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조계산(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반야화 2017. 11. 1. 14:43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통이 있었다 해도 일프로의 행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삶일 수도 있다.

내 의무가 다 끝나고 여생을 살고 있는 나날들, 일프로의 행복에 또 하루를 보태던 투명한 가을날 시월의 마지막도 그 틀 속에 있었다. 어디서 어떤 행위를 하든, 걷든, 뛰든, 차로 달리든 난 그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을은 그렇게 세상을 온통 하나의 액자 속 작품이고 나의 하루는 훌륭한 작품의 소제였다. 마치 구족화가의 발끝이 마법에 걸린 듯 마구 뛰어다니며 그려내는 그림, 온종일을 액자 속에서 아무리 걸어도 벗어나 지지 않는 하루였다.

 

미련한 중생이었다.헤메고 헤매다가 찾아낸 안식처 같은 곳,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 되는 특별한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고찰을 만나고 나서 심연에 뿌리를 둔 그 꽃이 물 위로 피어나는 듯한 경험을 했다. 처음으로 본 선암사와 송광사의 가을은 내겐 분명 아름다운 꽃, 심연의 꽃이었다.

 

올해는 황금들판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어느새 들판에는 수확이 끝나고 베어진 벼 뿌리에 반짝이는 서리꽃이 겨울 문턱에 와 있음을 알리는데 남녘의 먼 산은 아직도 푸른빛이 더 많다. 구족화가의 발끝에서 다 채색되지 못함인가, 순천에 볼거리가 많은데 그 속으로 들어가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언제 모르게 스쳤을 수도 있겠지만, 목적지는 조계산이었는데 산은 겨우 장군봉에 올랐다가 연 상봉 쪽으로 하산해서 나머지 여정은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이어지는 산자락 길에 펼쳐져 있었다.

 

선암사 입구에서 싱싱한 단물이 들어찬 단풍나무 한 가지가 실버들처럼 늘어져 있고 그 끝 한 잎에서 선홍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마치 하얀 명주 한 필을 천연염료에 물들이려 한 끝을 적셔넣을 때 번져가는 그 채색처럼 온 산천이 한 가지 단풍에서 번져가는 가을의 채색이 어떤 장인이 솜씨 좋게 여름을 가을로 염색하는 과정을 보는듯한 길을 걷는다는 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이어지는 6킬로가 넘는 길은 그냥 길이 아니다.걸어봐야 알 수 있는 느낌이 있는 천년불심길이다. 스님들이 송강사까지 걸어서 가는 산책길이기도 하다.마침 가을이어서 키 큰 교목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들이 떨군 낙엽은 아직도 바스러지지 않아서 걸을 때마다 사각이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데 어쩜 그리도 길이 고운지 낙엽을 밟을 때마다 녹차향이 묻어나고 땀구멍마다에는 청명하고 티 없는 맑은 공기가 스며들어 온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그 길 위에는 또 한 사람, 주먹밥 한 개와 물 한 병이 전부일 것 같은 바랑을 짊어진 가난한 비구니의 처연한 모습도 그려지는 길이다.

 

그 긴 길은 처음에는 사색의 길이었다가 구름과 물처럼 법을 찾아 떠나는 운수납자의 만행 길이었다가 선재동자의 구도의 길이 되기도 하고 다 끝나고 나니 피안의 길이기도 했다.

 

선암사와 송광사 중간쯤 천자암에는 천년을 지탱하는 곱향나무가 속은 다 비워져 이물질로 채워졌지만 신목은 그것조차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 휘감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으로 살고 있어 그 앞에 서면 티끌같은 내 모습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경외감이 느껴진다. 천자암을 지나서도 이제까지 이어 오던 것과 똑같은 비단길이 이어진다. 산행을 하지 않고 이 멋진 길만으로 하루를 채우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았다. 어느 꽃피는 봄날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아름답고 고운 비단길이 끝나자 드디어 송광사가 나오는데 일주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접어드니 첫인상부터 범상치가 않다. 해는 한 뼘이나 남았고 다 살필 수는 없지만 삼청교를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교각 위에는 우화각의 지붕이 있는데 우화각이란 삶의 무게를 다 떨치고 깃털처럼 가볍게 이 문으로 들어가라는 뜻이 있다. 마침 나는 두 절을 이어놓은 길을 걸으면서 심신이 깃털처럼 가벼워졌으니 그냥 통과하면 되었다. 삼청교 아래 연못에 비친 아름다운 반영을 들여다보는 순간 모든 걸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그림이 서려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찰은 종교를 떠나 동양문화의 꽃이며 그 산실이란 걸 새삼 느꼈다.그만큼 아름답고 숭고한 향이 있는 고찰에서 나는 너무 감동이 되어서 그만 대웅전 넓은 마당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말았다. 그 감동이 깨달음으로 이어지길 소망하면서.

        

 

선암사 승선교,보물 400호, 조선시대인 1698년 호암 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위해 백일기도를 했으나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할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삼인당 연못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보물 395호,

탑신에서 청자와 분청사기가 봉안되어 있었고 분청사기 안에는 작은 금동 사리탑이 있었다고 함.

 

 

선암사 입구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불상

 

 

 

 

 

 

 

배바위의 측면이 사람얼굴의 측면과 닮았다.

 

배바위 위에서 바라본 선암사와 풍경

 

 장박골 다리

 

떡갈나무와 서어나무의 연리근,

서어나무의 뿌리가 떡갈나무 속으로 파고들어 한 몸이 되었다.

연리근 옆에서 연리근만큼이나 다정한 두 여인들.

 

 

여기서부터 왼쪽 돌다리 건너 천자암 쌍향수와 송광사를 찾아가는 길.

 

 

곱향나무인 연 기념물 88호인 쌍향수다. 고려 때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는 것이다.

송광사 천자암

 

 

 

 

 

 

 

 

 

 

 

조계산 아래 송광사에 도착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삼청교와 우화각

 

 

 

 

 

 

 

 

송광사 일주문

삼청교와 우화각의 반영

 

 

 

송광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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