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산야의 가슴에도 조용히 꽃이 피어났다.
어느 때보다도 혼란한 세상에 불까지 질러 세상은 온통 지옥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고향이 불타고 고향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해서 꽃을 보고도 꽃을 봤다는 말을 못 한 채 며칠이 지났다. 검어진 고향산천에는 꽃도 죽고 모든 생명들의 한 해 살이가 죽었다. 이 좋은 봄이 왔는데 고향의 봄은 꽃대궐이 아니라 한겨울 같은 혹독한 추위를 겪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자연은 삶이 되풀이된다. 추워도 살아지고 더워도 살아지는 삶, 비바람 막아주고 비료 주는 게 아니라 척박한 흙 한 줌에도 살아내는 자연이 위대하다. 기후의 악조건에서도 살아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스스로,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자연이다. 가장 잘 사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을 알려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스승이 있다.
봄은 온다는 약속을 지켰다. 서로 바라보며 무언의 약속을 하고 돌아서면 일 년이란 시간을 기다린다. 조금 늦게, 조금 빨리 그러나 봄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멀리서도 보이는 핑크빛 진달래는 눈먼 사람도 볼 수 있을 만큼 너무 화사해서 검은 산천의 환한 미소같이 보인다.
한겨울을 보면 그 딱딱하고 검은 몸에서 이렇게 조그만 이파리가 나올 줄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린 초록 물방울 같은 아가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또 한 해를 보내는 계절의 쪽배에 올라탔다. 함께 느끼며 잘 흘러가보자.

청노루귀, 해마다 영접하는 이 작은 꽃을 보기 위해 험한 길 마다 앉고 찾아가는 꽃길은 늙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인위적으로 키운 꽃은 장식이다. 배경이다. 내 집을, 내화단을 가꾸는 생활이다. 그러나 야생화는 삶 그 자체다. 온갖 시련을 견뎌내고 잠시 살다가는 꽃 한 송이의 일생의 전부다. 그래서 그 전부를 보기 위해간다.





처녀치마, 이 꽃도 참 귀한 꽃이다. 그 넓은 산천 산비탈에 작은 것이 피어 있어도 볼 줄 알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발 밑만 보고 직진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참 특이하다. 긴 치맛자락을 드리우고 굵은 꽃대에 여러 개의 꽃술이 조롱조롱한 핑크빛이 너무 이쁘다.
미선나무꽃, 작년보다 꽃이 늦다는 걸 알게 하는 그때 그 장소에 아직 다 피지 못한 걸 보면 2월이 너무 추웠기 때문인 것 같다.










현호색

올개불꽃은 해마다 노루귀와 함께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