설렘은 그리움을 낳는다. 그것이 비록 작은 꽃 한 송이일지라도. 그리고 가슴속 한 부분에 그것이 자라고 있어야 살아있음이고 인생에서 어쩌면 숨어 있는 작은 것이 가장 큰 가치를 주는지도 모른다. 그 큰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만봉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의 한 봉우리다. 이름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몰라도 언뜻 생각하면 금강산 일만 이천봉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착각이 든다. 알고 보니 이만봉이란 산 이름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란 전설이 있는 걸 보면 마을 사람들의 눈에 우뚝한 뒷산이 우러러 보여서 이름을 붙여준 게 아닐까 ..

등산 2017.07.12

북설악 화암사와 라벤더팜

생각 없이 바쁘게 자나 온 시간을 돌아보니 벌써 하지다. 어제 처음으로 산행 중에 여름이라는 걸 느꼈다. 뜨거운 열기와 모자 밑으로 땀방울들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는 게 간지럽게 느껴지는 걸 보면 이제부터 얼음물을 내 몸 입구로 마구 쏟아부어야 하는 그때가 온 것이다. 이번 산행을 결정하게 된 건 보라색을 좋아하는 내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꽂히게 만드는 라벤더 팜을 본다는 말에 확 끌렸다. 보라색 들판 같은 꽃단지와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북설악이라는 애메한 명칭이 맘에 걸리는 곳이다. 설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빼어난 봉우리와 천하일품의 산경이 연상되는 곳인데 이곳은 설악의 잘난 봉우리를 하나도 갖지 못했고 설악의 명성에 끼지 못하는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 줄기다. 그래서 어떤 목표 지점을 찾아간..

등산 2017.06.21

한라산 돈내코 코스

꽃같이 살고, 꽃같이 비쳐라. 꽃을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ㅏ남의 눈에 꽃으로 보인다면 반목 또한 없을 것이다.  봄 한 철 나비가 되어야 사는 나는 다시 날개를 달고 아직도 남아 있을 봄 찾아 간 날, 한라산 영실은 키 작은 철쭉들이 들꽃처럼 나직이 키를 낮추고 바람도 꺾지 못하는 붉은 서정을 펼치고 있었다. 영실에 오르면 산이 아니다. 들판이다. 붉은 들판이다. 평야다. 정신적 양식을 채워주는 곡창이다. 이로운 팜므파탈이다. 드넓은 들판에 작은 나비 한 마리가 혼미해진 마음으로 허한 속을 여백도 없이 다 채우고 나면 그 포만감은 혹한의 겨울에도 꽃이 있는 마음밭이 된다.  장엄한 비 폭포물기 없는 비가 내리고 있는 모습, 빗물 자국들이 만들어낸 장관 노루샘에 피어 있는 미나리 아제비 꽃         돈..

등산 2017.06.16

2017년의 지리산 종주(3 번째)

코스: 성삼재-노고단-피아골 삼거리-임걸령-노루목-삼도봉-하개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 산장-벽소령-덕평봉(선비샘)-칠 선 봉-영신봉-세석평전-촛대봉-연하봉-장터목-제석봉-통천문-천왕봉-개선문-로터리대피소-망바위-칼바위-중산리로 하산 내가 몇 년째 지리산종주를 하는 이유: 체력변화의 테스트, 아직도 건재한다는 자부심, 할 수 있다는 과시 등, 결과는 변함없음과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었다는 것. 지리산처럼 큰 산은 일기예보를 믿으면 안 된다. 늘 변수가 따른다는 걸 알아야 되는데 비 예보가 1~4 밀리미터, 그리고 이튿날 오후 맑음이다. 비가 온다고 받아놓은 날의 약속을 깬다는 건 용기 있는 자만 할 수 있다. 지리산 종주라는 긴 여정 중에 비는 소나기 같았고 바람은 초속 20미터, 준 태풍급. 6월 5일..

등산 2017.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