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다.

반야화 2018. 4. 25. 14:47

하늘만 천국이더냐, 땅에도 가끔은 천국 같을 때가 있다.

봄비가 연 3일씩이나 이어지더니 세상은 다 씻겨지고 땅이 해갈하고도 남은 물은 계곡에 넘치고 온 세상이 다 빛나는 날, 일 년 중 몇 안 되는 날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렇게 좋은 날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늘 노안으로 보이는 풍경 같던 서울이 마치 장님이 개안해서 처음으로 만나는 세상같이 빛난다.

 

4월 들어 세 번째 북한산에 간다.한 주가 지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다. 처음엔 새싹이 돋고, 다음번에는 꽃이 피고, 다시 가니 낮은 곳엔 잎이 무성하고 올라갈수록 아직 진달래 고운 색이 생생하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수도 서울의 선명한 모습이 한눈에 보이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진산들의 줄기가 그림같이 펼쳐진 날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멋진 산봉우리에서 티 없이 맑은 명당 보국을 바라보는 신선놀음이다.

 

세 번째 가는 북한산은 불광동에서 시작한다.6호선 독바위역에서 내려서 바로 마을을 거쳐 산으로 접어들면 족두리봉에 오른다. 시계가 맑아서 오늘의 목적지가 일직선으로 줄지어 서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그 손짓까지 다 보인다. 멀리에 보현봉, 문수봉 비봉, 향로봉이 한눈에 보이는데 오늘 우리가 거쳐 가야 하는 목적지다. 좀 긴 코스이긴 하지만 가장 좋은 날에 보려고 아껴둔 곳이니 오늘은 꼭 가야 한다. 전 날만 해도 근처 광교산으로 가자고 약속했지만 맑고 푸른 날씨가 아까워서 우리는 북한산으로 가야 했다. 겁 없던 시절에는 족두리봉을 감싸고도는 아찔한 구간을 갔는데 요즘은 아예 막아 두어서 약간 내려와 우회해서 간다. 재미보다는 안전을 중요시하게 되는 걸 보면 내발도 늙었나 보다. 발에도 마음이 있어.

 

족두리봉 지나 향로봉으로 가는데 역시 앞쪽은 사고다발지역으로 막혔다.족두리봉을 겁 없이 넘나들 때는 향로봉, 형제봉을 다 가봤지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막혔다. 며칠 전에도 사망 시고 가 있었다는 말이 섬찟했다. 그래서 내려서서 우회하니까 정상까지는 아니지만 향로봉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는 오를 수 있어서 다행히 거기서 멋진 풍경에 넋을 뺀다. 돌아서니 백운대 쪽이 너무 깨끗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풍경이냐! 좀처럼 저토록 깨끗한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행운이다. 행운에 묻어오는 행복까지 누리는 날씨다. 그런데 형제봉도 막혔다니 문수봉으로 간다.

 

문수봉도 역시 언젠가는 막을지도 모른다.그만큼 힘들고 아찔한 코스다. 갈림길에서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의 팻말이 있었는데 우리는 "어려운 곳에는 늘 볼거리가 있지" 하면서 모험을 하기로 하고 갔더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바로 그곳, 대남문에서 올라가면 쉽게 갈 수도 있는데 그 반대편을 올라야 하는 지옥행 같은 코스다. 거대한 문수봉 바위를 산화되어 부서질 듯 박혀 있는 쇠 난간을 잡아당기며 발 둘 곳이 없는 빗물 흐르는 바위를 타고 오르는데 속으로는 기도를 하면서 사력을 다해서 오르니 옛날 생각이 났다."이번이 이 길은 우리한테 마지막이야"라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해냈다. 오르는 도중에도 거대한 바위틈 흙 한 줌에 터를 잡은 생명이 가련한 꽃송이까지 피운 너무 이쁜 진달래를 카메라에 담고 실수라도 하면 버려야 하는 분신 같은 폰을 꺼내서 불안한 마음으로 사진을 다 찍었다. 하필이면 매달고 있던 카메라는 작동이 안 되고 실없는 알 바늘 같은 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떨어뜨릴까 봐 혼났네.

 

문수봉에서 바라보는 도시와 한강줄기,바다색으로 푸른 산의 원경을 보니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해상도시 같았다. 푸른 한강 물줄기가 내 오장육부에까지 흘러들어 말초혈관까지 맑게 씻겨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들뜬 행복감을 가라앉히고 대남문에서 하산하는데 오랜만에 가다 보니 대성문과 대성사가 해체 복원되고 있었으며 행궁권역에는 터마다 표지판이 되어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길에도 물이 흐르고 계곡을 몇 개나 아슬아슬하게 건너뛰면서 내려오니 계곡 가장 좋은 위치에 있던 산영루가 복원되어서 나를 듯이 네 귀퉁이를 바짝 올리고 "물 좋고 정자 좋은" 요산요수의 풍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내걸어 둔 것 같았다. 산영루 밑에는 계곡물이 불어서 순하게 흐리지 못하고 바윗돌에 부딪쳐서 깨어져 하얀 거품같이 울면서 흐른다. 물은 울고 나는 웃었다. 물가엔 버드나무 푸른 가지가 잠기고, 산벚꽃이 잠기고, 도화도 잠겨서 꽃물이 흐르니 너무 좋아서 그 울음이 음악으로 들렸고 내 발걸음은 피아노 건반을 발로 밟듯 연주를 했다.

 

이 얼마나 좋으냐! 내가 본 것이 무릉도원이 아니면 무엇이 무릉도원일까? 이튿날까지 잔영이 남아서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것 같은 행복한

산행을 했다.

불광동쪽에서 본 시울시내

 

 

족두리봉에서 본 도시 풍경

 

족두리봉에서 보이는 문수, 보현봉과 비봉, 향로봉이 다 보인다.

 

건축의 바다 같은 도시 모습

족두리봉

 

 

 

왼쪽에 인왕산과 오른쪽 안산

그 사이에 포근히 잠겨있는 서대문구와 산들이 북한산 줄기와 이어져 보이는 모습

 

 

북한산의 주봉들

한강 줄기가 하구까지 보였다.

 

 

남산타워 앞으로 서울 한복판이 선명하다.

비봉

 

 

꽃 속에 사모바위

 

비봉의 원경

 

 

문수봉 오르는 길

 

 

 

바위에 수놓은듯한 진달래

 

 

 

문수봉

북한산성의 끝자락

문수봉에서 본 보현봉

 

 

문수와 보현봉은 마주 보고 있다.

 

대남문

 

산영루는 북한산성 내에 위치했던 누각으로 조선 후기에 설치된 중앙 군영인 총융청에서 관리를 담당했던 중요한 건물이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나 추사 김정희(1786-1856) 등 당대 많은 지식인 등이 이곳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시문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1925년 대홍수로 유실되면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2015년 고양시의 역사문화 복원사업을 통해 산영루를 복원하였다.

 

 

 

 

 

 

대서문

대서문과 이어진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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