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보은 구병산

반야화 2017. 12. 6. 13:50

겨울산행의 묘미는 하늘빛이 꽃이다.

이른 아침 어스름 하늘 가득히 피어 있는 맑고 투명한 하늘빛을 배경으로 도심을 지나는 길에 마천루의 풍경이 또한 일품이다. 흐린 차창을 닦으며 허허로운 들판으로 시선을 날리면서 잠을 깨우고 점점 푸르게 밝아오는 아침 하늘빛이 이상의 꿈으로 가득 찼던 청운의 푸르름으로 채워진 꿈의 꽃이 펼쳐진 하늘 같다. 그런 기분 좋은 출발을 해서 구병산 깔딱 고개까지 오르는데 몸에 닿는 상쾌한 맛이 마치 순무의 맛 같다. 알싸하게 매우면서도 달짝지근하고 시원한 그 맛이 참 좋다.

 

처음 가는 산길은 한 번 출발하고 나면 어떤 길이 펼쳐져 있는지를 모르면서도 나아가게 된다.숫한 고비를 넘기면서 주저 않을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오직 앞으로만 가는 인생길 같은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힘든 길을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도 크기 때문에 끝까지 나아 가지만 요즘은 힘든 구간을 만나면 마음부터 작아진다. 대담하게 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그 크기는 점점 쪼그라드나 보다. 그러나 느슨해지게 둘 수만은 없는 마음을 최고조로 긴장시키고 몸을 단련시키는 데는 산행이 최고다. 이제까지 쌓아 온 근력을 야금야금 빼먹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산행을 하지만 그것이 극기훈련까지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수식어부터 멋진 느낌이 드는 충북의 알프스,아홉폭의 병풍 같은 봉우리가 멋진 곳, 때가 아니어서일까 알프스 같은 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알지 못한 채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에서 출발해서 원점 산행하는 코스를 오르는데 깔딱 고개까지 올라서 먼저 올라서는 곳이 신선대다. 신선대를 지나 바로 맞닥뜨린 커다란 벽에서부터 길을 잘 못 들었다. 다시 우회해서 가는 길부터 언 땅을 감추고 있는 낙엽에서 위험이 느껴지더니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우회길이 끝까지 음지여서 몇몇 구간에서는 너무 겁을 먹어서 어떤 길이 있는지 모르고 들어섰던 길 모두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난주보다 더 난코스여서 유행어 같은 심장의 쫄깃쫄깃함이 느껴졌다.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잡을 데가 있고 발 닿는 곳이 있으면 겁나지 않는데 앞서가는 일행을 보면서 겁부터 났다. 순간순간 "만약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마음 조림이 있었다.

 

모든 고비를 다 넘기고 구병산 정상에 올라섰는데 따뜻하다.해냈다는 안도감이 주는 마음이기도 하고 이제는 하산길만 남았으니까. 그러나 하산길에 또 뭐가 있을지는 가봐야 안다. 우선 음지가 아니라는 것에서 마음이 놓이기는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그 좋은 하늘을 이제야 마음 놓고 꽃을 보듯 바라보니 사방에 둘러싸고 있는 산이 참으로 많았다. 겹겹이 산이고 줄줄이 산이다. 어떤 곳은 작은 봉우리들이 마치 공동묘지같이 모여 있고 원근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색상과 높고 낮은 곡선의 미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산세가 절경이다. 그런데 빛이 너무 강해서인지 눈으로 보는 만큼의 풍경이 카메라에 담기질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딛고 서 있는 곳보다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산세의 원경을 난 참 좋아한다. 오늘도 그것이 너무 좋다.

 

내려가자. 그 무엇이 나를 막아서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은 가볍다. 하산길은 양지여서 다행이지만 내리 꽂히는 수북한 낙엽길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지만 계곡 쪽에 들어서니 양쪽으로 서 있는 엄청난 석벽이 장대해서 마치 거대한 산의 속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초목이 무성한 여름이었다면 벽이 잘 보이지 않겠지만 산이 뿌리째 드러나 있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또한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되기도 하는 들고남이 하나라는 진리가 있는 길이기도 했다. 긴 계곡을 다 벗어나니 오후의 햇살은 더욱 좋고 그제야 편안하게 마음껏 하늘을 바라보며 날씨 하나만으로도 좋은 산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찍 돌아가는 것 또한 참 좋은 날이다.

 

신선대에서

 

 

 

 

 

 

 

 

 

 

 

 

 

 

 

 

 

 

 

 

 

 

 

구병산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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