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걸으면서 쓰는글

반야화 2024. 11. 10. 18:11

걷는 게 일상인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가을날씨다. 드센 여름과 혹한의 겨울 사이에 있는 가을이 맥을 못 출 것 같았다.여름이 물러나기 싫어 버티는 것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쫓아오는 겨울 속에서 가을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며칠 째 맑고 푸른 날씨가 가을옷에는 여름같이 덥다. 이 좋은 날씨를 잃어버리기 전에 많이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산책을 나섰다.

할까 말까 했을 때 하는 쪽이 늘 옳았다. 집 뒤에 있는 야산에나 가야지 생각하고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맞은편에 보이는 법화산 단풍이 곱게 물들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저기를 갈까 말까 머뭇거렸다. 저기까지 가려면 물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섰더니 망설여졌다. 결국 아는 길이어서 법화산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올라가는데, "어쩌지 11시가 넘어가니 벌써 배가 고프네"  
야산을 하나 넘고 다시 올라야 하는데, 아침에 시리얼 한 줌 먹고 나왔는데 법화산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단국대 편의점이 여러 개 있으니 간식을 사야겠다 하면서 가다 보니 어떡해, 다 놓쳐버려다. 여러개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조금만 참으면 단국대둘레길 정도는 갔다 올 수 있겠지 했는데 날씨가 유혹해서 자꾸만 걷게 되고 결국엔 배고픔을 참으면서 걸었다. 좋은 길에 벤치가 나오면 사진도 찍고 몇 줄씩 글도 쓰면서 올랐다. 스마트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의 혜택이 너무 편리하다. 벤치에서 글을 쓰는데 소음이 단절된 곳에서 들리는 건 낙엽이 살랑살랑 떨어져 내리는 소리와 내 발아래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만 있을 뿐 사람도 없고 너무 고요하다. 약간은 겁도 나서  폰으로 음악을 듣는데 하필 마이클 호페의 황금빛 낙엽이 연주가 되고 있어 마치 이 시간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 같네, 하면서 발걸음이 더 즐거워졌다.

법화산,
즐거움도 잠시, 무작정 빈 몸으로 산에  올랐더니 몸속 수분은   입김과 땀으로 다 나오고 메마른 몸에 갈증이 난다. "돈이 전부가 아니야, 편의점을 다 놓치고 이 산 위에서 배가 고프면 어쩌란 말이냐". 지갑은 있는데 파는 곳이 없으니 지갑이 무용지이네 하면서 투덜거리고 가는데 옆의 벤치에 젊은 부부가 쉬고 있다. 그들도 물 한 번씩 나누어먹기 게임을 하고 있다. 저 쪽에서 남자가 또 한 사람  손에 물병을 흔들면서 오는데 물이 가득 들었다. 그런데 용기가 없다. 물을 보니 더 갈증이 난다. 그냥 지나친다. 한참을 갈증과 배고픔을 참으며 길을 가는데 너무 이쁜 하산길이 보이고 그 길에 젊은 남성과 아이가 올라오고 있다. 이 길 끝에 어디가 나오는지를 물어보니 약 30분만 가면 마을이 나온다고 한다. 이정표에는 하늘말이라고 방향표시가 되어 있다. 무슨 뜻이지 모른 채 낯선 길 하늘말 쪽으로 내려가니 벌써 오후 점심때를 훌쩍 넘겼지만 "가보자, 어디로 내려가든 용인일 테니" 그런데 길이 너무 좋다.

다채로운 풍경 법화산에서...

하산길이 이쁘다.

내일도 좋은 날씨라고 하니 준비를 잘해서  법화산 정자에서 글을 써야지, 오블완 챌린지의 글 전체를 가을로만 채워도 될 것 같다. 매일 가을을 노래하겠어.

내일은  간식도 넣고 물도 한병 넣고 배터리도 가득 채우고 나가야겠다. 음악 들으면서 걷고, 사진 찍고, 글을 쓰다 보니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집을 나선 배터리까지 달랑달랑한다.

하산을 다하고 보니 아는 길이다. 두어 번 올랐던 길인데 하늘말
이란 이정표 때문에 낯선 길인 줄 알았다. 주변은 어지러운데 이쁜 집이 한 채 있다. 발이 아프다. 딸이 사놓고 몇 년째 신지 않은 등산화 두 켤레를 밑창이 떨어져 나갈까 봐 예방 차원에서 내가 번갈아 신어주고 있는데 조금 작아서 발가락이 아파서 잠시 맨발로 걷는데 낙엽이 미끄럽다.

단국대 안으로 들어와 편의점에서 간식을 먹고 다시 야산 하나를 더 넘어간다. 건축물 사이로 액자 같은 단풍이 이뻐서 한 컷.

집으로 가는 길에 줄지어선 메타쉐카이어

우리 동네의 단풍도 멋지다.

아, 드디어 걸으면서 글쓰기를 로비에서 마치고 엘베를 탄다.
네시간 반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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