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025년 트레킹 스타트(청계산)

반야화 2025. 1. 7. 14:55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사계의 추억은 하얀 백지 같은 눈으로 덮어두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라는 듯 2025년 첫출발에 산은 고운 눈길을 내주어서 축하받은 기분으로 길을 오른다.
트레킹을 이어가다 보면 때로는 험한 코스를 만나기도 하니까 스타트는 산꾼들이 시산제를 올리듯 우리도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청계산 눈길을 걸었다.

가끔씩 친구들과 모여 앉아 눈 속에 묻어 두었던 백지장을 들치면 지난날의 추억들이 순서도 없이 다투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어디서 무엇을 봤고 어디로 가면 무엇이 있는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즐겁다. 누군가와 같은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추억을 공유한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며 헌신적이던 의무에서 벗어난 우리들한테는 꼭 필요한 만남의 시간이 되어준다.

지금은 산이 품고 잠든 무수한 생명들을 지키도록 조용히 길을 간다. 고요함 속의 동토에서 연약한 생명들의 호흡이 끊이지 않고 잘 이어져 어느 봄날 기쁜 마음으로 만나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자고 우리는 자연과 하나 됨으로 무언의 약속을 한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느끼는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겨울이 지나면 움트는 봄에 반갑게 만날 그날을 기다리는 것도 참 좋다. 기다림이란 보이지 않음의 마음의 거리다. 우리는 그 거리를 시간으로 채우다 보면 어느새 우리 곁에 작은 싹을 쏙 내놓으며 친구라고 느껴주길 바라는 자연과의 만남은 사랑스러운 기다림이다.


청계산길 초입에는 눈 위에 비가 내려 길이 촉촉하고 젖은 낙엽이 불그레하게 깔려 있는 길도 좋은데 눈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올랐더니 고운 눈가루를 묻히고 있는 실가지가 어찌나 이쁜지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온산의 소나무가 부러졌다기보다는 함부로 찢어놓은 습설의 심술 같은 비참한 장면을 보고 너무 가슴이 쓰렸다. 껌껌한 밤을 유령 같은 하얀 것이 얼마나 나무들을 괴롭혔을지 산 전체에 고통의 신음소리로 가득 찼을 것 같다.

눈이 듬뿍 묻은 것보다 곱게 가루를 입은 나뭇가지가 더 아름답다.



어쩌면 기후변화로 산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는 멸종의 시간을 맞을지도 모른다. 소나무 재선충으로 죽어가는 것도 감당 못하는데 이제는 눈까지 소나무를 꺾어놓는다.




발자국 하나 없는 하안바탕을 보면 동심이 뛰쳐나와 어느새 철없는 행동이 나온다. 그래서 눈밭에선 언제나 즐겁다.

새들도 눈밭이 좋았나 보다

이수봉까지 왔다가 편한 길인 옛길 코스로 되돌아 내려갔다


조그마한 딱따구리가 매미 같다.

길을 막고 쓰러져 누워 있는 소나무가 너무 크고 굵어서 살아온 시간이 아까웠다.

점심 먹을 밥상도 하얀 바탕이다.



오랜만에 빨간 옷을 입었더니 너무 눈에 뜨이는 컬러가 부담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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