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비 온 후에 걷는 산길이 얼마나 좋은지를.
간밤에 마른땅을 흠뻑 적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침에 반짝 빛이 나서 바로 뒷산으로 갔다. 역시 촉촉한 산길이 너무 좋다. 검은 가지들 뒤로 연한 빛이 감도는 숲도 좋고 숲이 깨어나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가 너무 좋아 심호흡을 들이키며 올랐다.
지금쯤 산벚꽃이 무척 좋을 거란 생각으로 갔지만 지난해 이즘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온통 산이 하얗더니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꽃이 별로 없었다. 진 것도 아니고 아예 꽃이 맺히지를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실망하고 단국대 캠퍼스로 내려갔다.
단국대 교정 안의 차도변에 키는 작지만 탐스런 벚꽃이 흰나비의 군무처럼 거친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내친김에 법화산 아래 있는 단국대 대운동장으로 갔더니 빽빽하게 키 큰 벚나무 아래 강풍에 이미 진 꽃잎이 눈밭을 만들어놓고 보라고 뽐낸다. 하얗게 내려앉은 꽃잎이 바람 타고 나르듯 구르고 나무에서도 하얗게 꽃비가 내리고 있는데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아무도 지나가며 꽃잎을 밟은 흔적 없이 너무 깨끗한 순백의 옥양목 천을 깔아놓은 것 같아서 밟고 지날 수가 없을 정도다.
그 이쁜 풍경을 독락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데 먼 산이 컴컴한 게 비가 묻은 듯했다. 하늘이 맑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뒤섞여 검게 몰려오는데 우산도 없이 나선 것이 걱정되어 걸음이 급학진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천둥번개가 치고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우박이 내린다. 다행히 산은 내려왔지만 집까지는 일 킬로 정도를 가야 되는데 길에서 숨 가쁘게 뛰었다. 그런데 젖은 옷으로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고 빛이 난다. 오늘의 하늘은 참 변덕스럽다. 금방 밝았다 어둡다 반복을 하고 거센 강풍이 불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나 보다. 이렇게 이쁜 모습을 보여준 대가를 치르라고 천둥번개와 강풍을 휘몰아치며 앞을 막는다. 이 봄에 우박을 내리고 바람이 심해서 걷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바람 부는 이 시간에 나서지 않았다면 꽃비는 볼 수 없었을 테니 이만하면 이쁜 대가다.










해마다 벚꽃이 한창일 때 시 셈하는 비바람이 몰아쳐서 꽃비를 내리고 나무의 우듬지 연약한 가지들을 다 분질러버린다. 그렇다고 자연이 하는 일은 나쁘지만은 않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새싹 가지를 똑똑 끊고 나면 옆순이 나와서 키만 삐죽하게 크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둥그스름하게 수형을 다듬는다. 그래서 바람도 필요한 거다. 멀리서 숲을 보면 키가 거의 비슷하게 크는 걸 볼 수 있는데 다 바람의 솜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