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집단생활 하는 곳에는 어디서나 빈부차이가 있는 것 같다. 숲도 마찬가지다.
숲이 우거진 산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어울려 살지만 그중에 쭉쭉 뻗어 올라간 교목들 아래서 작은 잡목들은 잘 살지 못한다. 워낙 힘이 센 나무들이 주위의 영양분을 다 빨아들이고 그늘까지 두터워서 살아갈 수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들끼리만 모여서 경쟁하듯이 키를 키우고 있다.
설악산같이 높고 바람이 많은 산에는 관목이 주인공이다. 나무들이 키를 못 키우다 보니 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동종만 모여서 사는 편이고 위로 키워야 할 키가 바람 때문에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크기 때문에 나목이 되는 겨울에 보면 수형들이 참 특이한데 그것이 그들에겐 고통의 증표지만 등산하는 사람한테는 보기 좋게 멋을 부린 것 같아 보인다. 거기다가 눈꽃까지 피우면 그야말로 멋스러운 작품 같은 사진을 건지기도 한다.
야산을 가면 나무들이 가장 자유롭게 큰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도 빈부차이가 보인다. 키가 큰 나무는 빛을 많이 받아서 더욱 잘 자라고 그 아래 갓 태어난 새끼 나무들은 키도 못 크고 살도 찌우지 못해서 아주 불쌍해 보인다. 차라리 겨울에 잎이 다 져버리면 큰 나무 아래서도 빛을 한 모금씩 얻어먹을 수가 있다. 그뿐 아니라 종에 따라 힘이 센 나무는 면적을 많이 차지하고 마음껏 사방으로 팔을 뻗어서 그 아래도 작은 나무는 살지 못한다. 가장 살기 편한 건 같은 품종끼리 모여사는 것이다. 진달래 군락지 같은데서는 그들끼리 뭉쳐 살기 때문에 다른 나무는 그 속에서 잘 살지 못하니까 군락지는 더욱 번성하다.
특히 겨울산행을 하다 보면 나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가장 잘 보인다. 풍파를 많이 겪은 나무는 혹을 달거나 많이 꼬여 있고, 잘 산 나무는 무난하고 올곧게 잘 큰 게 보이고 솔처럼 생명력이 강한 것들은 큰 바위틈에 흙 한 줌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큰 바위를 맥없이 짝 갈라놓는 것도 있다. 생명 없는 것은 아무리 커도 생명 있는 작은 것을 이기지 못한다.
빈부란 인간세상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늘을 짙게 드리운 나무들은 약한 이웃이 빛 한 줄기 받아먹게 비켜주지도 않는다. 기죽은 나무는 서럽게 울다가 인간들에게 큰 나무들을 더 잘 크도록 잡목 취급을 받으면서 벌채란 이름으로 베어지고 짧은 생을 마친다. 자연을 사랑하니까 작은 나무 한 그루 베어지는 것도 나무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마치 내 팔 하나가 베이는 아픔을 느낀다.
가난한 이 나무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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