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땅에서 솟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게 나의 지론인데 그 이치를 들여다보면 봄이 땅 위에 꽃 피워 두면 가을이 내려와 열매를 맺는, 계절의 음양에 해당하는 그런 이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문득 꽃 피울 일도, 열매 맺을 일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한없이 우울해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유난히 가을을 타는 난 그것이 재미로 타는 그네라고 해도 타고 싶지 않지만 내 의지로는 불가항력적으로 가을에 태워져 흔들리게 되는 가을을 올해는 우울하지 않게 보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시간들을 즐기리라 다짐해본다.
요 며칠간 연일 전형적인 초가을의 하루하루가 아깝게 지나간다.이 좋은 계절을 가장 잘 즐기려면 역시 산으로 가는 게 좋다는 걸 많이 경험하면서 지나왔다. 그렇게 많이 다녀도 아직 처음 가는 산이 있다는 게 참 좋다. 처음 가는 산은 어려운 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생각은 제쳐두고 일단 좋은 풍경만 기대 자루에 한가득 담고 출발한다. 오늘은 충주에 있는 대미산으로 간다.
대미산은 월악산국립공원 권역에 속하는 여러 산 중의 하나다. 높이가 678미터라고 해서 쉽게 생각했는데 난이도는 높이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공식을 실감했다. 메인 볼거리는 악어 봉이였는데 그 악어는 마지막 구간에서 볼 수 있었고 악어를 보기 위한 여정에는 여남은 개의 봉우리를 거쳐야 했다. 마치 공룡능선을 타는듯한, 처음 한 두 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중간을 넘어서자 끝인가 싶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오고 그 오르내리는 경사도가 너무 가팔라서 거의 극기훈련 같았고 능선이 양쪽으로는 낭떠러지여서 충주호 쪽과 대미산 아래쪽에서부터 칼날같이 우뚝 솟아 있는 길이었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미끄러져 굴러 떨어질 것 같고 발 밑에는 납작한 자갈돌들이 굴러다니는데 도토리까지 합세해서 동굴동굴 발밑을 구르니 한 순간도 편히 걸을 수 없었다. 그 고행은 끝 지점까지 이어졌다. 충청도 양반은 순한데 산들은 왜 그렇게 악한지........
긴 험로를 다 지나자 악어봉이 있었지만 숲에 가려져서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고 조금 더 불안한 발걸음을 이어가자 드디어 앞이 확 트인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왔다. 그렇다고 인공으로 조망을 위해 나무를 잘라내 지도 않았는데 딱 한 자리 조망처가 있었고. 묘하게도 우굴거리는 악어떼가 초록색 등만 보이는 풍경이 호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호수에 물이 줄어들면 바위로 된 억어 배도 보이겠지만 지금은 수위가 높아서 악어들이 경주라도 하듯이 모두가 출발지점에 선 것 같았다. 풍경이라는 것이 어디든 보는 방향에 많이 좌우되는데 충주호의 악어는 어디서 봐도 흡사 악어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어서 우굴거린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호수를 둘러싼 산들의 뿌리가 뻗어나간 것이 물에 잠기고 드러난 부분이 어쩌면 그토록 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지형들이 마치 인위적으로 악어를 조각을 해서 띄워둔 것 같이 묘했다.
다 지나고 나니 만약에 굴러떨어진다면 악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꼴이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주호는 거센 악어들의 소용돌이가 있는 맑은 늪지대 같았다. 참으로 특이한 풍경을 보는 산행이었다. 만약 악어만 보고 싶다면 우리가 걸었던 반대편으로 가면 되었겠지만 산 마니아들의 자존심은 산에서 하루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돌고 돌아서 마지막에 주인공을 만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후유증은 남았지만 그 끝에 있는 묘한 풍경으로 피로를 상쇠 하고도 남았으니 결론은 좋았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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