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화
2017. 11. 22. 17:14
남도기행은 가져간 마음을 다 거두어 오지 못한다.그러나 텅 빈 채로 내려가도 가득 담아오는 충만함이 있는 남도기행은 가을에 더욱 그러하다. 마치 남겨둔 정인이 있어 가도 가도 그리운 곳 같은 그런 곳에서 올가을 마지막이 되는 단풍은 대흥사에서 눈부시게 고왔다.
처음 가는 두륜산, 처음 가는 대흥사, 산다는 것은 처음과 끝을 경험하면서 이어지는 여행인가. 아직도 더 남아 있을 처음이 있다는 것이 나에겐 희망이고 그것이 더 이상 없어진다면 남는 건 끝일뿐이다. 지난봄 다녀온 달마산의 진달래와 대륜산의 단풍을 보고 나니 남도의 예인이라도 된 것 같다. 남도에서 내가 본 아름다운 사찰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내소사의 매화, 동백. 불갑사와 선운사의 꽃무릇. 백양사와 내장사, 송광사, 선암사, 대흥사의 단풍까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계절마다 너무도 고운 그림을 그려내는 때 묻지 않은 선승들의 도술 같은 처처를 찾아다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대륜산 들머리에서 걸어 들어가면 오심재에서 만나는 멋진 두 산봉우리를 만난다.그러나 둘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다 오를 수 없어 오른쪽 고계봉을 등지고 노승봉으로 오르는데 한참을 올라서 뒤돌아 보면 초원에 올라앉은 봉우리 같던 고계봉은 양 날개를 활짝 펼쳐나가는 모습인 데다가 탈색된 단풍이 아직도 한 때의 풍미를 느끼게 해주는 화려한 산자락을 길게 내리고 가을의 여운을 담고 있다. 두륜산의 암봉들은 모두가 산의 정수리에 솟아 있는 바위 꽃 같은데 등산로가 봉우리 아래로 나 있을 줄 알았더니 어쩜 그렇게 봉우리를 밟아 가도록 다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나지막한 오심재와 만일재는 넓은 초원이어서 쉼터로도 너무 좋았다. 만일재 따뜻한 풀밭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잠시의 휴식이 제법 쌀쌀한 초겨울의 한기를 데워주는 두륜산의 배려 같았다.
명산은 명찰을 품고 있으니 명산대찰의 풍경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산행을 할 때마다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노승봉 지나 가련봉에서 바라보는 대흥사의 원경이 있는 절터가 높은 곳에서 보이는 데로는 넓게 둘러쳐진 산봉우리의 기가 다 한 곳으로 흘러내리는 아늑한 분지였다. 그래서 서산대사 님은 삼재가 미치지 못하고 오래도록 한국불교의 종통을 이어갈 수 있는 곳에다가 절을 세우고 사후까지도 이곳에서 안식을 바라셨던 모양이다. 경내 표충사는 서산대사 님의 사당이며 다른 전각에는 영정과 유물이 있고 의발(가사와 바릿대)이 전수되어 대사남의 법통이 이어지는 유명한 곳이어서 한 번 스쳐 지나기만 해도 업장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두륜봉을 지나 하산하는 길에는 대흥사의 말사인 암자들이 곳곳에 있고 절이 가까워질수록 단풍이 곱게 남아 있었다. 올가을의 마지막 단풍이다.송광사 가는 그 길에서의 아름다운 여운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다시 산사의 고운 길을 걸으니 얼마나 좋은지 군자가 이 닌 나는 대로보다는 산사의 오솔길이 나의 길 같게만 느껴져 너무 좋다. 무념무상으로 기도하는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길이다.
대흥사 경내의 부지는 참으로 넓었다. 호국 불교다운 수많은 전각들과 수호신 같은 고목들이 그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각은 화를 입고 개축을 해도 나무들은 처음 그 모습 그대로 이리라. 서산대사 님의 일대기를 다 알고 있을 그런 신목에 아직도 새순이 돋는다는 것도 호국 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감사의 고개를 숙였다. 먼 길 내려와서 짧게 보는 아쉬운 여정이지만 많은 것을 채우고 돌아가는 길은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밝아지는 하루다.
고계봉(노성봉)
오심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져있지만 우뚝한 첫인상의 모양이
닮아서 무작정 간다면 어느 쪽으로 오를까 생각다가 오심재 초원에서 양쪽을 바라보다
마음을 정하지 못해 그냥 돌아갈지도 모를 정도로 훌륭한 산봉우리다.
오심재 왼쪽 방향의 노승봉
노승봉 오르는 길
가련봉에서 바라보는 대흥사
비둘기바위
만일재에서 보는 두륜봉
두륜봉
구름다리
대흥사 가는 길
해남 표충사 호국 문
호국 문 안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전각들
초의선사, 우리나라 차문화를 중흥시킨 대선사
사리탑
보현전
요사채
대흥사 대웅보전
물 위에 그린 낙엽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