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첫 산행이다.
송년 산행에서는 일 년간 아무 탈 없이 즐거운 산행을 한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간의 일들을 뒤돌아보는 것이라면, 첫 산행은 남들처럼 시산제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론 그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기 때문에 장소를 선택할 때 성스런 곳을 지정한다. 주로 태백산, 계룡산, 마니산을 선호하는데 이번에는 강화도 마니산으로 가는 날, 처음 가는 곳이어서 나 개인의 의미부여를 해보고 싶었다.
세월은 무심히 흐르지만 인위적으로 4차원의 세계에다 금을 그어서 오늘이다 내일이다 하고, 새해라고 해봐야 찰나의 시공간이지만 너무나 익숙해진 개념 때문에 새해가 되면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거기엔 나쁜 건 티끌만큼도 넣지 않고 오직 새 희망만으로 가득 채운다. 그것조차 없으면 우리의 삶이 너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시작은 "변함없이"라는 말을 희망 칸에 넣고 싶다. 변화를 빠르게 느껴진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마니산 하면 먼저 참성단이 떠오르고 성화를 채화하는 곳이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유원지 쪽이 아닌 함허동천 쪽으로 오르는데 하얗게 얼어붙은 계곡을 한참 동안 끼고 오르면 마니산 능선 끝부분에서 서해바다의 해안을 가르면서 동서가 직선으로 길게 이어져 보이고 양쪽으론 반듯반듯한 강화 들판이 정겹게 보인다. 마침 물 빠진 바다의 갯벌에는 중천까지 가지 못한 아침해의 빛이 드리워져 금빛으로 빛나고 바닷물은 그냥 빠지지 않고 새해의 의미 같은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아무도 지우지 못하는 그림은 마치 그들의 물길에서 퍼져나가는 뭇 생명들의 실핏줄 같은 그림이 참 신기했다. 좀 더 높이 올라 시야가 막히지 않는 곳에서 바라보면 서해의 수많은 섬들과 갯벌 들판의 풍경이 잘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 있고 동서의 풍경 속으로 쑥 들어와 있는 마니산의 줄기는 낮으면서도 날카로운 스릴이 느껴지는 난코스였다. 그리고 능선은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석성 같기도 했다.
날카로운 능선을 힘겹게 지나면 멀리 가장 높은 곳에 보이는 첨성대가 보인다. 아득히 보이는 첨성대에 무리 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 마치 빨간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쁘게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가자 그 인파는 빼곡히 들어찬 새해 첫날의 어떤 군상이었다. 아마도 어느 단체에서 새로운 기운을 받으려는 의식이 진행되는 것 같았는데 참성단 아래까지 도달하니 의식이 끝난 사람들의 하산길과 마주쳐서 비켜나기도 힘들었다.
하늘과 좀 더 가까운 정수리에 마니산의 정기가 오롯이 모여 있을 것 같은 뾰족한 곳에 제단을 만들어 단군께서 하늘에 제를 올리던 천제단에 오르면 뭔가 기원하는 것이 떠올라야 되고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단에 오르니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무 생각이 일지 않았다. 제단까지 오르면서 간직했던 나의 기원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까맣게 잊고 겨우 사진 한 장 담아서 돌아서야 했다. 제단은 둥근 토대 위에 네모난 단을 만들어서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모양이었고 그 제단의 수호신 같은 소사나무 한 그루가 신목으로 살고 있었다. 소사나무는 주로 섬이나 해안에서 자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바람 잘 날 없어 보이는 산 정상에 누가 심은 것도 아닌 나무가 어떻게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렸는지 그 의미를 알고 보면 분명한 신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서낭당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소원의 울긋불긋한 끈들이 걸려 있는 것 같은 나무를 일본에서는 소사나무에 그렇게 실과 오색 끈으로 걸면서 기원하는 풍속이 있고 소사나무를 신에게 바치는 나무라고도 한다니, 하필이면 천제단에 신과의 연결고리가 될 것 같은 소사나무가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엔 뭔가 특별한 신령스러운 의미가 들게 하는 나무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 한 그루의 나무가 또한 제단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소사나무는 천연기념물 502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참성단을 내려와 단군로를 따라 하산하는데 칼바람에 한쪽 볼이 얼 것 같던 바람이 따뜻하게 순해져서 다시 올라도 좋을 것 같은 이른 하산길이 너무 편안했다. 앞으로 이어지는 산행에서는 함께 출발하는 일행들 모두가 무탈하고 즐거운 길만 있기를 기원하면서 의미 있는 행보로 기록한다.
함허동천
뚱보 강아지
바닷물의 솜씨 좋은 그림가느다란 물줄기를 그려놓고 신경 돌기들의 시냅스 같기도 하고
모세혈관 같기도 한 신기한 문양이 멋지다.
멀리서 보는 참성단의 인파
참성단 중수비
참성단의 겨울 소사나무
거인의 옆모습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유산 설경 (0) | 2018.02.07 |
---|---|
원주 치악산의 설경 (0) | 2018.01.10 |
송년산행 북한산의 설경 (0) | 2017.12.27 |
보은 구병산 (0) | 2017.12.06 |
함양 황석산 (0) | 2017.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