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여행을 부산에서 시작한다.
부산에는 작은딸이 살고 있다. 멀리 있는 딸을 찾아간다는 것은 마치 키우던 화초를 분양해주고 나서 화초가 잘 크는지 꽃은 피는지를 살피러 가는 것 같다. 나를 떠난 화초는 내 꽃밭에 있을 때보다 더 튼실한 줄기에 무성한 잎을 달고 화사한 꽃을 피우며 만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부산역에 내려섰더니 날씨는 지난여름의 뜨겁던 꼬리를 아직도 다 끊어내지 못하고 가을을 들여놓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가을여행은 설악으로 먼저 갔었는데 반대로 가을이 끝나는 부산에 먼저 갔으니 내가 틀린 거지 부산은 여느 때와 다른 건 아니었을 것 같다. 딸이 있는 부산을 기점으로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통영과 거제를 돌아보고 가을산행의 대미인 영남알프스 중의 한 곳인 밀양 천황산으로 가서 적기인 억새를 보는 것으로 가을 속으로 쑥 들어가 보고 싶었다.
부산역에서 곧바로 태종대로 유원지로 갔다. 태종대는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오래 묵은 기억 하나를 살려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너무 낡은 기억 속에 남은 건 절벽 아래 몽돌이 있는 바닷가에서 파도가 몽돌들을 굴리면서 들려주던 또르르 귀여운 소리를 듣던 그 기억뿐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곳으로 갔더니 파도와 자갈들은 여전히 같은 소리를 들여주며 마치 친구처럼 하얀 포말 속에 까만 돌들이 구르는 이쁜 짓을 하며 정답게 놀고 있었다. 그 외의 풍경들은 다 낯설었지만 현재의 태종대는 멋진 해양공원이라는 걸 이제 와서 알게 됐다.
신선바위와 망부석, 신선들이 놀았다고 믿기에 부족함이 없는 절벽 아래 넓은 반석 뒤로 기암절벽이 서 있고 수많은 세월에도 깎이지 않은 서 있는 바위는 망부석이라고 부른다.
6개의 섬이 다 보이는 오륙도
백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불이 꺼진 적 없다는 영도등대다. 참고문헌에 의하면 1906년 12월 처음 불을 밝힌 영도등대는 1906년 당시에는 [목도 등대]라 불렸다. 일제의 대륙 진출에 필요한 병력, 군수물자 수송선박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이후 1948년 절영도 등대로 변경하였다가 1974년 영도등대로 개칭하였다. 영도등대가 첫 불빛을 밝힌 1906년 12월 당시에는 석유 백열등이었으나, 지금은 120V, 1000W 할로겐램프를 사용하고 있다. 등대 불빛은 11m 높이 콘크리트 탑 위에 18초마다 3회씩 깜박인다. 그 불빛이 닿는 거리는 24마일, 자그마치 44㎞에 이른다.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영도등대는 해양도서실, 해양영상관, 갤러리 등을 갖춘 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달을 쏘는듯한 침은 등대에서 빛이 퍼져나가는 방향을 가리킨다고 한다.
태종대 일몰
태종대에서 돌아와 저녁에는 다시 집 앞 광안리 해변에서 주말마다 이루어지는 행사인 드론쇼를 보는데 가을운동회의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광안리 밤바다, 물이 빠진 모래해변이 넓게 드러나면 단단하고 고운 젖은 모래 위에 주변 불빛의 반영이 아름답다. 파도가 들어오는 얕은 물속에 가만히 서 있으면 내발 밑으로 모래가 살살 빠져나가면서 발을 간지럽히며 빠져나가는 것도 재미있고 빠진 모래만큼 발 뒤꿈치가 들리며 내 몸이 조금 내려앉는 느낌이다.
이튿날 그동안 멀어서 못 갔던 봉화마을에 갔다. 보는 것 모두가 아직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평소에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쑥 들어가 버려 카메라를 꺼낼 수 없어 마음속에 슬픔만 잔뜩 넣고 왔다.
다만 사저 앞마당에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만 찍었다.
'living n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들의 정원(동구릉) (0) | 2024.11.09 |
---|---|
통영의 아름다움 (4) | 2024.10.21 |
상사화의 계절 (0) | 2024.09.20 |
*가을아침* (4) | 2024.09.03 |
부산의 이모저모 (0) | 2024.08.19 |