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가 드디어 공룡능선으로......
코스: 용대리-백담사-영시암-오세암-봉정암-소청-중청-대청-희운각 대피소-무너미고개-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소공원
1박 2일 코스, 총길이 약 27킬로, 22시간 걸었다.
바다에서 만나 산으로 간 여인천하, 우리는 해냈다. 한 사람은 대청봉에 오르고 싶고, 또 한 사람은 공룡능선을 타고 싶다고 해서 무리를 해서 둘 다 충족하는 걸로 결정을 보고 봉정암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대청까지 갔다가 백 해서 소청과 중청 사이에서 희운각으로 빠져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으로 올라간다. 계산적으로는 해 지기 전에 하산할 줄 알았는데 예상은 빗나가고 비선대로 접어들면서 어두워지더니 내리 꽂히는 계단길에서 해는 미명도 주지 않고 퐁당 빠져버리고 무려 1시간 반 정도를 플래시를 켜고 적막강산을 도깨비처럼 내려갔다.
첫날, 동서울터미널에서 아침 8시 20분 버스를 타고 출발해 10시에 용대리에 내려서 700미터를 걸어 백담사행 셔틀을 탄다. 그런데 긴 줄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단풍철을 맞아 전국에서 관광버스가 모여들었고 줄은 ㄷ자 형태로 꺾어져 늘어섰다. 약 1시간 정도를 서 있었던 것 같다. 아슬아슬한 계곡길 곡예운전을 잘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 목적지가 아닌 백담사는 마당만 밟고 돌탑을 보고 백담계곡으로 들어간다. 참으로 궁금한 건 백담사 계곡 돌탑은 몇 번을 가도 한결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여름 장마 거센 물줄기가 분명 그곳도 지나갔을 텐데 "공든 탑이 무너지랴"란 말도 있듯이 처음 쌓은 그대로인지 새로 쌓은 것인지 다음번에는 꼭 스님께 물어봐야겠다.
백담계곡을 들어서니 단풍은 계곡까지 내려와 가을꽃이 되어 있고 백개의 담이 있다는 계곡에는 담마다 물이 넘치고 넘친 물이 이어져 아랫 담으로 들어가는 옥류수는 너무 맑고 푸르러 내 몸속으로 흘러보네 애간장을 다 씻어내고 싶었다. 그 옥담을 어찌 그냥 지나리, 우리는 11시 50분에 자리가 너무 좋아 이른 점심을 옥 빛 담을 온전히 차지하고 먹고 있는데 김밥 한 줄에 산삼으로 속을 채운 것 같은 맛을 낸다. 입은 씹는 작용만 하고 음식 맛은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몇 번을 지나는 그 길이지만 처음으로 계곡에 내려서서 여유를 부려보는 거다. 단체라는 것은 내가 쉬고 싶은 곳은 언제나 지나치는 게 불만인데 이렇게 여유를 부리니 오늘 중으로 먼 길을 다 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마냥 좋기만 하다.
백담계곡을 지나고 영시암을 거쳐 수렴동은 가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오세암으로 간다. 어둠 속에서 새벽하늘을 쳐다보니 별 하나 없는 구름만 잔뜩인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는데 우리 셋이 새벽 3시에 일어나 두 시간 동안 새벽예불에 정성을 다 한 공덕인지 다행히 구름은 빠르게 흘러 다니면서 우리를 감싸 안고 함께 오르자고만 할 뿐 비로 변신하진 않았다. 얼마나 고맙던지, 비가 아닌 운치를 만들면서 친구가 되어 주고 그러다가 저만 빨리 흘러 말간 하늘도 보여주는 장난을 친다. 오세암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을 다 걷어서 청명한 하늘과 가람 위에 솟은 신령스러운 봉우리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오세암에서 봉정암까지는 먼 거리다. 처음 걸어보는 길인데 산 중에 그토록 이쁘고 편한 길이 있을 줄 몰랐다. 아마도 다섯 살짜리 어린 동자승을 홀로 두고 탁발 나간 큰스님의 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아기자기 이쁜 길에는 고목에 단풍까지 입히고 다람쥐까지 놀게 하니 우리의 여정은 2차원의 평면에서 움직이는 3차원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시각효과적인 영화 속 그림 같아 보일 것으로 생각하면서 걸었다. 좋은 풍경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진으로 살리면서 걸었다. 그러다가 몇 고개를 넘고 나니 짐도 무겁고 몸은 더욱 무거워 장난을 치고 싶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지는 사람한테 배낭 몰아주기 게임을 했는데 제시카가 졌다. 그녀는 배낭 세 개를 감당하고도 이쁘게 웃었다.
너무 여유를 부려서 날은 저물고 해가 있어야 봉정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해 지기 전에 도착하기가 힘들 것 같아진다. 빈 몸으로 올라도 지치는데 비를 참고 있는 구름 한 자락까지 걸치고 오르려니 옷은 축축하고 습기는 몸도 마음도 다 적신다. 마음이 급해진 가운데 높은 계단을 오를 때쯤 해는 지고 어둠 속에서 네발로 오르는 두 여인들이 가엾어 보인다. 그런데 아직도 봉정암 깔딱 고개가 남았으니 어쩌면 좋아, 너무 걱정이 된다. 플래시를 켜고 깔딱 고개까지 올라서니 드디어 봉정암에 도착했지만 경내는 오직 불빛뿐이다. 우리는 숙소로 가기 전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리탑으로 올라갔다. 조명을 받아서 너무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새옹지마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낮 풍경을 잃어버린 덕에 멋진 밤 풍경을 보니 말이다. 숙소 배정을 받고 나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먹는 저녁밥이 꿀맛이었다. 그리고는 세면장에서 땀을 씻고 숙소에 들어가서 누우니 그 깊은 산중에 방이 뜨끈뜨끈하다. 그야말로 "등 따시고 배부르니 뉘 아니 부러울쏘냐"이다. 내일은 공룡능선으로 간다.
백담사로 가는 셔틀버스 줄 서기,
줄은 ㄷ자형태로 서 있었다. 한 시간 가량 기다려야 된다.
백담계곡을 올라가면서 다정하고 행복하게...
영시암 지나 오세암으로 가는 길
서울에서 봉정암 가시는 스님을 만나 따뜻한 차를 보시하는 착한 제시카
오세암, 여기서부터 봉정암을 향하여 끝없이 간다
몸은 지치고 배낭은 무겁고
그래서 가위 바위 보를 했는데 제시카가 졌다. 배낭 세 개를 힘겹게 지고 메고 ㅎㅎ
잠시 짐 벗은 여인의 행복한 표정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높은 계단을;결국에는 네발로 간다.
봉정암에 도착하니 어둠이 드리우고 사리탑이 암자를 밝히고 있다. 이튿날 어둠 속에서 다시 대청봉을 향해 가다 보니
봉정암의 가을 풍경을 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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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10.18일 대청봉과 공룡능선을 향해간다.
오늘도 대청봉에서 운해의 장관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운무 속에서나마 두 번째의 소원도 이루었고 인증을 하고 백 해서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간다. 구름이 빠르게 흐르니 갑자기 하늘에서 수평선이 흐른다. 마치 제주바다가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구름 속에서 파아란 바다 같은 하늘이 옆으로 길게 펼쳐진다. 하늘 위에 바다, 바다 위에 하늘, 그런 순간순간의 구름 속에서도 봐야 할 것은 다 보인다. 감사한 일이다.
공룡능선은 뚝 떨어진 다른 봉우리에 머리를 두고 무너미고개 위에 몸통을 걸쳐서 마등령까지 구불텅구불텅 위용을 자랑한다. 그런 공룡의 돌기들을 밟아 가는데 밤을 지새운 몸이지만 어디서 힘이 나는지 우리는 감탄을 연발하면서 멋진 풍경에 빠져 무아지경이 된다. 이상한 건 세 번째 보는데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높은 곳에 올라서니 범봉, 1275봉이 한눈에 보이고 그 봉우리들을 지날 때마다 매직 그림책처럼 놀라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힘들어하면서도 너무 좋아하니 무리를 해서라도 공룡능선에 오른 것이 보람 있었다. 단체로 갔을 때는 거리가 너무 길어서 언제나 바쁘고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시간관념은 없어지고 풍경에 빠져서 또 예상보다 늦어져서 능선을 다 빠져나오자 어두워져 버려 비선대를 향해 가는 길에서 플래시로 조족등을 만들면서 적막강산을 간다. 무서울 법도 하지만 셋이어서 서로 의지하면서 먼 계곡길을 무사히 빠져나오게 되어서 무척 감사했다. 여름 같으면 밝을 때지만 낮이 짧아서 소공원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고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해 대충 짐작되는 불빛을 보고 소공원이란 걸 알았다. 버스가 없을 것 같아 택시를 타기로 하고 혹시나 하고 카카오 택시를 처음으로 호출을 해봤다. 그리고 잠시 무심코 있었는데 기사님이 우리보다 우리의 위치를 더 잘 알고 조금만 걸어 나오라고 하니 얼마나 반갑던지 참으로 좋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까지 택시비가 14900원이 나왔다. 그런데 속초 터미널에 도착하니까 7시 40분이 막차란다. 표를 끊어 놓고 근사하게 속초 물회로 뒤풀이를 하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밤 열 시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헤어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들의 공룡능선은 힘겨웠을 테고 어떤 한계에 도전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얼마간의 힘들었던 기억이 사라지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리라 생각한다. 산고를 잊듯이.....
봉정암을 둘러싸고 있는 거석들
날은 밝아오는데 운무가 심하다.
희미하게 원경이 보인다.
소청대피소, 우리는 구름에 싸여 있다. 그리고 중청 지나 대청에 섰다.
구름이 걷혔다가 드리우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우리는 원하는 그림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있다.
추로수
신선봉
공룡의 머리에 해당하는 봉우리
여기서부터 공룡의 몸통으로 올라 하나하나의 돌기를 넘고 넘는다.
무너미고개에서 공룡으로 올라가는 장면
가장 크고 멋진 범봉
철없는 진달래와 단풍
우뚝한 1275봉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다양한 칼라가 나오는 게 더욱 재미있다.
더 이상은 못가
세존봉
날은 어두워지고 더 이상의 사진은 찍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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