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겨울이라고 해야겠다. 한 주 전만 해도 늦가을 만산홍엽 속을 헤매었는데 갑자기 영하권의 날씨에 겨울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렇게 음산한 날은 약속 없으면 나가고 싶지 않다. 늘 약속을 해주는 트레킹 마니아의 친구들이 있어서 내 건강의 지킴이가 되어준다. 서로에게 우리는 그렇다.
단풍도 없고 낙엽이 깔린 겨울산에는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렇지 않다. 가을이 다녀간 뒷모습의 여운이 남아서 여전히 향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잎들을 다 떨구어낸 모체는 한동안 할 일 다 한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 휴식이란 게 쉽지가 않다. 이제부터 설한풍과 싸우면서 역경을 이겨내야 할 숙제 같은 삶이 기다린다. 잎들은 모체를 위해 영양분을 돌려주려고 스스로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떨어진 잎들은 모체의 거름이 되어 새봄에 다시 엄마와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봉산은 조선 인조임금의 태를 묻은 172.2미터의 태봉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분당선 정자역 3번 출구에서 뒤쪽마을로 쭉 걸어 나가면 분당수지 간 고속도로를 건너고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나 있는 토끼길 같은 지하통로를 건너서 산으로 진입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보면 두산 분당타워가 정면으로 보이는 길로 접어든다. 겨울 동안은 좋은 산을 찾아다니기보다는 가까워서 좋은 근교 야산을 오르면서 신체활동을 할 정도로만 간다.
산길이 너무 한가롭다. 만나는 사람도 없고 날씨는 쌀쌀하지만 오르다 보면 겉옷을 벗고 오르기에 딱 좋은 기온이다. 오르막 길을 올라 둔지봉까지만 가면 편안한 길이다. 둔지봉에서 커피를 마시고 태봉산 정상까지 가는데 길이 너무 이쁘다. 아직 하얗게 마르기 전의 갈색톤이 배어 있는 낙엽들을 밟으면서 가는데 바스락 소리도 즐겁고 말라버린 단풍이지만 고왔던 색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조금 떨어져서 보면 아직도 붉었던 여운을 끝내 놓아버리지 못해 움켜잡고 있는 나무들이 이쁘기만 하다.
흙을 낙엽으로 다 덮어버린 산을 멀리서 보면 마치 고운 사막 위에서 나무들이 솟아 있는 것처럼 바탕색이 깨끗한 모래색으로 보인다. 또한 겨울나목은 생김새를 다 보여준다. 잎에 싸여있을 때는 몰랐던 나무의 속살이 가지가지 특별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음이 다 보인다.
태봉산의 특징이라면 정상 아래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서어나무의 목질을 보는 거다. 말가죽처럼 매끈하고 키가 큰 서어나무는 참 멋있게 키를 키우고 있으며 단풍도 노란색이고 수피가 매끈해서 매력 있는 나무다.
야산의 나무는 키가 커서 정상에 서도 시야가 가려져서 원경을 볼 수가 없는 게 아쉬운 점이다. 정상이란 다른 산들의 아름다운 곡선 같은 게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보는 재미가 참 좋은데 어디서도 보지 못한 채 궁내동으로 하산하는데 길이 온통 단풍나무다. 시기를 두 번이나 놓치고 후회하면서 내년에는 꼭 태봉산의 단풍을 보자며 날을 일 년 전 오늘 미리 잡았다. 먼 곳을 먼저 보고 와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차가 이어서 있다. 11월 초순이나 그 후에 오면 될 것 같았다.
분당에 있는 두산타워의 건물이 멋지다.ㆍ
흙바닥을 다 덮은 갈색 바탕이 모래로 깔아놓은 듯 깨끗하다.
서어나무 군락지
정상에서...
위성발사대 설치 같은 롯데타워가 보인다.
하산길
궁내동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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