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축소판 같은 사후세계 왕들의 정원인 만추의 그림 속으로 낙엽을 밟으며 가을길을 걸어본다. 지난 오월에 처음으로 동구릉을 찾았을 때는 능을 위주로 살펴보면서 걸었다. 동구릉의 상징이라면 역시 태조의 건원릉 능침에 피어 있을 억새를 보는 것이다. 그건 가을에 와야 제격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건원릉의 억새꽃과 정원의 가을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월에는 떼죽과 쪽동백의 하얀 꽃무리가 능원에 향기를 뿌리더니 다시 찾은 가을의 능원은 고운 단풍과 낙엽이 깔린 곳에 발자국이 하얗게 남겨진 길을 걷는데 아름다우면서도 멜랑콜리한 운치가 있어 조용한 정념이 이는 가을길이 너무 좋았다. 신에 대한 불가지론은 철학의 궁극으로 남겨진 논리의 난점이지만 논리를 떠나 누구나 신에 대한 상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