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는 걸 보면 절로 하얀 미소가 피어나면서 늘 그것은 서설이라고 생각했다. 기후가 비 뀌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한 요즘은 서설이라고 반겼던 첫눈도 한갓 추억일 뿐인가?
2024년 첫눈은 서설이 아니라 흉설이 되고 말았다. 집 앞이 마치 한라산눈 같이 쌓였던 첫눈이 아직도 음지에 시커멓게 쌓여있는 산길을 오랜만에 올랐더니 입새부터 소나무들이 허리가 다 꺾어지고 생살이 찢어져 하얗게 드러나 있다. 더러는 길을 막기도 해서 겨우 동강동강 잘랐을 뿐 아직 찢어지고 꺾어진 잔해는 다 치우지도 못하고 널브려져 있었다.
강풍이 불어도 흔들리며 피할 수 있는데 짓눌리는 무게는 감당이 안되었던 것 같다. 짓누른다는 것은 숨이 막히는 일이다. 사람이 잠든 사이 숲에서는 얼마나 고통의 아우성이 들렸을까. 여기저기서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갔을 나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무척 아까웠다. 다 몇 십 년은 지나야 저 정도의 키가 클 텐데 하루저녁을 못 견디고 쓰러져 같다. 수많은 소나무들이 꺾인 숲은 텅 비어 보여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부러진 수종은 거의가 소나무였다. 잎을 떨구고 빈가지만 남은 나무는 멀쩡한데 잎을 많이 달고 있는 소나무만 피해를 입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 세나 자연계나 대중적인 일이 옳은 경우가 많다. 수많은 나무들이 겨울에 잎을 떨구는데 독야청청 고집을 부리던 소나무만 결국 뭇매를 맞았다. 소나무도 이제 꺾이는 법을 알았을까? 성질이 너무 곧으면 꺾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웃들은 다 나목인데 홀로 독야청청 버티다가 부러진 나무는 대부분 키가 너무 컸다.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부러져 누운 걸 보니 습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큰 것도 문제였다. 모두가 적당할 줄 아는 게 잘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