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괴산 산막이 옛길

반야화 2018. 7. 11. 13:07

삼복더위가 찾아왔다.

몸은 복지부동을 원하고 마음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심신이 따로 노는 계절이 여름과 겨울이다. 어느 쪽을 따르는 것이 이로운지는 경험에 의해서 마음을 따르는 게 좋더란 걸 안다.

 

알프스를 다녀와서 장대하고 초자연적인 선경을 담고 왔을 때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어 당분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만큼 환경에 적응이 빠를 동물은 없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다 일장춘몽의 한 장면 같고 잠재의식 속에 있던 것이 꿈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깊이 간직해 두고 어느 날 문득 꿈같은 날을 추억이나 하자. 내 나라, 내 발자취가 수없이 새겨진 내 국토에 잠시 끊어졌던 발자국을 이으면서 적응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강산을 사랑하리라.

 

산막이옛길을 처음 갔을 때는 배를 타고 멋진 절벽을 돌아본 적은 있었으니 절벽 위의 산길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거리나 높이를 보면 여름에 짧게 하기에 딱 좋은 코스다. 초입에서부터 바람 한 점 없는 무거운 습기에 짓눌려 등줄기에도 계곡이 생긴듯한 산을 오르는데 여름 산행의 맛을 톡톡히 보여준다. 힘들게 한 구간 올라서면 무더위를 무색게 하는 이쁘고 노란 원추리와 하늘나리가 길섶에서 방긋거리고 있으니 어찌 바람 없는 걸 탓할 수가 있겠는가. 나쁜 조건을 피하면 좋은 걸 놓치는 수가 있다. 우리는 늘 상반되는 모순 속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 살고 있고 그 여정이 끝나면 생애가 끝나는 것이다.

 

걷기 좋은 계절이라면 힘들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춘 곳이다. 길도 이쁘고 소나무도 많고 조망까지 좋으니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인데 너무 무더워서 제대로 즐기질 못한 것 같다. 한반도 전 망데에 오르면 마치 옛 고구려의 영토를 보는 것 같다. 아랫부분보다는 내 눈엔 산으로 뻗어나간 윗부분에 더 시선이 걸렸다. 광활하면서도 산악지대를 넓혀가던 만주 벌판처럼 중화를 점령해 들어가는 기상이 충분히 느껴지는 지형이 잠시나마 우리의 혈관에 꿈틀대는 조국애의 기상이 살아나는 듯한 민족성이 느껴지는 곳이다. 

 

2코스를 따라 걷다가 천장봉 아래서 점심을 먹고 호수로 내려와서 호숫가를 걷는다. 괴산댐이 건설되면서 더욱 고립된 산막이 마을을 이어 주기도 하고 아름다운 정취까지 만들어 준 산책길을 걸으면 빛이 차단된 숲길이 너무 아름답다. 길을 걷는 도중에는 절벽에 있는 형상들에 다 이름을 붙여 주어 정감을 더한다. 연화담, 호랑이굴, 노루샘, 매바위, 여우 바위굴, 앉은뱅이 약수, 얼음 바람골을 지나고 아찔한 고공 전망대도 만난다.

 

작아 보이는 댐이지만 1957년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 된 댐이라는 역사성이 있고 절벽 위에서 보면 작은 마을이 온통 푸른 숲 속에 있는 평화롭고 건강한 마을이라는 느낌이 드는 휴양지 같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니 고립무원이 아닌 관광촌이 되어서 마을은 세상 밖으로 열려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 된 듯하다. 짧아서 좋았던 첫여름 산행이었다.

 

 

 

 

 

 

 

 

 

 

 

 

 

 

 

 

처음 보는 시계꽃에는 시침까지 있어 신기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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