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초복, 입에 인삼 한 뿌리만 물고 있으면 삼계탕이 되겠다고 하면서 산행을 무사히 마친 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에는 언제나 "한다"는 데 비중이 더 크게 실린다. 연일 무더위 소식이 가상 속의 일처럼 들려온다. 대구에서는 백화점 스프링클러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물폭탄이 떨어졌다 하고, 시멘트 도로는 늘어나지 못해서 위로 솟구쳐 오르고 유래 없는 소식을 접하고 산행을 시작하는 날인데 실감 나지 않던 뉴스들이 와닿는 뜨거움을 맛봤다.
장성군 서남면, 축령산 입구 추암 주차장에 하차한 후 임종국 선생의 공덕비가 있는 곳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약 10분 정도 올라가는데 크게 달구어 지지 않았는데도 뙤약 빛은 마치 내 머리 바로 위에 태양이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몇 년 전 어느 날 여름에 올레길을 걷다가 일사병에 가까운 경험을 한 것도 생각나고 속으로 좀 두려웠다. 습기는 지난주보다 덜해서 그늘로 들어섰을 때는 견딜만했다. 처음부터 620미터를 치고 올라가야 하는 난제를 만나서 모두가 헉헉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정도 높이면 겨울에 할 수 있는 1000미터 정도의 체력이 소모될 것 같은 높이다.
힘겹게 축령산 정상에 올라서 인증사진을 찍고 전망대에서 밑으로 잠시 내려서면 건강 숲길로 이어지는데 길이 편안하고 숲도 좋은데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주차장 위 도로변에 모기약 분사기가 있었는데 무시했더니 후회가 되었다. 처음 본 그런 기계가 설치된 이유가 다 있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모기가 계속 달라붙는데도 물리지는 않았다는 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나보다 더 땀 흘린 다른 사람에게로 간 걸까.
건강 숲길을 천천히 걷는다. 온몸에 땀구멍이 다 열리고 내 몸에 전해질까지 다 쏟아내면서 올라왔는데 바로 이 건강 숲길에서, 물기를 쏟아낸 그 자리에 수분을 채우고 단풍나무 수액 같은 청정한 공기와 풋풋한 수 백 년의 향기까지 열린 땀구멍으로 빨대처럼 마구 빨아들인다. 그제야 온몸의 혈관들이 안정을 찾았다. 이 숲길은 천년기념물 46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100년에서 400년 된 단풍나무 수종들이다. 아래쪽에 있는 문수사 사찰림이며 바리케이드가 쳐진 좌우 양쪽 80미터에 달하는 길에 약 500그루가 자생한다고 한다. 이 길에서 몸의 신진대사가 확실히 이루어진 듯하고 일급 산소로 새롭게 정화된 가벼운 몸으로 중앙임도 방향으로 내려오니 축령산 치유의 숲길 주인공인 편백나무가 빽빽한 밀도를 보이며 하늘을 고이고 있는 듯 하고 그 아래는 편히 쉴 수 있고 잠들어도 좋은 침대 의자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 좋은 곳에도 사람보다 모기들이 더 숲을 즐기는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쫓겨났다. 작은 미물들이 더 강한 걸 보면 약육강식이 다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편백나무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내려와서 수목장으로 찾아가는 데크길이다. 이 멋진 숲을 조성한 분이니까 숲에서 가장 잘 생긴 나무 아래 잠드셨겠지 하는 마음으로 갔더니 이외로 두 부부가 아주 검소하고 소박하게도 임종국 선생은 느티나무, 부인은 참나무 아래 모셔져서 어떤 이유가 있겠지만 생전의 검소함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더욱 나무처럼 우러러 보였다. 선생은 1956년부터 20년간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어서 암울한 시대에 헐벗은 산을 살리는 그때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남다른 안목으로 산을 살린 것이 수많은 인파를 불러들이고 동네를 먹여 살리는, 죽어도 죽지 않은 불멸의 명예를 지켜나가시는 분 같다. "죽어도 잊히지 않은 자가 가장 오래 사는 자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라도 하듯이 수목장을 찾고 있으니 아직도 나무로, 향기로, 숲으로 살아계시는 것이다. 장성군에서 선생의 뜻이 자라고 있는 이곳으로 묘를 이장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수목장을 돌아 나오면 숲 내음 숲길이 이어지고 차도도 있었는데 우리는 두 길이 만날 것 같아 숲길로 들어선 것이 좋긴 했지만 추암 주차장과는 많이 멀어지고 모암리로 나오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많이 경험을 했듯이 이탈과 일탈에서 가끔 더 좋은 어떤 것을 맛볼 때가 있다. 오늘도 숲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니 계곡이 된 작은 물줄기가 너무 맑고 깨끗해서 마침 시간도 넉넉하다니 발을 담그고 몸을 식혀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렇게 가느다란 물줄기들이 몇 개가 서로 만나서 밑에 모암 저수지를 만들고 있었다. 가을에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건강 숲길을 다시 걸어도 무척 좋을 것 같다. 늘 그렇듯 다시 와야지 해놓고 실행된 적은 별로 없지만 작은 바람이라도 지니고 사는 것이 세월 보내는 재미기도 하니까 다시 오겠다는 작은 희망, 이거라도 하나 간직해본다.
공덕비
처음 보는 버섯
전망대
이어지는 건강 숲길, 가을의 정취를 그려볼 수 있는 단풍나무길에 들어서니 너무 좋다.
숲 속에다 형태는 우산같이 만들었지만 숲 속이니까 버섯 쉼터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요정 같은 쉼터가 여러 개 있다.
데크길로 들어서서 수목장 찾아가는 길
춘원 임종국 선생 수목장의 느티나무
선생은 느티나무 아래, 부인은 참나무 아래 잠들다.
훤하게 보이는 저 길로 가야 하는데 왠지 다시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서 내려왔더니 길을 잘 못 들어
추암리가 아닌 모암리 주차장으로 갔다.
수녀님도 힐링 중
점심 후의 망중한
파노라마, 어렵네
손이 떨리지 않아야 되는데 밑부분이 떨렸지만 나무가 멋있어서 살려주기로 한다.
이웃하고 있는 파란 잎사귀가 삼나무를 돋보이게 하면서 더 빛나는 얌체 같다.
차창으로 보이는 교각이 아찔하게 높고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