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제천 동산과 청풍호

봄은 절대적 아름다움이다. 절대적 아름다움이란 순순하고 혼합된 것이 없는 아름다움의 자체, 어떤 장식이나 인위적 치장도 없는 신적인 아름다움이다. 오직 자연의 섭리와 순리로 이루어진 봄의 향연 앞에 서면 그 어떤 에술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연출에 숙연함이 앞선다. 그러나 꽃길은 자연을 빙자한 인위적 조성이어서 그 아름다움이 식상할 때도 있다. 요즘은 도시마다 고을마다 넘쳐나는 벚꽃 조성길, 누가누가 잘하나를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산벚꽃이 좋다. 작은 꽃과 이파리가 마치 옥수수가 터지고 그 끝에 달린 깍지 같은 이파리가 피어나면 막 터진 팝콘 같은 모양이 화려하게 뭉쳐서 피는 가로수 벚꽃에 비할바가 아니다. 짧은 봄은 머뭇거리다 보면 어느새 달아나기 때문에 한 주도 그냥 허송할 수 없다는 생..

등산 2016.04.13

해남 달마산

코스:미황사-달마산-문바위재-작은 금샘-대밭 삼거리-하숙 골재-떡봉-도솔암-마봉리 약수터 새봄,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해마다 새롭고 처음 맞이하는 것 같으니 유일하게 `새`자를 붙여서 새봄이라고 하리라. 그 많은 생명을 품고 있던 대지가 한마디 산고의 아우성도 없이 봄을 낳고 봄은 또 작은 풀씨에서부터 고목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운 저마다의 일생이 시작되는데 하루하루 새로운 잎사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새로운 세포들의 태어남이 된다. 설악에서 한라까지 부단히 도 쫓아다니던 내 발길이 드디어 국토 최남단에까지 이르러 달마산 정상에서 점점이 흩뿌려진 우리나라 지형의 잔뿌리들을 조망하는 감회로 벅차다. 먼저 미황사에 들어서면 동백꽃 송이들이 뚝뚝 떨어져 땅 위에 혈흔을 남겨놓고 서러웁게 지고 있는데 달..

등산 2016.04.06

광양 백운산

겨울 등산복 깊숙이 간수해두고 자연도 나도 봄옷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봄나들이다, 봄 한 철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매화마을에 난 처음으로 가는 길이어서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상상 속의 그 꽃밭에서 나비처럼 놀리라 생각하면서 간다. 그리고 봄볕에 반짝일 섬진강과 다도해 풍경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내 맘에 꽉 들어차는 남쪽나라다. 그런데 한 두어 시간쯤 달렸을 때 내 공상에 금 가는 소리가 난다. 오수휴게소 전 터널에서 일제히 차들이 줄지어 멈춰 서더니 잠시 있으니 119 엔브런스, 경찰차 레커차들이 줄줄이 터널 쪽으로 들어가는 게 심상치 않았다. 아마도 사고가 크게 난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면서 코스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가 결국 정해진 코스로 가기로 했지만 난 내심 그냥 꽃밭에서 놀다가..

등산 2016.03.30

거창 금원산

깊은 산은 춘사불래춘이고 계곡은 먼저 깨어나 힘찬 물줄기로 흘러내리면서 봄의 왈츠를 부른다. 계곡에는 녹다만 눈이 거품처럼 끼어 있고 산기슭 언 땅은 물소리에 깜짝 놀라 봄이 온 줄을 알았는지 뭇 생명들의 입김이 긴 고드름으로 흘러내리는 춘사불래춘이라도 봄은 분명 시작되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이면 내 터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대감이 늘 있기 때문에 흐르는 세월 원망할 틈이 없다. 산에서 고지를 바라보며 고된 발걸음을 할 발씩 옮겨놓으며 드는 생각은 그랬다. 이제까지 지나 온 내 발자국을 다 연결하면 그 길이가 얼마나 될까? 그 걸음에는 얼마나 많은 땀이 배어 있었을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발걸음의 반은 산천에 길게 걸어놓은 게 아닐까 싶다. 아직도 더 길게 이어놓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등산 2016.03.16

내변산에서 봄마중

코스:넘 여치-직소폭포-재백이 고개-관음봉-내소사 산행을 하다 보면 계절마다 앉아서 맞이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직접 나서서 마중하고 배웅하기 때문에 남보다 먼저 계절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올봄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변산에서 봄 마중을 한다. 변산은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누어지는데 내변산은 안쪽 산악지대이며 외변산은 바깥쪽 바다 주변이다. 오늘의 볼거리는 단연 변산바람꽃과 노루귀다. 복수초는 늦은 감이 있고 바람꽃과 노루귀는 이른 감이 있지만 행운을 바라며 산행이 끝날 때까지 바닥을 유심히 보며 갔지만 봄 야생화는 보지 못했고 내소사에서 희고 붉은 매화와 산수유꽃을 볼 수 있어서 봄 마중이 헛되진 않아서 봄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월명암 입구로 입산을 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녹은 땅에 빗물이 스..

등산 2016.03.09

울진 응봉산

경북 울진에 있는 응봉산으로 간다. 유명한 덕구온천 입구에서 출발하여 유턴 모양으로 돌아서 온천 원탕이 있는 곳으로 돌아 나오는 코스다. 이곳도 백대 명산에 속하는 만큼 입구에 들어서면 향기부터 다르다. 뽀송뽀송한 모래가 깔려 있고 일대 소나무에서 나오는 맑은 공기는 그 어느 폐포에도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처녀 공기가 춘설을 녹이면서 짜릿하게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맑은 공기에 흠뻑 젖은 몸은 바람도 없는 맑은 하늘로 풍선이 된 듯 나는 기분이 된다. 전날 울진 쪽에 많은 눈이 왔고 기온도 낮다는 걸 보고 마지막 눈 산행이 될 것 같아 나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원도에 들어서니 차창으로 보이는 양 옆에는 온통 설국 같은 풍경이었다. 수종이 주로 소나무여서 촘촘한 솔잎들이 습기를 머금은 춘설을 이고 무겁..

등산 2016.03.02

설악산 대청봉

한계령-서북능선-중청-대청-오색 20년 만의 반전이다. 그때는 그랬어, 서울 근교산만 다니다가 어느 날 친구와 대청봉을 한 번 보겠다고 가을에 한계령에서 출발했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올랐지만 결국 중청도 못 가서 내려와야 했다. 내려오는데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겨우 내려왔는데 얼마나 힘들었던지 차멀미를 너무 심하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에 한계령으로 가는데 어디서 올랐는지 길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대청봉을 거뜬히 오르고 남보다 빨리 하산해서도 멀쩡하단 말인가? 그건 바로 연마야. 우리의 몸과 정신은 나이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얼마나 연마하고 잠재력을 얼마나 끄집어내느냐에 따라 다 쓸 수도 있고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

등산 2016.02.24

지리산 천황봉

몇 년 전 겨울에 지리산 종주를 했다. 산행코스 : 성삼재~노고단~반야봉~중봉~묘향대~삼도봉~벽소령~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중산리, 그때 눈은 스틱을 꽂으면 손잡이만 나오는 높이로 쌓여 있고 길은 한 사람 지날 만큼 겨우 외줄기, 총길이 40킬로미터 산행시간 20시간 새벽 4시에 성삼재에 도착해서 어둠 속에 길을 가는데 춥고 힘들었지만 두 번의 일츨도 보면서 결론은"행복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기록을 남겼죠. 외줄기 눈길 지리지리 멀기도 하더라 신새벽 어둠부터 중천에 뜬 해 길기도 하더라 차라리 날 저물어 지리산 어느 품에 나 깃들고 싶더라. 추운 밤을 세석대피소에서 지새우고 새벽에 촛대봉에서 일출을 봤을 때 서서히 차오르는 여명에 드러나는 첫새벽의 푸른빛으로 깨어나..

등산 2016.02.03

진안 운장산

호불호의 양면성을 다 알만큼 경험한 세월을 살았는데 가끔은 그 양면성 때문에 드러내 놓고 좋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눈이 그렇다. 어느 지역에는 눈 때문에 피해를 입고, 어떤 이들은 눈에 걷혀 낭패를 보는 와중에 나는 내심 눈을 그리고 있었으니 이기심인 줄 알지만 입춘이 다가오는 1월 하순의 산행인데도 마음껏 설경을 보지 못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산행은 예정된 코스를 바꾸어서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는 전라도 진안으로 갔다. 우리나라 지도에다가 백대 명산을 점찍으면서 그 완성도를 걸어두고 싶은데 마침 또 하나의 백대 명산을 가게 되어서 무척 좋다. 거기다가 눈까지, 이미 많이 적재되어 있을 것 같은 곳에 가는데 아침에 나서니 또 눈이 온다. 이것이 덕이 될지 해가 될지는 모르지만 오후에는..

등산 2016.01.27

덕유산

간밤에 눈이 내렸다. 이틀 거듭, 메마른 덕유산을 다녀온 직후여서 더욱 아쉬운감이 있는데 눈 내리는 밤에 잠은 오지 않고 공상에 잠기는 이 시간에 난 지금 아무도 없는 야밤에 눈에 덮인 덕유산 하얀 자락에 혼자서 마구 뛰어놀고 있다. 유난히 맑았던 푸른 하늘을 이고 골짝골짝 찾아들어 볕으로 포식을 하던 그 주름진 산 이랑들이 모두 하얗게 덮여 숫한 생명을 끌어안고 잠든 산을 나만 혼자 토끼처럼 뛰노는 이 만행의 마음을 누가 말리랴! 3번째 가는 덕유산,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인데 눈은 없었지만 날씨가 맑아서 시야에 경계가 없는 날이다. 여러 번 가도 언제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매직스타 같은 산이다. 맨몸으로 혹한에 맞선 겨울산의 풍경은 나 역시 산과 같은 마음으로 아래를 굽어보며 잠시라도 사바의 치열한..

등산 201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